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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과 조선건국사 - 드라마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고려멸망과 조선 건국에 관한 얽히고설킨 흥미진진한 이야기
조열태 지음 / 이북이십사(ebook24)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정도전과 조선건국사》
2014년 초, 정도전 열풍이 불고 있다. 현재 드라마로 만들어져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사극이라 하더라도 달달한 애정물이나 팩션이나 판타지 스타일이 많이 사랑받는 세태에 정통 역사극을 표방한 드라마가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이 참으로 의외다. 그리고 이 때문인지 출판계에도 정도전 바람이 불고 있어 정도전의 이름을 딴 많은 역사서와 소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나는 이런 현상을 보면서 참으로 궁금한 것이 정도전이 새롭게 조명되었기에 드라마까지 만들어졌는지, 드라마 덕에 정도전이 새롭게 해석되는 것인지 하는 것이다. 아니면 관심의 대상이 실은 정도전이 아니라, 정도전과 함께 역사의 소용돌이에 뛰어들었던 이성계와 그의 역성혁명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보통 드라마 특히 사극은 그 시대의 정권과도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볼때 '역성 혁명' 이 시사하는 바는 의외로 크지 않은가? 또한 현시대가 정도전 같은 개혁적인 인물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결과에 따라 '혁명' 혹은 '쿠데타' 로 이름지워지는 어떤 행위에 대한 해석에 따른 어떤 것를 시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이런 의문들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이다.
이런 의문은 뒤로 하고 《정도전과 조선건국사》를 들여다 보자. 이 책은 고려말부터 조선이 건국되기까지의 역사를 담고있다. 제목에서는 정도전을 앞세우고 있지만 실은 그 뒷 구절 <조선 건국사> 아니 <고려 멸망사>가 그 주인공이다. 그러므로 이 과정 속에 정도전은 책 제목에 강조된 것처럼 그리 크게 다뤄지지 않는다는 뜻이고, 고려 말의 국왕 특히 개혁군주로 알려진 공민왕과 그 후의 왕들인 우왕, 창왕 그리고 왕보다 더 큰 권력의 중심부에 있었던 이인임과 최영을 위시한 관료들의 무시무시한 권력투쟁의 이야기가 펼쳐지며, 후반부에 이성계가 등장해 조선이 창업되는 역사가 짧게 그려진다. 그러니까 저자는 그 어떤 인물에도 중점을 두지 않고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바탕으로 서술을 하되, 승자의 손에서 써진 역사들을 과연 액면 그대로 믿을 만 한가, 혹시 그 안에 진짜 진실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의 의문을 가지고 마치 <탐정> 처럼 역사를 들여다 보며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그렇지만 맨 첫번째 장에서는 이성계와 정도전를 내세우고 있는데, 가장 큰 논란이 있는 그들의 출생에 관한 비밀을 풀어보고 있다. 이성계는 과연 전주이씨인지 아니면 여진족 출신인지, 정도전은 천출인지, 그의 신분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저자는 어떤 쪽으로도 답을 내리지는 않고 있다. 왜 그들에게 이런 꼬리표가 붙게 되었는지, 어떤 근거들이 있는지 살펴본 연 후에 어느 쪽도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다소 모호한 답을 내리고 있다. 그 뒤도 마찬가지다. 공민왕을 보면, 초기에는 개혁을 하려했지만 후반기에 행하였던 일들은 그를 미치광이로 몰고 가고 있는데 과연 그것을 타당한가 그의 시해를 합리화 하기 위해 후대 사람들이 그렇게 조작한 것은 아닌가, 특히 그의 죽음에 관해서도 한치의 의문이 없는지, 정말로 무능한 왕이었는지 따라가는 과정을 보면 그가 저자는 어떤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역사를 보는 다양한 시각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또 이인임이 권력을 갖게 된 과정과 유지하기위해 행하였던 일들, 최영과의 관계, 북원과 명에대한 고려의 대응, 위화도 회군에 대한 저자의 분석도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행간의 이야기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왜> <어떻게> <과연> 이런 의문들을 가지고 보면 새로운 진실이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저자는 사건들의 정당성을 따지기 보다 양 쪽 모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요모조모 분석하고 있으며, 이런 합리적인 과정에 따라 일반적인 인식과 다른 결론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이 부분은 공민왕, 신돈, 이인임, 최영, 이성계를 분석한 것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역사에는 <만약>이라는 말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역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써지는 것이기에 자신들의 행위와 입장, 혹은 정통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강조, 축소, 탈락을 하기도 하는 만큼 이를 대하고 읽는 이의 날카로운 시각이 더욱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드라마를 진짜 역사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보면 이런 자세는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2014년 2월 현재, 공중파 TV 2개의 채널에서는 고려말의 시점, 비슷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2가지의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다. 정도전과 기황후. 주인공은 다르지만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왜 이 시점에 고려 말의 이 두 인물인가, 여기에 어떤 의미도 없는 것일까. 현 시대와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아니면 혹시 위정자들이 그 무엇을 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역사는 참으로 신기하다. 역사는 반복된다고도 하고 발전한다고도 한다. 이런 역사와 인물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 것인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꼭꼭 씹어 생각하면서 읽으면 참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