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배심원
아시베 다쿠 지음, 김수현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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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열세 번째 배심원》

 

 

 

 

 

법정 스릴러는 책보다 영화로 많이 접했는데 꽤 재미있게 본 영화들 중에 우리나라 영화는 부러진 화살, 변호인 외국 영화로는 1급살인, 어 퓨 굿맨, 의뢰인, 데이비드 게일, 에린브로코비치, 필라델피아 등이 생각난다. 특히 이 책《열세 번째 배심원》의 소개를 읽고 이 영화들 중에서 <데이비드 게일>이 번뜩 떠올랐는데, 이 영화도 책과 마찬가지로 법정의 무능함 혹은 완벽하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모종의 범죄를 기획하는 뼈대가 같기 때문이다. 

 

 

영화 <데이비드 게일>은 불완전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판결, 시행되는 사형제도의 불합리성과 잔인함을 만천하에 드러내기 위해 <살인>이라는 범죄를 기획하고, 이를 통해 사형 선고를 받아낸 뒤, 결정적인 순간에 결론에 반박하는 증거를 내보이는 방법으로 사형 제도를 반대하는 자신들의 입장을 굳히려 한다. 살인으로 보이는 사건은 실제로 살인으로 조작된 자살이었고,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는 반전 장면은 정말로 소름이 끼쳤다.

 

 

자, 그러면《열세 번째 배심원》은 어땠을까? 글을 이어가려는 지금 참으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일단 재미있었다, 그리고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반전, 트릭, 소재, 등장인물,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밝히고 비판한 강렬한 메시지, 이야기 전개 등이 모두 자기자리를 아주 잘 찾고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주었다.

 

 

이 소설에서 배경이 되는 일본 사회는 지금의 우리 사회와 참 많이 닮아있다. 청년들은 대체적으로 무기력하고,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것이 일상적인데, 내가 강자에게 당하듯이 나 또한 약자를 대한다. 주인공이 이런 생활을 하는 전형적인 인물로써 권고퇴직으로 직장에서도 밀려나 꿈꾸던 작가가 되려고 하지만 이렇다 할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빚만 늘어가는 처지다. 그리고 정치권의 비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만연해 있으며 엘리트의 자녀는 어떤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인정하는 분위기다. 또한 법조계의 뿌리 깊은 관행과 비리는 정말로 비상식 적이다. 이 소설의 도입부가 바로 법조계의 불합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호쿠토 원자력 발전소 노심용융사고>에서는 누구라도 이런 사건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지 못했으므로 이를 상정하거나 대책에 대해 검토하지 않았던 사실도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판단되어 어떤 관료도 그 책임을 지지 않았음을 언급한다.

 

 

소설의 도입부. 앞서 말한 주인공에게 귀에 솔깃한 제안이 들어온다. 있지도 않은 사건<인공 누명계획>을 만들어서 법조계와 언론의 무능함을 파헤치고 자신은 직접 그 사건의 당사자가 되어 저널리스트로써 명성을 쌓아보자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자살한 아버지의 사건으로 사회에 불만을 갖고 있던 주인공은 이 제안을 수락하고 그 계획에 동조한다. 이를 위해 사건의 가장 큰 증거가 되는 DNA 조작을 위해 <조혈간세포- 일명 골수이식>이식을 하고 거짓 증거들과 인위적인 목격자들까지 만든다. 결국 주인공은 여성강간 살인, 사체유기의 무시무시한 범행의 유력한 용의자가 되어 검거 되는데, 이때부터 일은 이상하게 돌아간다. 조작이라 생각했던 일에 실제 피해자가 나타나고 순식간에 주인공은 범인이 된다. 무죄추정 원칙 따위는 상관없이 경찰은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주인공을 코너로 몰고 주인공을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제 책의 중반부로 넘어가며 이야기의 배경은 본격적으로 법정으로 넘어간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기둥은 <인공 누명 계획> 과 <배심원제도>이다. 배심원제도는 일본에서 전쟁 전 잠깐 채용되었다가 미뤄둔 제도로, 소설에서는 이 제도가 다시 시행되는 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일본 국민에게는 시기상조라고 반대하는 우파와의 갈등이 중요한 요소로 쓰이며, 이 사건이 바로 그 첫 번째 사건이다. 결국 이 사건에서 12명의 배심원들의 판결이 주인공과 일본 사회 모두에게 굉장히 중요한 결정이 되는 것이다. 이후 법정에서 벌어지는 증인 신청과 심문, 증거 제시 등의 과정이 매우 긴장감 있게 그려진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을 믿어주는 단 한명이 바로 변호인으로 주인공의 결백을 믿으며 논리정연하게 결백을 증명하고 배심원제도에 대한 중요성까지 어필하게 된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 사건의 전모가 하나하나 밝혀지고 엎치락뒤치락, 밀고 당기기로 저자는 독자를 진실로 이끈다. 이미 주인공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에 읽으면서 변호인이 과연 어떻게 이 판을 엎을지, 과연 진범은 누구인지, 그들은 왜 이런 사건을 꾸몄고 그 윗선이 어디까지 개입되어있는지 굉장히 궁금하게 만든다. 그리고 결론은 일본의 추악한 면을 폭로하며 충격적으로 마무리 된다.

 

 

실은 법정 미스터리라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을 까 했지만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현대 범죄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로 여겨지는 DNA 감식의 허점을 파고든 부분, 인위적으로 혈액을 바꿀 수 있고 이를 범죄에 악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아주 놀랍기도 했다. 일본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정치, 언론, 법조계의 비리와 허상을 제대로 파헤쳐 꾸며진 웃음 뒤에 숨어있는 벌거벗은 일본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 저자의 용기에도 많이 놀랐다. 그리고 불합리한 상황에서 합리적인 판단과 결론을 도출한 한 배심원의 모습에서 깨어있는 시민의 모습과 정의가 구현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단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소설이 아니라 더 무거운 주제의식까지 품고 있는 소설, 생각지도 않는 곳에서 큰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다. 추리, 스릴러를 좋아하는 분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께 읽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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