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호숫가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영화 '용의자X의 헌신' 이었던 것 같다. 실은 영화는 너무 지루하고, 답답하리만큼 느려터진 일본의 정서 때문에 원작 소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그 첫 경험 때문에 그의 다른 소설들도 선뜻 읽기가 내키지 않았는데 선물 받은 원작을 시작으로, 패러독스13, 신참자를 연달아 읽으며 결국 그의 소설을 좋아하게 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단 추리소설의 형식에 가장 충실한 작가가 아닌가 한다. 내가 예전에 밤새서 읽었던 아서 코난 도일, 애거서 크리스티, 에드거 앨런 포 등의 소설에서 느꼈던 정통 추리소설의 느낌을 주는. 그래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에 어떤 믿음 같은 게 있다.

 

그의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주인공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 자극적 소재이지만 '자극적'에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닌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 주는 형식, 그리고 사회 고발, 세태의 현실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살아있는 감각 등으로 볼 수 있겠다. 요즘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한 호러, 엽기, 잔인한 소설이 너무도 많아 읽기에 부담이 되는 경우도 있기에 그의 일관적인 작풍은 독자들에게 어떤 믿음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이 소설은 호숫가에 자리한 별장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네 쌍의 부모, 네 명의 아이, 과외선생, 그리고 부모들 중 한 아버지인 주인공 순스케의 내연녀, 등장인물은 이 인원이 전부다.

 

호숫가의 조용한 별장. 네 쌍의 부모와 그들의 아이들은 유명한 사랍중학교 입학이 목적인 비밀과외를 하기위해 여기에 모였다.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부모지만 자식을 위한다는 같은 목적으로 모인 그들은 입시에 대한 비밀을 공유하지만 서로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 내며 합숙을 하게 된다.

 

주인공인 나미키 순스케와 아내 미나코, 그의 의붓아들인 쇼타 가족, 사카자키 요타로와 아내 기미코, 아들 다쿠야 가족, 후지마, 아내 가즈에, 나오토 가족, 세키타니 다카시, 아내 야스코와 하루키 가족, 과외선생 쓰쿠미 그리고 순스케의 내연녀 다카사나 에리코.

 

순스케의 내연녀이자 그의 회사의 직원인 에리코. 네 가족과 과외 선생만 있는 곳에 줄 것이 있다며 불쑥 그녀가 찾아온 후 이 무리에 이상한 긴장감이 돈다. 밤이 되어 몰래 에리코를 만나러 갔다가 허탕을 치고 온 순스케는 어이없게도 그들이 머무는 별장 2층에 살해당한 그녀를 보게 된다. 놀랍게도 범인은 그의 아내 미나코.

 

그때부터 일은 이상하게 돌아간다. 살인이 일어나면 경찰에 알리는 것이 정상인데도 그 일행들은 마치 자신의 일인 냥 시체를 유기하고, 살인을 은폐하는데 힘을 합친다. 그들은 서로를 설득하고, 입을 맞추고, 시체가 발견되지 않도록 갈무리 하며 위험한 일들을 하나하나 해결한다. 그들에게 분명 주인공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그들의 치부와 비밀과 의혹이 하나씩 수면위로 떠오르고 현 일본 사회가 가진 갖가지 병폐들도 드러난다. 현재 한국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입시지옥, 무한경쟁, 그 속에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비리들을 비롯해서 가족 해체, 이혼과 자녀문제, 결혼 후 외도문제까지. 그러나 그런 주인공들을 그 누구도 무작정 욕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가진 필력이 아닌가 한다.

 

몇 번의 반전 끝에 드러나는 진실. 그러나 그 진실은 우리에게 사건 해결의 시원함을 주지 않는다. 이는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닌, 우리 모두가 만들어 놓은 잘못이기 때문에.

 

책장을 펼치고 단숨에 다 읽었다. 그리고 오랜 여운이 남는다. 추리하는 지적재미, 교묘히 숨어있는 복선, 마치 영화를 보듯 생생하게 그려진 묘사, 숨소리까지 들리는 듯 팽팽한 긴장감, 그 안에 녹아있는 선명한 주제의식.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아주 훌륭한 '추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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