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자매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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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도토리 자매》





힘든 일이 있을 때, 그런데 들어줄 사람이 없거나 차마 말하지 못할 사연일 때 '도토리' 자매에게 메일을 보내면 정성스런 답변이 돌아온다. 오로지 홈페이지 안에서만 존재하는 그들, 그리고 그들만의 이야기들. 이 소설을 읽기 전 소개만 읽었을 때는 영화 <원더풀 라디오>나 <라디오 스타>의 DJ와 청취자들의 관계처럼 다소 엉뚱하거나 황당하거나 혹은 눈물 쏙 빼는 감동 이야기가 전개될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들만의 사연이 소개되고 이에 대한 답장이 나오고 그 일들을 해결하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어떤 감동을 전달하지 않을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소설을 다 읽은 지금 오히려 내 예상대로의 소설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가난한 집안 형편에 딸을 두 명이나 낳아버린 낙천적이고 대책 없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아가야 했던 두 자매의 이야기다. 두 번째 보호자로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던 이모 집에 맡겨졌을 때 결국 언니는 동생을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만을 남긴 후 집을 나가버린다. 딱히 구박하는 것도 아니었고 의사 부부라 생활도 부유했던, 심지어 자식도 없던 이모 집이었지만 동생은 외로움을 견디다 신장에 문제가 생기기까지 하는 등 스스로의 속박에 살아간다.


결국 언니가 돌아와 이 둘은 자신들의 친 할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할아버지는 몸이 편찮아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처지였기에 이 둘은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따뜻한 저을 느낀다. 결국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이 둘은 서른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이 둘은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 보고자 한다. 결국 '도토리 자매'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게 된다.


이 소설에서 이런 서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녀들이 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들이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도 역시 중요하지 않다. 이 자매는 어렸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성인이 된 후 생의 중심을 차지하던 할아버지까지 잃게 된다. 문체는 시종일관 차분하며 안정적이다. 이들의 생활 또한 격정적이지 않게 유유히 흘러간다. 소설은 동생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그녀가 살아왔던 삶, 일상들, 그녀가 바라보는 언니, 그리고 언니의 사랑과 삶 그리고 그 과정이서 서서히 아픔과 상처를 치유해가는 그런 과정, 깨달음의 과정들이 차분하게 이어진다. 얼마 전에 읽었던 소설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이란 소설이 떠올랐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http://africarockacademy.com/10188157861

http://blog.daum.net/yoonseongvocal/7343626


이제 마흔을 눈앞에 두니 세상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 내가 앞으로 겪어야만 할 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행이 이제껏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제 부모님이 연로하시니 언젠가는 내게도 곧 이별이 닥칠 것이다. 아니, 이런 이별 외에도 우리는 늘 '이별하면서 살아' 간다. 결혼을 생각하지 않기에 언젠가는, 곧, 끝을 알고 있기에 더 열정적이고 뜨거운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도토리 자매의 언니처럼 우리는 우리의 삶을 좀 더 뜨겁게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삶이 유한하지 않다는 것, 내가 하고 있는 이 연애, 사랑이 곧, 끝을 향해 나있다는 것, 그러니 우리의 삶을 더 뜨겁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 가. 그리고 끝이 날 때까지 우리의 삶은 계속 된다는 것도.


이 소설은 정말 누구에게라도 큰 위안이 될 것 같다. 예쁜 표지 디자인만큼이나 귀엽고 따뜻하고 사랑스럽다. 얇은 책 속에 이런 뜨거운 삶의 에너지가 꿈틀대고 있다니. 한동안은 이 소설 속에 빠져 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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