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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남긴 기적
마이클 모퍼고 지음, 마이클 포먼 그림, 김은영 옮김 / 풀빛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전쟁이 남긴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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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과거에 있었던 전쟁이야기 혹은 부끄럽거나 슬프고 비통한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요? 예를 들면 과거 조선시대에 겪었던 왜란이나 호란, 혹은 그 전에 원나라에 부마국이 되었다거나 국가나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닌 기득권을 지키고자 했던 조공이나 사대 같은 불편한 역사들 말입니다. 또 이런 것은 어떤가요? 방금 인터넷에서 봐서 문득 생각이 나는, 환향녀나 위안부 같은 일들도 있죠. 저는 현재까지도 뜨거운 감자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과의 관계가 참으로 답답하고 겁이 날 때가 있습니다. 일본의 극우파들은 역사왜곡에 위험한 말들을 쏟아내는데, 우리 정권에서는 이렇다 할 반응이 없습니다. 역사 왜곡하면 또 중국도 빼놓을 수 없죠. 동북공정을 넘어 <하, 상, 주 단대공정>, <중화 문명 탐원공정>까지 완성단계에 이르렀다고 하고요. 또 하나는,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부는 북풍입니다. 종편 채널에는 거의 24시간 내도록 북한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북한 방송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요. 이런 현상은 올바른 것은 아니지요.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득권들이 역사를 이용하고 있는 것 밖에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만 전쟁을 겪은 것은 아닙니다. 외국에도 이런 슬픈 역사가 있죠. 특히 나치에 관한 것은 정말로 끔찍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을 겪은 그들의 현재 모습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나치의 만행을 인정하고 국제 사회에 사과를 했고, 자손들이 다시는 이런 일을 행하게 하지 않기 위해 기억하고, 있는 사실 그대로를 가르치고 배웁니다. 역사를 왜곡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이런 큰 역사의 소용돌이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요? 한 민족, 한 나라가 겪었던 전체적인 결과 혹은 과정을 개인들도 똑 같이 느끼고 받아들일까요? 저는 앞서 말한 이유로 일본에 대해 아직도 거북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경을 넘어 아주 가까이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국가와 국가의 관계, 큰 역사적 흐름과 그 안에서 개개인이 느끼는 것은 아주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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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전쟁이 남긴 기적》은 이런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마다 승승장구하던 독일의 <비스마르크 호>가 영국군에 의해 침몰되면서, 타고 있던 2,200여 명의 병사들은 거의 다 죽고 100여명만이 영국군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되어 영국의 포로수용소로 이송됩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그 때 구조되어 영국으로 오게 된 <발터>입니다. 그는 동료 <만프레드>와 함께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했지요. 1945년 연합군의 승리가 발표 된 후 영국에는 2곳뿐이던 포로수용소가 600여 곳까지 늘었다고 합니다. 2차 대전 직후 영국의 노동력의 4분의 1이 바로 이 전쟁 포로의 노동력이라 할 만큼 그 수가 많았다고 하는 군요. 그곳에 포로로 온 병사들은 감시가 삼엄했기에 외부 출입이 허용되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영국인 가정에서 독일군 포로들을 가정으로 초대해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1946년부터 1949년까지 거의 모든 포로들이 고국으로 돌아갔으나 50만 명에 가깝던 포로들 중에서 2만 4천명이 영국에 남았다고 합니다. 바로 이들이 앞서 말한 그런 경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가를 뛰어넘어 개인 간에 싹튼 우정 말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발터 또한 만프레드와 함께 영국의 한 농가에서 함께 살며 그들의 농장 일을 돕고 그들 가족과 친해지는데, 그 곳에서 거의 6년이나 함께 생활하게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만프레드는 바닷가에서 철조망을 걷다가 지뢰를 잘 못 건드려 사망하고 말죠. 이후 발터는 고향인 독일에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현재까지도 예전 추억과 아픔을 못 잊어 했습니다. 결국 만프레드가 죽은, 그 전 행복하게 지냈던 그 바닷가에 다시 왔다가, 예전에 함께 살던 농장의 딸, 그녀의 가족들과 극적인 재회를 하는 것이죠.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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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아이들에게 과거의 가슴 아픈 일들을 어떻게 말해줄지 그 답을 엿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이 책에서 그리는 전쟁은 어느 한 나라의 입장에서 써지지 않았습니다. 책의 주인공인 발터가 타고 있던 독일의 <비스마르크 호>가 영국 함대를 침몰 시켜 대승을 거둘 때도 발터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국가와 전투는 승리했을지 모르지만 찬 바다에서 죽어가던 병사들 또한 자신들과 같은 '사람'일 뿐이었던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반대로 영국 함대가 비스마르크 호를 침몰 시켜 2,000여명이 넘는 병사들이 죽게 되었을 때도, 영국군은 승리에 도취되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살아있던 독일군을 구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전쟁 포로로 영국으로 오게 되는 것이고요. 결국 전쟁은 어느 쪽에도 승리를 안겨다 주지 않았음을 잔잔하게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승리와 패배로 나뉘고, 주인공은 패전국의 포로로 승전국인 영국에 있게 되었지만, 그들 개개인은 국가와 전쟁을 뛰어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 따뜻한 우정을 나누고, 그 우정은 다음 대까지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깁니다.
이렇게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로 우리 아이들에게 전쟁의 슬픔, 아픔, 부조리를 알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어른들이 해야 할 역할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역사는 똑바로 알려져야 합니다. 나라를 대표하는 이의 잘못된 판단, 국가 이기심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갖고 올 수 있는지, 달콤한 승전의 모습에 가려진 전쟁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알려주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알리고, 함께 고민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많은 이들에게 특히 어린이들에게 읽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어른들도 함께 읽고 함께 얘기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우리가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