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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틈입자 파괴자
이치은 지음 / 알렙 / 2014년 4월
평점 :
《노예 틈입자 파괴자》

처음 이었다. 나를 이렇게 당황스럽게 만든 소설은. 이 소설의 작가인 이치영이 말하려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아니 처음에는 이 소설의 독특하고 생경한 느낌, 말이 안 되는 활자를 부어놓은 것 같은 느낌, 화자가 바뀌어 어지러운 느낌들에 많이 놀랐다. 책장을 넘기기도 힘들 만큼. 몇 쪽 읽다 덮고 다른 책을 읽다가, 또 궁금해서 몇 쪽 읽고 덮어두기를 여러 번, 겨우 400쪽이 넘는 소설의 중간 부분으로 넘어가면서부터 속도가 붙었던 것 같다. 그리고 더 이상 작가를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고백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읽고 다시 처음의 책장으로 돌아와 몇 쪽을 읽어보니 그때서야 활자들이 눈에 들어왔다는 고백을 한 번 더 한다.
소설 속의 화자는 지금보다도 먼 미래의 한 남자다. 그리고 이 남자가 얘기하는 일기장 속의 주인공은 이 남자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아버지"인 차인형. 현재 이 남자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언어가 없다. 그가 인용한 일기장 속 차인형이 살던 2000년대 '그 파괴' 이후에 인간은 말과 글, 언어 모두를 잃어버렸다. 이 남자는 유일하게 언어를 아는 사람이다. 아무도 궁금해 하고 묻지도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 이 '글을 쓴다는 행위'를 즐기고 있을 뿐. 그리고 이 남자는 '그 파괴' 가 있었던, 인간의 모습을 뒤바꿔버린 그 일에 대한 일들을 쓴다.
과거 한동안 꿈엔 노예와 주인들이 두 가지의 유형 밖에 없었다. 그 노예들은 그들의 주인, 잠자는 사람이 꿈속에서 만들어 낸 존재이다. 이 꿈은 주인 이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남의 꿈에 몰래 들어갈 수 있는 존재 '틈입자' 가 생겨난다. 이들은 스스로의 꿈이 없으며 남의 꿈에 들어갈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당신과 내겐 스스로의 꿈이 없잖아요. 우린 틈입자라구요. 당신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나요?" -p191-
"쥐새끼처럼 남의 꿈에 슬금슬금 숨어드는 변태적인 존재, 불완전한 기억을 가진 반편 같은 존재" -p325-
그런데 이들 중 원하는 꿈을 선택해 들어갈 수가 있었고, 꿈속과 바깥 두 쪽 다에 대한 온전한 기억을 갖고 있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들은 '파괴자'로 불렸다. 틈입자들 사이에 금기시 하는 일이 있었는데 바로 꿈속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것으로 이를 실행에 옮기면 꿈의 주인이 언어를 잃어버리고 식물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자들 중 이 금기를 깨뜨리는 존재가 나타난다. 여러 번의 실험 끝에 주인의 노예에게 말을 걸면 다만 말만 잃어버린 현실에선 '실어증' 환자가 되는 것을 발견하고, 그는 인간을 말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언어가 없을 때처럼 사람들이 꿈속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고, 꿈속에서 창조한 세상을 남들과 공유함으로써 소통했을 때로 돌리기 위한 '파괴'를 실행하고 만다. 그들은 노예들을 해방하고, 해방된 노예들은 주인의 언어기능을 빼앗고, 꿈의 안전지대인 모래사장을 뛰어넘어 서로의 꿈에 직접 뛰어들고 호출하며 서로를 망가뜨린다.
"넌 틈입자가 그리고 우리와 같은 존재가 왜 생겼다고 생각해? 우연이라고 생각해? 그렇지 않아. 절대 그렇지 않아. 언어는 더 이상 소통의 도구가 아니야. 처음부터 언어가 그렇게 불완전하고 결함투성이인 도구는 아니었을지 몰라. 하지만 지금은 달라. 사람들은 언어 대신 언어를 나르는 도운인 핸드폰이나 인터넷에 열광하고 있을 뿐이야.
(중략) 그래서 틈입자나 우리같이 꿈의 영역을 부분적으로 넘나들 수 있는 존재들이 생긴 거라구." -p328-
차인영은 '틈입자'가 아닌 '파괴자'였다. 그는 꿈을 넘나들고 양 쪽 다의 기억을 갖고 있었다. 그는 처음엔 왜 그런 꿈을 꾸는지 알지 못했고, 꿈속에서 '예이형' 이란 여학생을 만나면서 꿈의 비밀을 서서히 알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인 '안치형'의 형에게 치형이가 실어증 환자가 된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그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찾아가게 되는데 그와 비슷한 환자가 5명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은 꿈과 현실을 오가며 꿈을 비밀을 향해 서서히 다가서고, 일기장과 현실 속의 먼 미래의 남자를 번갈아 보여주며, 서서히 거대한 결과를 향해 달려간다. '그 파괴'가 시작되자 실재 세상은 파괴되고, 흐리고 잿빛 하늘같은 우울한 현실들이 기괴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소통의 형식만이 남고 그 내용은 사라져서 결국 껍데기뿐인 소통의 공해 속에 인간들이 둘러싸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서 언어를 파괴하고 꿈을 통해 소통하려는 파괴자라는 인물이 태어났다." 라고, 한 인터뷰에서 이 소설이 태어난 동기를 밝혔다. 소설은 마치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의 그림을 언어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선명한 칼라, 비현실적인 공간과 시간, 기이한 등장인물들, 과거와 현재를 오가지만 두 시점 모두 현재 같은 모호한 시간개념. 그러나 이 같은 언어의 파괴가 가져 오는 미래는 과연 아름다울까? 소설 속의 모습은 글쎄, '글쎄'라고 말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작가는 미래의 모습을 묘사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어가 파괴되는 '그 파괴'의 모습도 재해 영화에서 보는 참담함뿐이었고, 디스토피아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이는 작은 '희망'을 찾을 수 있었나 생각해 보면 그조차도 확신 할 수가 없다. 소설은 강렬한 표지 디자인만큼 강렬하고 진짜 꿈처럼 어지럽다. 내가 만일 꿈속에 숨어있는 상징이나 의미들을 읽어 낼 수 있다면 더 흥미로운 소설이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도 들게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