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도시 - 건축으로 목격한 대한민국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빨간 도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게 건축이란 일명 '공구리'라 말하는 시멘트 공사일 뿐이었다.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멀쩡한 보도블럭을 뒤 엎고 새 블록을 깐다고 여기저기 파헤친 인도, 교통정체를 없앤다고 사시사철 공사 중인 도로 때문에 더 심한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도시, 틈만 있으면 비집고 올라가는 높은 아파트와 한 두 달이면 뚝딱하고 지어지는 원룸건물들,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 주거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투자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집, 강의 원래 모습을 망각하고 오로지 자본의 논리로 공사된 사대 강 등 늘 얼마의 돈이 들어가고 얼마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얼마나 많은 자본을 끌어오고 관광객을 유치하는 가 오로지 돈과 투자, 재테크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책 《빨간 도시》를 읽으며 건축이 역사와 사람, 인문을 담는 그릇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이 책의 저자 <서 현> 이란 사람에게 정말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내가 놓치고 보지 못했고 나도 모르게 익숙하게 물든 군대와 서열, 전체주의의 잔재를 진지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철학이 없으면, 생각과 의문이 없으면 결국 건축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허상이고 돈 잔치가 되고 사용하고 사용당하는 존재들이 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이 <빨간>이란 말이 참으로 도발적이다. 빨간, 빨강이란 말은 반역이었고, 도발이고 위험한 것이라는 인식은 월드컵 때문에 열정과 축제, 젊음이란 뜻으로 바뀌었지만 그 색이 품고 있던 의미는 이제 '종북'이라는 말로 바뀌어 현재도 여전히 살아있다. 그 당돌한 이름의 책이라니. 이 책이 품고 있는 그 의미는 역시 그 느낌 그대로 이다. 이 책은 건축으로 본 우리의 현대사이다. 전쟁 후 오로지 재건과 잘 살아야 한다는 목적 하에 행하였던 모든 것은 아파트 설계 도면에서 <가사실>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늘 휴전선 너머의 주적의 발전과 비교하고, 도발에 대응하여야 했던 도시는 높은 빌딩과 비행기 활주로의 기능을 갖춘 고속도로에도 나타난다.

 

 

건축은 교육과 정치에 대한 철학도 담는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겪은 우리는 국민은 국가의 발전을 위한 도구로써 존재하여야 했기에 군대의 시설 같은 건물과 연병장을 갖춘 학교에서 한주에도 몇 번씩 군대의 사열 같은 조회를 하고 같은 교복에 같은 짧은 머리의 모습을 갖추고 실재로 군사훈련을 받기도 했다. 민주시민의 덕목인 이성과 토론 보다는 과거로부터 내려온 외우고, 강요된 정답을 찾고, 서열화하고, 그 나라에서도 쓰지 않는 언어의 체계를 평생 동안 붙잡고 살아야 하는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 이는 권위적이고 아무나 범접하게 하지 못하는 도서관이나 관공서 건축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건축은 도시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인식, 문화 예술에 대한 인식을 담는 도구이기도 하다. 국가나 자치지역에서 만드는 미술, 음악, 예술 관련 건물들이 시민들을 어떻게 끌어 안을 수 있는지, 광장은 과연 시민들이 모이고 공론의 장이 되고 있는지, 도시 개발은 과연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이 주가 되고 있는지 혹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피사체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자는 건축을 통해 역사와 도시, 사람, 그리고 교육, 자연에 대한 많은 것들을 고민하고 독자들에게도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건축이 이토록 많은 이야기와 질문을 품고 있는지 몰랐다. 내겐 그저 공구리에 불과했던 일이 이토록 깊은 사유와 철학과 질문을 품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정말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시 한편에서, 역사의 한 줄 사실, 음악에서까지도 건축을 사유할 수 있는 저자의 깊은 통찰은 정말로 놀랍고도 존경을 이끌어 내기까지 했다. 인문, 철학, 건축, 교육 등 어떤 분야에 관심 있든 그 누가 읽어도 좋을 만한 책이다. 많은 분들께 읽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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