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은 어디로 갔나
서영은 지음 / 해냄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꽃들은 어디 갔나》

 

 

 

 

 

 

 

 

아, 이렇게 사랑 할 수도 있구나. 글이 이렇게 맛있을 수도 있구나. 이 소설을 읽은 후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단 두 가지 생각이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책장을 펼쳐 10시 드라마를 보기 전에 다 읽고 옆에 앉은 남편을 자꾸만 바라보게 만든 소설. 내가 이 사람을 어떻게 만났는지, 어떻게 사랑을 했고, 또 어떻게 반대를 이기고 결혼까지 했는지. 남 몰래 함께 보내던 옥탑 방의 밤들이 얼마나 달콤했는지, 어설픈 솜씨로 봄나물을 무치고 된장찌개를 끓여 함께 마주 앉았던 그 젊은 날의 추억들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우리에게도 그런 봄빛처럼 따사로운, 너무도 빨리 사라져 버려 아프기만 하던 그런 날들이 있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나는 충분하지 않은 햇빛과 사랑에도 기어이 연두색 잎을 피워 올린 거실 한 구석의 벤자민이 눈에 들어와 죽은 가지들을 치고, 수건에 물을 묻혀 먼지 쌓인 잎들을 하나하나 닦아 주었다.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 젊은 날의 격정은 사라지고 지금은 한 공간에 머무는 따뜻한 공기, 적당히 내 보일 것은 내 보이고, 숨길 것은 숨겨주는 암묵적인 약속들, 늘 같은 듯 반복되는 일상들이 주는 안락함에 젖어 살고 있다. 오래도록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고 만져 보았다. 소설 속 주인공도 이런 따뜻함을 원했겠지. 커다란 집에 자기 공간 하나 갖지 못하고 열쇄로 잠그고 또 잠그는 불안하고 인색한 남편을, 결혼 생활을 원한 것은 아니었겠지. 울음을 감추어 두고, 모로 누운 남편의 뒷모습만 보고 싶지는 않았겠지.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 나이차이가 30살도 넘게 나는 남편. 그 남자의 세 번째 아내. 남편의 전처 또한 자기처럼 첫 번째 아내의 자리를 차치한 여자였고, 자신 또한 그런 여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전처처럼 머리가 쥐어뜯기고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사랑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 전처의 암묵적인 이해로 그 사랑을 지킬 수가 있었다. 그 전처가 죽은 후 가끔씩 그 남자가 만나러 와 함께 했던 자신의 집을 떠나 그 전처의 체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집으로 들어간다. 그러니 처음에 그녀는 그의 아내로 나서지 못하고 그 큰 집에서 자기 공간 하나 마련하지 못한 채 살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는 예전의 그 남자가 아니었다. 그 뜨겁고 살갑던 남자가 아니라, 그 자신의 공간에 그 누구도 들이지 않는 도둑이 들까 두려워 밤을 지키는 아줌마를 고용하기까지 한 인색한 나이 먹은 남자일 뿐이었다. 사무치게 외로웠겠지. 가슴에 응어리도 졌겠지. 잡초를 뽑은 정원에 후박나무를 심었겠지. 그러나 그녀는 그런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이고 끝내 살아내기로 한다. 치마를 뒤집어쓰고 운명의 바다에 온 자신을 던지는 것이다.

 

 

사랑이란 정말 어떤 걸까. 그녀의 미련해 보이는 사랑이 과연 사랑일까. 하루하루 늙어가는 남편, 자신을 창녀 취급하는 그의 다섯 아들, 그가 살아가던 어떤 한 구석도 자신에게 내어주지 않는 남편의 인생을 있는 그 자체로 오롯이 안아 지킨다는 것이. 저자는 그런 인생을 살았을까. 나는 그런 사랑을 품을 수 있을까. 내 모든 것을 던지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이는 그저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가 아니었다. 내가 받아들인 한 사람을 오롯이 안아주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런 여인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지금은 참 많은 생각들이 스친다. 내가 내 인생에서 나 자신의 어떤 욕망도 버리고 오롯이, 진정으로 오롯이 그 대상을 품어줄 수 있을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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