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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근혜노믹스 - 정승일의 단도직입 경제민주화론
정승일 지음, 공은비 엮음 / 북돋움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굿바이 근혜노믹스》

개인적으로 경제서는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평소 궁금해 하던 부분이 많아서 읽게 되었다. 특히 선거철이면 공약으로 난무하는 경제관련 내용, 때로는 포퓰리즘으로 공격받고, 때로는 공수표를 난발하며 당선된 후 당연한 수순으로 폐기처분 되는 약속들은 나를 포함한 일반 대중들은 알 수 없는 수치들과 용어들로 이뤄졌다.
이 책은 현재 스웨덴 등 북유럽식의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비영리 연구 및 정시 단체인 '사회민주주의센터'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고, 장하준 교수와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공저한 정승일 박사를 경제부기자 공은비가 인터뷰한 내용으로 공은비가 묻고 정승일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바로 '경제 민주화' 이다. 보통 경제민주화를 재벌개혁과 동의어로 쓰이고 있는데, 민주화란 말이 들어가니 직관적으로 굉장히 긍정적일 것 같긴 한데 학자들마다, 사람들마다 '경제 민주화'를 조금씩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모호한 '경제 민주화'의 개념을 세울 수 있고, 보수와 진보, 시장만능주의, 국가개입, 야경국가, 완전시장, 복지국가 등 교과서에서 보았던 용어들도 만나고, 지난 정권부터 현 정권까지의 경제 문제 관련 정책들의 차이점도 알 수 있다.
경제민주화란 용어는 1920년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사회민주당의 '프린츠 나프탈리의' 저서 <경제민주주의: 그 본질과 길, 그리고 목적>에서 처음 쓰였다고 하는데 마르크스와 레닌의 이론을 따르는 공산주의자들의 "생산수단(기업)의 즉각적 사회화, 즉 국유화" 를 주장한 것에 대항하여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주장한, 국유화가 만능은 아니며 종업원공동결정제처럼 종업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기업의 의사결정기구에 참여해 "자본가들과 함께 공동으로 통치하는 것" 이 중요하다는 내용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경제민주화-재벌개혁에서 이런 논의는 없다. 우리에게 경제민주화는 출자총액제한, 금산분리처럼 재벌 그룹을 '축소' (계열사 강제분리) 혹은 재벌그룹 해체에 있어 시종일관 "자유주의 경제 사상" 편에 서있다고 한다. 대기업을 해체시켜 중소자본들(중소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완전시장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 한다.
그러나 정승일 박사의 의견은 다르다. 다양한 자료와 논거가 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지금 논쟁하고 있는 경제민주화-재벌개혁이 과연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것에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대부분이 비정규직세대, 삼포세대 신세가 된 원인을 IMF 때문이라고 보지만 정승일 박사는 97외환위기 때문이 아니라 많은 <경제학자들이 외환위기의 원인을 잘 못 진단하고 잘못된 대처를 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군부독재시절을 마감하고 들어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군부독재 유산의 해체와 함께 박정희 경제체제 유산의 해체를 국정과제로 제시하고, 군부독제가 수행한 것은 모두 악이라는 윤리적 흑백논리가 등장하면서 정부, 국가 주도 자본주의는 악이고 시장주도 자본주의는 선이라는 잘못된 사고방식 때문에 국민 대다수의 삶을 좌우하는 실질 권력은 민주공화국이 아닌 <시장 자본주의>에 넘어갔다고 말한다.

주류 경제학은 언제나 완전 경쟁 시장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고, 재벌그룹 같은 경제력 집중은 이를 방해하는 시장 '왜곡' 현상으로 보기에 재벌그룹 자체를 해체하자고 주장하지만, 정승일 박사는 경제 민주화의 핵심을 돈 없고 자본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어떻게 기업과 국민경제 차원에서 확보할 것인지의 문제로 본다. 그리하여 재벌을 해체하자는 논의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처음 경제민주주의가 태동한 이유처럼 산업 민주주의, 노동권, 종업원의 권리 차원에서 볼 것을 주장한다. 재벌 '가'와 재벌 그룹을 분리하여 생각하여야 하며, 재벌그룹을 지배하는 총수의 일가들의 권리와 독점을 해체하되, 후발 공업국가의 특징인 집중된 경제력을 인정하면서 그 집중된 경제력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소유, 통제할 것인가를 고민하자고 제안하며 그 방법들을 제시하고, 스웨덴, 독일, 벨기에 등을 예로 든다.
이런 주장들을 펼쳐가면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철도, 의료, 교육 등 공공재에 대한 민영화(사영화)에 대한 의견, 복지에 관련된 의견을 말하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국가개입', '국가주도'의 정책에 대한 필요성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현재 한창 논의 중인 복지에 관해서도 주택의 예를 들면서 고소득 국민의 돈을 끌어다 저소득 국민을 "도와주는" 어떤 적선 형태의 복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보험처럼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복지를 해야 한다고 말하며 그 해법을 제시한다.
개인적으로 경제학은 참 어려운 분야이지만 이 책은 그렇게 힘들게 읽지는 않았다. 실제로 경험하고 느끼는 부분을 다루었기 때문인 것 같고,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수와 진보의 입장 차이를 떠나서 이 책은 읽어볼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독재의 유산을 나 또한 모조리 부정하였지만 후발 공업국가인 상황에서 보호무역이나 대기업 육성정책, 국가 주도형 복지정책은 적절했다고 생각된다.(물론 인권을 유린한 독재를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국민의 세금으로 받은 엄청난 지원, 보호무역을 통해 국민이 키워준 대기업이 자신이 잘나서 크게 된 냥 오만하게 굴며 법망을 피해 자신의 이익만 꾀하는 재벌 총수 일가의 개혁은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