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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비나무의 노래 - 아름다운 울림을 위한 마음 조율
마틴 슐레스케 지음, 유영미 옮김, 도나타 벤더스 사진 / 니케북스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가문비나무의 노래》

어떤 것이든 처음으로 무엇을 경험하는 순간은 인생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그 첫 경험이 좋았다면 오랫동안 고마워할 것이고, 비린 것을 잘 못 먹었을 때나, 락 공연장에서 처음 들은 기타 사운드가 귀를 찌른다던지 하는 경험은 그 첫 인상을 뒤엎을 만한 어떤 계기를 만나지 못한다면 평생 색 안경을 끼고 안 좋게 볼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처음 바이올린을 만났을 때 그런 경험을 했는데, 이제껏 녹음된 음원만으로 들어오던 바이올린 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깊이와 울림을 느꼈을 때 나는 마치 다른 세상으로 옮겨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사운드와 40인 조가 넘는 국악단의 청아한 소리가 파도를 덮치듯이 나를 덮칠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 후에 나는 평소에 잘 접할 수 없는 이런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을 만드는 장인이라니, 그의 눈으로 보는 세상과 인생살이는 어떨까, 문득 그런 그의 삶을 살짝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 것이다. 사실 바이올린에 대한 경외심은 오래전 <The Red Violin>이라는 영화를 보고 난 후로 생긴 것이다. 장인의 어떤 저주와도 같은 비통함은 악기에 스며들어 300여 년 동안 이 바이올린을 소유한 사람을 '소유' 한다. 이는 악기에 마치 영혼이 있는 것 같은 신비로움과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영화 레드 바이올린>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25582
17세기 이탈리아, 바이올린의 장인 부조티(이렌느 그라지올리)는 곧 아이를 얻게 될 꿈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평생의 반려자였던 아내는 아이를 낳다 목숨을 잃고, 절망한 부조티는 채 식지 않은 아내의 피를 받아 '레드 바이올린'을 완성한다. 사랑과 절망이 섞인, 세상 어디에도 없는 명품. 이 레드 바이올린은 그의 운명에 따라 소유한 사람을 파괴적인 매력으로 끌어당기며 세계 곳곳을 떠돈다. 바이올린에 집착하던 어린 천재는 심장마비로 죽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성적인 환희를 느끼던 음악가는 자살한다. 300년 후, 레드 바이올린을 손에 넣기 위해 경매장에 모여 든 사람들 앞에 마침내 바이올린에 얽힌 비밀이 밝혀진다.
그럼 이 책을 쓴, 독일의 바이올린 장인 <마틴 슐레스케>의 바이올린은 어떤 악기일까. 그는 어떤 바이올린을 만들고,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요즘은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예전에, 직업과 직장은 다른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요즘 사람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일을 찾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위해 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는데, 그나마 직장은 구하기조차 힘들다. 그러나 그보다 더 슬픈 것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이고.
이런 세상에서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을 찾는 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 또한 내가 하는 일을 <소명>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라 그 길이 쉽고 안온한 길이 아님은 잘 알고 있다. 저자는 훌륭한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찾기 위해 남들은 힘들어서 가지 않는 겨울에도 나무를 찾으러 다니고, 도제 생활을 할 때부터 매일매일 작업장에 나가 스승의 일을 돕고 연장을 쓰고 연마하는 법을 배웠다. 좋은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나무를 두들기고, 그 울림을 듣고, 음악을 듣고, 스스로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며, 악기 연주자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다.
이 책은 내가 처음 예상했던 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바이올린 장인의 수필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뜻밖의 내용을 만난 것이다. 이 책은 한주에 하나의 주제를 그리고 일주일 6~7일 동안 그 주제에 대한 짧은 생각 한 구절씩, 총 52주 동안 이어지는 이야기를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담은 책이다. 일상적인 경험 속에서 저자는 신앙과 믿음의 진리를 끌어올린다.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라 명상서적이기도하며, 바이올린을 만드는 소명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으로써의 깨달음과 기도, 믿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나무를 찾고, 자르고, 두드리고, 파고, 깎고, 칠을 입히고, 수리하고, 연주를 듣는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의 뜻으로 생활하는 감동을 보여준다. 나는 종교가 없기 때문에 어떤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보더라도 큰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신앙인이 읽는다면 그 감동은 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상과는 많이 다른 책이었지만 저자가 만들어내는 깊은 울림은 내게도 좋은 영향을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