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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전망 - 돈, 부채, 금융위기 그리고 새로운 세계 질서
필립 코건 지음, 윤영호 옮김 / 세종연구원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화폐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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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여러 정체도 모르는 곳으로부터 '대출' 문자가 날아든다. 신용카드 회사에선 주기적으로 내가 신용도로 언제든지 빌릴 수 있는 액수와 변동 이자율을 알려주고, 원치도 않는데 여러 좋은 조건이 있다는 다른 종류의 카드로 교체해 준다며 친절한 전화를 한다. 내겐 현금이 없는데 카드로 결제한 것은 종이가 아닌 가상의 계좌에서 매월 일정액의 수수료와 이자를 붙여 다달이 떼어간다. 나는 종이나 동전으로 물건을 구매해 본적이 거의 없다. 요즘은 어딜 가든 체크카드나 신용카드를 쓸 수 있고, 심지어 버스나 택시를 탈 때도 카드회사에서 준 플라스틱 카드를 쓴다.
어렸을 때 가끔 생각했다. 이런 돈을 마음껏 찍어낼 수 있다면, 혹은 내 통장 계좌에 <0> 몇 개만 더 붙여준다면-물론, 은행원의 실수로- 나는 순간 부자가 될 거라고. 어차피 실체가 없는 돈인데 <0>몇 개 더 붙인다고 달라질게 무어람? 이 책《화폐의 전망》은 이런 나의 엉뚱한 상상이 이끌어준 책이다. 그전에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쓴《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를 읽으며 돈의 허망한 실체와 은행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었기에 이 책 또한 큰 고민 없이, 어찌 보면 허망한 실체인 <돈>에 대한 진짜 모습을 알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http://africarockacademy.com/10180498546
그러나 순진한 나의 기대는 조금 어긋난 듯하다. 이 책은 앞서 말한 <자본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책이었으니, 슬프게도 내 수준에서는 읽기 힘든 책이었다. 경제나 금융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읽기가 많이 불편한 책이었던 것이다. 금융에 관련해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 금융상품이나 이와 관련된 제도나 정책, 시대를 이끌어 왔던 경제학자와 그들이 제시했던 이론 등에 대해서도 사전지식이 조금은 있어야 읽을 만한 책이다. 나는 내 얕디얕은 지식의 끈을 부여잡고 눈에도 머릿속에도 들어오지 않는 글들 사이를 이리저리 헤매느라 진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이 책은 돈의 본질과 기원, 조개껍질이나 담배, 금과 은 등의 단단한 물체에서 화면입력체로 변모해온 과정, 여러 제국과 왕국이 돈을 어떻게 만들고 바라보고 이용하였는가에 따라 걸어온 흥망성쇠, 부채 즉 빚이 개인적인 수치심의 문제에서 인권의 문제에 까지 이르게 된 과정, 그리고 그 부채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모습, 그리고 돈을 만들어 내고 어떻게 유통할 지에 대한 정부의 정책에 따른 채권자와 채무자 양진영의 갈등 등이 전 세계 곳곳의 예들과 함께 자세하게 펼쳐진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내게는 너무도 힘든 과제였지만 평소 경제나 금융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라면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긴 하다. 그저 많이 벌면 좋을 것 같은 돈이지만 우리가 쓰고 벌고, 때론 내 목숨 줄을 잡고 있는 듯한 이 '종이'와 '전자' 화폐의 가치가 주변 상황에 쉽게 그 가치가 달라질 수 있고, 때론 2014 정초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개인정보 유출에 드리워진 무의식적인 위험 앞에 서 있는 상황이라면, 저 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은퇴 후의 경제상황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이 책은 불안한 우리에게 많은 정보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