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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학실록
이성규 지음 / 여운(주)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조선과학실록》
나는 조선은 참 재미없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남녀차별, 반상의 차별이 심해지고 도를 넘은 사대주의에 훈구파와 신진 사대부들이 나뉘어 싸우고, 각기 자신들의 당을 위해서 나라고 백성이고 안중에도 없던 나라, 결국 마지막에는 이런 사람들이 나라까지 일제에 들어다 바쳤고, 결국 지금까지 친일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 그런 나라라고. 그러나 이 책《조선과학실록》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어쩌면 이런 선입견 조차도 식민 역사관의 영향일지 모르니까.
자, 각설하고 이 책으로 들어가 볼까. 《조선과학실록》은 세계의 문화유산이라고 하는 <조선왕조실록>에서 과학에 관한 부분만 똑 떼어 와서 엮은 책이다. 왕조실록에서 과학을? 나처럼 다른 많은 사람이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역사, 왕조의 기록과 과학. 어쩌면 연결 짓기가 참 어려운 조합인데, 과학을 하는 사람이 이 어마어마한 역사와 문화의 보고를 어찌 그냥 보기만 할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해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의 융합 (convergence) 을 통한 혁신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는데, 이 책은 융합의 가치를 표현할 때 자주 언급되는 '비엔나커피'처럼 조선왕조실록이라는 뜨거운 커피와 과학이라는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통해 융합을 통한 혁신을 말하고자 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력을 풍성하게 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의도는 정말로 절묘하게 성공하였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나는 비로소 조선이 참 재미있는 나라였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인정할 수 있었다.
과학이라고 해서 어떤 내용이 나올까 궁금했는데, 우리가 흔히 과학이라고 하는 거의 모든 분야의 내용이 총 망라된다. 첫 장을 여는 '오로라'를 비롯해서, 조선 판 4대강이라 할 만한 '운하공사', 부엉이바위를 매개로 본 단종의 비사와 올빼미에 관한 이야기, 장영실의 말년에 관한 의혹, 메뚜기 떼, 산학 (수학)이 주학으로 바뀐 까닭에 숨겨진 우리의 이름에 관한 문화, 우리나라 1호 동물원 창경원에 대한 슬픈 이야기, 현자의 돌을 찾는 조선 판 연금술사 등 정말 이제껏 경험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조선을 바라보니 정말 흥미진진하고 신비로웠다.
우리는 늘 역사는 발전한다고 배우고 현재보다 과거가 분명 덜 발달되고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우리에게도 훌륭한 과학자와 수학자들이 있었고, 서양과는 '다른' 독특한 세계관이 있었으며, 그런 관념들이 모여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왔던 것이다. 다만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로 인해 이런 앞서가는 생각들은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사라지고 식민지를 거쳐 오면서 왜곡되어야 했을 뿐. 또한 형태는 다르지만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 또한 참으로 재미있다. 500년이 되도록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백성들을 고통에 빠뜨린 운하공사는 현대에 와 '4대강' 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하기도 하고,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엉이나 올빼미를 불길함으로 보는 인식의 뿌리와, 부엉이의 울음을 듣고 죽은 단종의 비애를 연결시킨 저자의 해안은 참으로 놀랍다. 또한 수학을 뜻하는 산학이 주학으로 이름이 바뀌어 지게 된 배경에 고귀한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다는 이름에 대한 인식이 녹아있다는 것, 우리의 역사 안에 과학을 말하며 이와 관련된 다른 나라의 역사와 풍습, 종교 등에 대한 광범위한 통찰은 정말 대단함을 금치 못할 정도이다.
이제껏 과학이나 역사 문화와 풍속에 대한 책들을 읽어왔지만 이런 식의 접근과 재미는 정말 처음만나 본 듯하다. 이 책은 일단 정말 재미있다. 어렵지도 않으며 역사와 문화, 과학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조선 시대의 사회전반에 대한 모습, 문화, 인식, 풍습 등이 잘 나타나 있으며 자연현상, 동물, 수학 등에 대한 정보도 가득하다.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학생들이나 일반인들 어느 누구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