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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김유철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평점 :
《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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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단 브랜스포드(Nathan Bransford) <미스터리는 범인이 누구인지 마지막 페이지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스릴러는 범인이 누구인지 첫 페이지에서 알 수 있다. 서스펜스도 범인의 정체를 첫 페이지에서 간파하는 건 스릴러와 같지만 스릴러가 주로 추격전과 액션에 집중하는 반면, 서스펜스는 좀 더 느린 호흡으로 주인공의 위기감을 고조 시킨다>
제프리 디버 <서스펜스/스릴러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를 미스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묻는다. 미스터리는 독자에게 퍼즐을 던져주고, 스릴러는 독자를 롤러코스터 맨 앞차에 태운다>
조셉 핀더 <미스터리는 후더닛(whodunit), 스릴러는 하우더닛(howdunit), 미스터리는 사건을 해결하는데 중점을 두고, 스릴러는 주인공의 위험천만한 모험 자체에 중점을 둔다>
나는 미스터리, 추리, 스릴러 소설의 팬이다. 영화도 이런 영화를 주로 본다. 주인공 주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자연스럽게 주인공은 자의 혹은 타의로 사건에 휘말리게 되며, 때로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몰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지나고, 흉악한 범죄자가 주인공을 점점 코너로 몰아가는 극도의 서스펜스, 겨우 미궁 속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려는 찰나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 그리고 사건은 극적으로 해결! 되면 좋겠지만, 간혹 불친절한 저자는 여전히 독자를 우롱하며 시원하게 결말을 알려주지 않는.
자, 이 소설 《레드 Red》는 미스터리, 추리, 스릴러 그 어디쯤에 서있을까? 솔직히 소설이 재미있으면 됐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장르를 나눠 설명하는 것은 굳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읽는 소설이 어떤 범주에 속하는지, 어떤 기준에 따라 스릴러, 추리, 미스터리라고 하는지 늘 궁금하긴 했으니까 한번 쯤 짚어보는 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다. 호불호가 갈리는 <장르문학>이니만큼 아주 좋아하거나, 아예 관심조차 없거나 할 터인 이 소설은 이 모두를 아슬아슬하게 옮겨 다니며 독자를 우롱하는 소설이다. 앞서 말한 미스터리, 추리 스릴러 장르의 설명을 써 놓은 것도 그런 이 소설을 좀 더 잘 보여주고 싶어서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추리>의 형식을 갖고 있다. 한 젊은 여자가 야산에서 목이 잘린 채 발견되고 당연히 경찰들은 이 범인을 추격한다. 그러다 락 클럽에서 같은 방법으로 살해된 한 여자가 더 발견되면서 그저 일반적인 치정 살인사건일거라 여겨졌던 사건은 잔혹한 연쇄살인으로 커지게 된다. 한편 이 소설의 주인공인 소설가<민성>은 자신의 문학 수업에서 만난 수강생 <그녀>의 의도적 접근으로 자신이 쓴 소설과 관계가 있다는 연년생 여동생의 실종사건을 돕게 된다. 그녀는 왜 <소설가>인 주인공에게 일을 부탁했을까? 왜 경찰에는 알리지 않았나? 주인공의 소설과 실종사건에 대체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이 <미스터리>하고 이상한 설정은 민성 자신의 소설, 그리고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과 무의식에 연관이 있음을 직감하며 서서히 그 진실을 향해 다가간다. 그리고 저자는 민성의 소설 속 설정과 피, 방화, 연쇄살인마의 상징이 아즈텍의 고대도시인 '테노치티틀란'의 사람을 재물로 바치던 의식, 프레이저 <황금가지> 속 멕콜리 시의 사제, 인신공회와 연관이 된다는 사실, 죽은 두 여자의 살해 방법이 마치 인신공회의 그것을 닮아 있다는 점 등의 <퍼즐> 을 하나씩 던져주며 극도의 <서스펜스>를 조장한다.
사건을 맡은 형사 또한 나름대로 피해자의 주변인물을 조사하다, 첫 번째 희생자의 유력한 용의자로 그녀가 중학교 때 과외를 받았던 선생을 지목하고 그 뒤를 좇는다. 3년 전 실종되었다가 갑자기 나타난 용의자. 희생자의 친구들과도 비밀스런 비밀을 공유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의 과거 행적을 조사하던 중 그가 쌍둥이였다는 사실, 그리고 1999년 <용호농장>의 화재사건의 생존자였다는 것을 밝혀내며, 사건의 중심에 바로 <용호농장>과 그곳의 1999년 화재사건이 있다는 것, 그리고 민성이 알게 된 <인신공회>의 비밀에도 접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도시에 연쇄적으로 일어나던 방화사건과의 연결고리가 나타난다. 이 여러 가지 관계없을 것 같던 일들이 결국 하나로 엮이게 되며 소설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용호농장에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자체적으로 살아가던 공동체, 이를 위해 세워진 병원 그러나 이 모두를 태워버린 화재사건, 기억을 잃어버린 생존자 그리고 연쇄살인. 이들의 연결고리는?
저자는 슬프게도 소설이 끝난 후에도 친절하게 이들을 설명해 주지 않는다. 소설은 조금 느린 듯 전개되지만 한 순간도 방심할 수가 없다. 의도적인 설정인지 대화가 끝나지도 않았을 때 바로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 버려 오타인지 설정인지 고민하게 만들기도 하고, 소설 초반에 깔려있는 복선들을 자칫 의미 없이 훑어 읽었다간 앞 페이지를 다시 펼쳐보게 될지도 모른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잔 다르크와 동화작가 샤를 페로, 아즈텍 고대도시, 인신 공회 등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 전설, 상징들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언급된 작품과 상징들은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며 긴장감을 유지하는 핵심이다. 독자는 저자가 제시하는 붉은 피<레드>가 흥건한 끔찍한 장면들을 상상하며, 주인공들을 걱정하고, 또 의심하게 한다. 정말로 저자는 불친절하다. 그러나 똑똑하다. 독자의 예상을 뒤엎는 <반전>, 결국 소설 끝에 가서야 이 이야기의 전말을 알게 되지만 그 끔찍한 탐욕의 진실 앞에서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실로 오랜만에 멋진 소설 한편을 만났다. 조금은 축축하고 음산한 이 소설은 여름에 개봉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를 상상하면 딱 맞을 것 같다. <반전, 비밀, 연쇄살인> 그리고 결론에 대해서도 분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영화 같은 아주 흥미로운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