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송 민음사 모던 클래식 65
율리 체 지음, 장수미 옮김 / 민음사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소송》

 

 

 

<건강이 최우선 가치이자 법인 21세기 중엽의 미래> 사람의 몸에 마이크로 칩이 삽입되고 알몸으로 건강과 신체에 관한 모든 것이 노출, 관리, 통제되는 사회. "건강은 정상성이며, 정상성은 건강" 이라는 순환논리의 오류가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 나무위에 지은 집은 "다칠 위험", 반려동물은 "전염위험" 이라 불리는 사회. 이 사회는 <방법-Die Method>이라 불리는 체제 아래의 자유롭고 안전하게 보이지만 전혀 자유롭지 않은 사회다.

 

각자의 DNA 가 관리되기에 질병관리, 운동, 먹을 것, 나아가 결혼까지 각자의 DNA에 맞는 과제와 의무가 지워진다. 생물학 전공자인 주인공 <미아 홀>은 강간 살인사건의 억울한 희생양이 되어 자살로 생을 마감한 동생 <모리츠>의 일로인해 깊은 슬픔과 무기력에 빠져 있다가 신체 상태와 식사, 운동, 수면 등의 정보를 주기별로 보고해야 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법정에 소환되고, 담배라는 독극물을 피웠다는 죄까지 추가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동생의 변호를 맡았던 <로젠트레터>를 만나게 되어 자신의 변호를 맡기게 되는데, 이 사건에서 로젠트레터는 모리츠의 무죄를 증명해 내고, 미아 홀은 체제를 불신하는 사람들의 상징적인 인물이, 모리츠는 숭고한 순교자가 된다. 사건은 그러나 독자의 바람과는 달리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체제를 옹호하고, 체제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억압을 정당화 시킨 <건강한 인간 오성>의 저자이자 체제의 중요한 인물 <크라머>와 <방법>의 조작된 증거로 인해, 미아 홀은 체제를 뒤엎으려는 불순한 세력 <달팽이>의 수괴로, 생물학 전공자의 경험으로 바이러스를 퍼트려 모두를 죽이려한 테러리스트가 된다.

 

그런데 소설의 거의 후반부인 이 장면에서 참으로 재미난 상황이 연출된다. 과거 중세시대 마녀사냥에서와 같이 이 체제 또한 개인의 자백이 있어야 처벌이 가능하다. 크라머를 내세운 <방법>은 그녀에게 앞서 말한 혐의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조작된 증인, 조작된 증거, 심지어 고문까지 자행한다. 자, 이제 그녀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녀는 영웅이 되어 어리석은 민중을 밝은 빛으로 인도할 것인가? 결국 <방법>의 체제아래 부활한 <마녀>가 되어 역사 속에서 사라질 것인가?

 

 

솔직히 소설은 굉장히 현학적이고 읽기가 불편하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것은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서사적 구조라기보다는 각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 나타나는 자유, 인권, 권리, 도덕, 사랑, 자연 등 철학적 사유이다. 그 대화는 마치 연극의 대사와 비슷하다. 때로는 독백이, 때로는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은 무료함,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에 불쑥 불쑥 끼어드는 상상의 인물인 <이상적 애인>의 대사가 때로는 독자를 생경한 세계에 떨어뜨려 놓기도 하고,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기도, 짜증나게도 한다.

 

그리고 결론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겉으로 보기엔 해피엔딩이라고 해야겠지만 미아 홀에게는 분명 좌절이며, 패배이며, 경악할 일이 분명하다. 결국 그녀에게서 죽을 권리마저 빼앗아 간 것이기에.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건강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사회, 빼앗겼지만 그런 줄 모르는, <병날 권>, 고민한 권리, 생각할 권리를 안전이라는 이유로 거세당한 사회.

 

조작된 사건, 언론의 통제, 선동, 체제의 강압은 과거에도 현 시대에도 형태만 바뀐 채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맨 먼저 우리는 체제를 기독교라 불렀어요. 그 다음엔 민주주의라고 불렀죠. 오늘날엔 방법이라 부르고요. 체제는 항상 절대 진리고, 항상 순전히 좋기만 한 것이고, 항상 온 세계를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강박적 욕구죠. -p181-> 지금 우리에게 <방법>은 무엇일까? 모든 가치위에 군림하고, 때로는 신앙처럼 추앙되고,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그 무엇, 바로 <자본>이 아닐까? 

 

이 소설은 <건강>을 소재로 진정한 자유, 독재, 언론의 역할, 인권, 법과 국가의 역할 등을 고민하게 해 주는 소설이다. 아무리 선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것이 과연 공공의 선이 될 수 있는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정당한 사유가 되는 것인지, 소수의 희생을 강요할 수 있는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과거의 이념 논쟁을 끌어들여 통제와 규제, 자유의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의 상황에 많은 시사점을 주는 의미심장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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