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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글 쓴 남자, 안개 속의 살인
시마다 소지 지음, 이윤 옮김 / 호미하우스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고글 쓴 남자, 안개속의 살인》
책을 덮고 나서 참으로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이 소설에 공식적으로는 2건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더 많은 '살인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바로 돈과 편리함에 모든 것을 팔아넘긴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이 도시에는 의외 적으로 할머니들이 운영하는 담뱃가게 3군데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일본에서는 담뱃가게를 해야 자판기 사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 잘 찾지 않는 가게라도 (보통 담배는 자판기로 구매) 운영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가게 중 한 군데 주인 할머니가 살해당하고, 증거는 근처에서 목격되었다는 고글 쓴 사람, 노란 줄이 그어진 5천앤 지폐2장, 피 묻은 대리석 탁상시계뿐이다. 경찰은 이 증거를 들고 지지부진 씨름하다 한 여성 추행 사건에서 고글 쓴 남자를 보았다는 신고를 받고 수사에 전환기를 맞는다. 이 여성을 중심으로 수사를 넓혀가는 경찰. 가수가 꿈인 여자에게 노래를 가르쳐주는 작곡가, 이 여자와 한 건물에 사는 애인, 그 애인의 룸메이트, 그리고 이 여자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마트사장이 용의선상에 오른다.
한편, 이 소설은 크게 두 줄기로 전개가 되는데, 소설 초반에 '나' 로 서술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의 한 남자가 등장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다. 이 남자는 중학교 때 소설 배경이 되는 마을의 숲에서 성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이 남자는 <스미요시 화학연구소>에 취직해서 살아가게 되는데, 이 회사는 원자력 발전의 방사능 원료를 만드는 곳이다. 참으로 어이없게도 이 연구소는 위험한 방사능 원료를 다루는 데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하청업체>의 직원을 쓴다. 하청업체의 사람이 늘 바뀌기에 안전교육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고, 결국 방사능 피폭을 당하게 되는데 이 '나' 라는 남자도 감독하다가 함께 사고를 당하고 만다. 이 소설 속 피폭을 당한 하청노동자는 몸 속 DNA가 가닥가닥 끊어지게 되어 피부가 검어졌다가 벗겨진 후 다시 소생하지 않아 근육과 지방층이 그대로 드러난 채로, 장내 출혈이 계속되어 끔찍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는다.
이 소설에서는 원자력의 위험성이 아주 중요하게 다뤄진다. 현실적으로 우라늄이라는 광물 자체는 지구상에 대단한 매장량을 가지지도 않고, 이 에너지가 내놓는 폐기물인 방서성핵종의 독성과 위험증은 상상을 능가한다고 한다. 이 폐기물은 없앨 수 없고 지구 어딘가에 묻어 둘 수밖에 없으나 이 반감기는 몇 십 억년이 넘는 물질도 있다. 이들이 인간의 심신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실질적인 것은 암을 만든다는 것 밖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핵종의 독은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고 DNA의 분열 복제 순간을 습격해서 복제 에러는 유도 서서히 별종의 생물로 바꿔버리는 무시무시한 성질을 지녔다고 한다. 그리고 이 도시에 악마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저자는 원자력의 위험성보다 이를 대하는 인간들의 욕구와 이기심에 더 큰 무게를 두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이 사고를 당한 뒤 안개 낀 밤에는 고글을 끼고 미친 듯이 도시를 질주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기억이 없다. 결국 범인 찾기에 어려움을 느낀 경찰은 언론에 살인 사건의 범인인 <고글 쓴 남자>를 수배하는 내용을 내 보낸다. 사람들은 이 남자를 보았다며 경찰에 신고를 하기 시작하는데, 정작 '나'는 살인을 저지른 기억이 없다. 어찌된 것일까? 방사능은 그의 기억을 파괴한 것일까?
여기저기서 이 남자를 보았다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스미요시 화학연구소에 대한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그 근처 숲에는 기형의 동물들의 사채가 묻혀있고, 귀신이 출몰한다는) 고글 쓴 남자의 이야기는 <도시의 괴담>이 되어 안개 속을 떠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밤, 나는 또 다른 나와 마주친다. 눈은 붉고 고글을 쓴 한 사람, 그리고 나는 질문 한다.
"너는, 나인가?"
결국 경찰은 살인사건의 전모를 파헤친다. 그러나 사건이 해결된 후에도 씁쓸함이 가시지 않는다. 저자의 교묘한 트릭은 독자를 점점 더 깊은 의문 속으로 데리고 간다. 이건가 싶으면 아니고, 저건가 싶으면 또 다른 증거가 나타난다. 그렇게 독자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바로 이게 너의 모습이 아니냐고, 도시의 괴담, 도시의 괴물은 바로 너희가 만들어 내는 것 아니냐고 다그친다. 독자는 불편함에 빠진다.
돈의 노예로, 편리함의 논리에, 정치권의 이권놀음으로 병들어 가는 것은 여기나 저기나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한 쪽에선 그 이유로 가족이 해체되고, 또 한 쪽에선 괴물이 만들어 지고, 또 한 쪽에선 살인이 일어난다. 인간은 점점 하나의 점으로 소외된다. 저자 <시마다 소지> 는 독자를 들었다 놨다하는 매우 똑똑한 작가이다. 후쿠시마 원폭이후 방사능의 위험에 대한 우리의 불안감에 새로운 <괴담>을 만들어 냈다. 바다 건너 한국에서 우리는 이런 현실 앞에서 수명이 다한 발전소를 재가동하고, 이도 부족해 발전소를 더 지을 예정이라고 하며, 이에 위험을 경고하는 사람들을 <괴담 유포자>로 몰아가고 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이런 도시 괴담은 참으로 많았다. 어린아이만 잡아간다는 홍콩 할매, 요쿠르트를 얻어먹고 정신을 차려보면 콩팥이 하나 없어진다는 그런 것들. 이제 정부가 나서서 광우병 때도 방사능 문제도, 민영화문제도 어리석은 일부 시민이 퍼뜨리는 괴담으로 몰아간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이런 괴담 아닌 괴담이 퍼질 때 어떠한 원인도 이유도 없었는지를. 언제나 원인이 있었고 그 원인은 사람들의 입을 타고 가며 더 큰 무서움으로 부풀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그 것을 이용하는 세력도 있었다. 괴담이라면 언젠가는 잊힐 테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두고두고 주위에서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불행한 남자, 고글을 쓸 수밖에 없는 남자, 그리고 사람들. 이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소설이 그저 재미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이며, 추천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