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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정신 -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
강창래 지음 / 알마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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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사람들이 내게 "책을 왜 읽느냐, 재미가 있느냐" 라고 많이 물어본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참 책을 많이 읽는 것 같지만 실제 그렇지는 않다. 평균 한 달에 15~20권정도.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일 년에 300~500권정도 읽는 것 같은데, 처음에 이 얘기를 들었을 땐 정말 놀라웠고 심지어 거짓말이 아닐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책을 정독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그 중에는 가벼운 책들도 들어있을 테니까.
이 책은 이런 의문으로 시작한다. "책이 왜 재미가 없는가" 처음 말했던 내게 책이 재미있냐고 왜 읽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은 1년에 책을 거의 1~2권도 읽지 않은 사람이다. 분명 그들에게 책은 "재미없는 물건" 이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얘기는 들어왔을 터이니 뭔가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 같고.
자, 이 들이 "책을 읽어야 겠다" 고 생각하며 맨 처음 하는 일은 뭘까? 바로 "필독, 권장도서", 혹은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보는 것일 게다. 많은 사람이 읽었다면 재미있겠지, 그러나 정말 그런가? 필독, 권장도서에는 한번 쯤 제목은 들어본 고전들이 빼곡히 적혀있고, 베스트셀러는 많이 팔린 책일 텐데, 작년 2013년에 유행했던 책은 바로 "인문서적" 이었다. 이 모두 책이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처음에 읽기는 힘든 분야다. 이렇게 되면 바로 그 책은 바로 '교과서' 가 되었다가 다 읽히지 못한 체 내팽겨 질 것이다.
우리는 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책은 예전부터 교과서였고, 공부였고,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어려운 책을 꼭 읽어야 했고, 추천해 주는 책들 위주로 꼭 다독하고 정독해야 했다고 배워왔다. 과연, 책은 정말 그런 존재인가? 그래야만 하는가? 매년 발표되는 권장도서를 읽어야만 하는, 그 외의 책들은 그럼 그냥 그저 그런 책인가?
저자는 이런 물음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메타북: 책에 대한 책, 책이란 무엇인가,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무엇인가, 책에 담긴 내용인 '생각' 의 정체를 다루는 책> 이 책은 바로 <메타 북> 이다. 책을 읽으며 무언가 기준이 되어주는 책, 남들이 규정해 놓은 <편견>에 휘둘리지 않고 책과 그 안에 담긴 생각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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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 하면 공자나 소크라테스 등의 철학자들의 책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논어나 변명이 그들이 직접 쓴 책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는가? 공자가 우리가 알듯이 인간의 일에는 초연한 대가가 아니라, 기득권에 속하기 위해 벼슬자리에 안달난 사람이라면?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는 진리를 위해 순교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자들에 의해 처형당한 사실을, 그가 스파르타같은 독재를 옹호한 사람이라면? 자, 그러면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은 어찌되는 것일까?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해보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은? 아마도 계몽사상가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떠올리지 않을까? 그러나 그 시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은 지금도 격이 높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SF나 포르노 소설이었다면? 대중을 혁명의 길로 이끈 것이 위대한 사상이 아니라 포르노나 연애 소설이었는데, 계급과 상관없이 사랑과 섹스의 호환이 가능하다면 귀족들만 천부적인 특권을 가진다는 사회제도는 설득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시대에는 정치적인 논문이나 포르노그래피 모두 철학서로 취급했다는 사실을 만나게 되고, 그리하여 포르노그래피의 터부는 국가권력이 만들었다는 사실에 까지 도달 할 수 있는 것이다.
과학은 어떨까? 코페르니쿠스의《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아무도 읽지 않고 역사상 가장 덜 팔린 책으로 꼽힌다는 것을 아는가? 우리가 위대하다고 칭송하는 갈릴레오의 실험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허접하고 그전 많은 과학자들이 이미 연구하고 발표한 것이란 것, 종교재판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던 갈릴레오와 달리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조르다노 부르노>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있을까?
이렇게 저자는 고전을 해체하고 너무나 많이 듣고 익숙해져 아무런 의문도 질문도 하지 않는 '책' 에 대해 다양한 면을 들추어내며, 책의 본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가 말 하듯 책은 이미 저자의 <편견>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대를 지나오며 의미가 덧붙여지거나, 퇴색되기도 하며, 자본이나 권력에 의해 조작되거나 포장, 강조되기도 해왔던 것이다. 때로는 저자의 욕망이 세상을 속이기도 했고, 편견이 상식으로 굳어져 더 이상 넘볼 수 없는 견고한 벽이 되기도 하고 말이다.
이에 독자의 <비판적 책읽기> 가 더욱 중요해 지는 것이다.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가져야 한다. <메타 북>은 그래서 중요하다. 내가 공자를 읽을 때 그 시대의 사회 역사적 배경, 그와 함께 활동한 학자들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며, 과학을 읽을 때는 이 과학이론이 풍미했던 한 시대를 알지 않고서는 그 이론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생학이 인간을 우열과 열등으로 나누고 뱃속의 아이를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는 '법률' 제정에 까지도 영향을 미치며, 나치의 대량 살상이 가능하게도 했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책을 왜 읽느냐, 재미가 있느냐고?" 그렇다. 나는 책이 재미있다. 내가 만일 "편견" 에 둘러싸인 견고한 고전, 읽지는 않았지만 다들 알고 있는 당연한 생각의 폭력에 포박 당했다면 책을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 또한 필독도서와 베스트셀러 사이를 오가며 고민하고 있겠지. 그러나 이런 《책의 정신》같은 <메타 북>은 나에게 맞는 책읽기 기술, 좀 더 넓은 시야를 보여 주고,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 진리가 아님을 일깨워 준다. 그리하여 저자는 하나의 책을 읽고 싶다면 이 책에 대한 다양한 시각의 책들을 함께 읽어볼 것과, 그 책이 나온 시대의 역사, 사회적 배경에도 함께 관심을 가질 것을 권한다.
책은 그냥 책이다. 어떤 책도 훌륭하고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단지 다양한 의견 중 하나이고 모두 내 삶을 살 찌워 줄 것이다. 《책의 정신》이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읽는가> 다. 그리고 책이 주는 진리, 달콤한 선물을 받을 일이다. 그것은 오로지 <즐거움>이다. 남들의 시선, 이미 만들어 놓은 틀을 깨부수면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남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 나 스스로 찾아가는 <비판적인 길> 을 따라 걷다보면 많은 열매들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책의 정신》이 나에게 많은 지식과 충격, 해방감을 주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