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질풍론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남희 옮김 / 박하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질풍론도》
<히가시노 게이고> 스타일을 벗어난 빠르고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소설은 점점 자극적이고 기괴한 형태가 되어가는 현대의 추리, 스릴러와는 달리 추리 자체의 재미를 추구하는 추리소설의 원형에 가깝고, 사회적인 주제의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 결 같이 가족과 사회에 따뜻한 시선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조금은 무겁고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전개감도 그렇다. 그런데 이번 소설 <질풍 론도>는 그 형식을 과감히 파괴한듯하다. 스키장을 배경으로 범인이 숨겨놓은 병기를 찾는 주인공들의 질주는 상쾌하고 시원하다. 물론 그 안에 가족 간의 유대와 공감의 코드는 여전하다.
다이호대학 의과대학연구소의 직원인 구즈하라 가쓰야는 허가 없이 몰래 개발하던 탄저균 생물학 병기를 연구소에 들키게 되면서 결국 쫓겨나는데, 자신이 만든 탄저균 병기 K-55를 몰래 갖고 나와 스키장 근처에 묻어두고 연구소와 협상에 들어간다. 이 병기는 아주 미세한 형태로, 섭씨 10도가 되면 밀봉된 뚜껑이 열리며 공기 중에 퍼져나가 호흡기 질병을 유도하는데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지만 치료제가 없는 강력한 대량 살상 병기이다.
제시액은 3억앤. 어마어마한 금액을 제시하는 범인은 병기를 묻어둔 장소를 찾을 힌트를 주는데, 병기를 묻어둔 곳 나무에 전파 송신기인 테디베어를 걸어두고 이 사진을 증거물로 보낸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기도 전에 범인은 어이없게도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결국 사진 몇 장과 수신기로 우리의 주인공들은 날이 따뜻해지기 전에 이 병기를 찾아야만 한다. 극비로 개발한 것이라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아무에게도 알려져선 안 된다.
이 사건해결을 맡은 주인공은 연구소에서 같이 근무하던 구리야바시로 서장 도고의 명령으로 전면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이 병기가 묻혀 있을 만한 스키장을 찾아내고 실재로 그 병기를 찾는 것은 주인공이 아니다. 서장 도고는 구리야바시를 전화로 윽박지르기만 하고 우리의 주인공은 서툰 스키솜씨로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소설 초반부터 그냥 발이 묶여 있다. 이를 해결하는 것은 의외로 구리야바시의 아들 슈토, 스키장의 구조요원인 네즈와 여성 스노보드 선수 치아키 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 슈토가 스키장에서 만나게 된 학생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설명한 카피 "등장인물에게 절대 지지마라", "지상 최고의 두뇌게임" 등의 설명에 비하면 내용은 그리 자극적이거나 충격적이지 않다. 사건이 해결되는 방식도 뒤에 나오는 반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라는 것. 이 소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다. 그의 전작들을 읽어보았다면 이 소설이 얼마나 <스피디>한 소설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카피들만 보고 이 책을 선택한다면, 뭔가 엄청난 것을 기대했다면 살짝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글 서두에 말한 히가시노 게이고가 가진 특징들인 추리소설의 원형, 가족 간의 유대와 사회를 향한 따뜻한 시선, 자극적이지 않은 추리하는 재미는 생생히 살아있다. 긴박한 상황에서 등장인물들은 '추리'를 통해 사건에 다가가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냉정함을 가지고 있다. 그 와중에 신종플루로 가족과 친구를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따뜻함을 전해준다.
자극적이지 않은 추리소설의 순순한 재미를 느끼고 싶거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들이라면 주저 없이 선택해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뭔가 정말 강렬하고 짜릿하고 강한 자극을 원한다면 고민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소설. 상쾌함을 주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