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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의 뿔
윤순례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낙타의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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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에게는 아주 오래전 신이 준 뿔이 있었는데 사슴의 꾐에 빠져 뿔을 빌려주고 못 받았기 때문에 우아하게 살 수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 도 낙타는 지평선만 바라보며 돌아오지 않는 사슴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란다. -189p-
주인공 효은이는 멀리 몽골사막에서 보내온 규용의 낡은 엽서를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등에 난 두 혹 사이로 짐을 가득 실은 낙타의 모습이 담긴 엽서. 실은 그것이 규용이 보낸 것이 아닌지도 몰랐다. 그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만들어낸 환상인지도.
효은은 과거 자신이 겪은 끔찍한 일들을 애써 외면하며 현실을 죽이는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몇 번 째 인지도, 또 얼마나 같이 살게 될지도 모르는 조선족 여자 하나를 데리고 들어왔다. 이미 혼인신고도 마쳤다는 그 여자가 온 후로 옥상에 텃밭을 가꾼다, 요리를 한다, 보일러를 고친다, 집 정리를 한다며 부산을 떠는 통에 늘 우울하고 가라앉아있던 집안 분위기는 묘하게 생기가 넘친다.
그 여자에게서 자신이 아버지가 고아원에서 데려온 양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 효은. 늘 집을 비우고 늦게 들어오던 아버지는 예쁜 여자와 살게 되어 좋다며 늘 일찍 집에 들어오며 행복한 나날을 이어가지만 효은은 이 분위기가 못마땅하여 폭발직전이다. 여자의 언니 부부가 방문하여 함께 저녁을 먹다가 아버지와 반목하게 된 효은은 결국 집을 나가, 바다에 살고 있는 규용의 어머니를 찾아간다. 과거에 그녀와 규용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막에서 엽서를 보낸 규용은 정말 바다에 빠져 죽은 것일까?
자신을 본체 만 체 하는 규용의 어머니와 묵은 감정을 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효은. 그동안 아버지는 영화처럼 간암 말기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 아버지의 형제들은 혼수상태에 빠진 아버지 앞에서, 아버지의 하나 뿐인 유산인 빌라 한 채를 두고 여자와 싸움박질 중이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법에 따라 유산은 배우자인 여자와 자녀인 효은에게 오게 되지만, 팔리기 전까지 쓰러져 가는 이 빌라에 여자와 둘이 살아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여자가 데리고 들어온 구씨라는 사기꾼 남자. 이 이상한 조합에 어느 샌가 모르게 찾아오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 그러나 그 작은 햇살 같은 행복은 아버지의 묵은 빚을 받으러 온 아버지의 친구, 사기와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경찰에 잡혀간 구씨, 그 후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조선족 여자로 인해 또 다시 흩어지고 만다. 효은은 그런 일상을 또 꾸역꾸역 살아가며 어느 샌가 그 여자를 기다리고 있다.
원래 있어야 했지만 빼앗긴 것, 가졌다가 놓쳐버린 것, 그래서 늘 우리가 그리워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낙타의 뿔>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 소설에서 효은은 사랑하는 남자 규용을 잃어버렸고, 그의 아이도, 그래서 그와 함께 할 행복한 미래도 잃어버렸다. 아버지도, 예전에 이혼해 집을 떠나버린 엄마도, 아버지가 데리고 들어왔던 여자들도, 한때 조금은 따뜻했을 집이란 곳의 느낌도, 아주 잠깐 누렸던 사람사이의 정도 모두 자신을 떠나갔다. 아니, 스스로 놓아버린 것일까? 놓치지 않기 위해 꼭꼭 잡고 있어야 했을까? 그랬다면 현재가 달라졌을까? 미래를 꿈꿀 수 있었을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 각기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고 이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 들이다. 조선족, 과부, 입양아, 미혼모, 그리고 가난. 더욱 서러운 건 그들 스스로 자신과 닮은 사람들을 소외시킨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무언의 폭력은 그래서 더욱 무섭다. 스스로 강자의 입장이 되어 같은 처지의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자신을 위로해 줄까, 과연.
그 와중에 이런 사람들끼리 부대끼며 만들어 내는 정은 그래서 더 눈물겹다. 더욱 뜨겁고 절실한 지도 모른다. 그 불안한 행복은 인정할 사이도 없이 사막의 모래처럼 또 흩어지고 만다. 이 사회에서 '이방인' 들이란 결국 정착하지 못하고 영원히 떠돌아야 만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늘 얼마 가져보지도 못한 행복, 온전하지도, 언 듯 생각하면 과연 내가 가져보았는지도 모호한, 그 잃어버린 <뿔>을 그리며 석양을 바라보고 서 있는 지도 모른다. 언제 돌아올지, 정말 돌아올지도 모른 채로 그저 그리워하며, 막연히 바라만 보는지도.
윤순례 작가는 '누군들 삶 속에 보금자리를 찾아 떠돈 유랑의 시절이 없겠는가. 갑작스런 비에 남의 집 처마 밑에 날개 접고 앉은 새처럼 외롭고 축축한 밤을 위무할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 며 작가의 말을 남겼다. 언 듯 보면 참으로 답답한 사람들이다. 왜 이렇게 살까 싶을 정도로. 그러나 길고 외로운 인생길에 우리가 바라는 것은 작가가 말한 것처럼 '잠시 비를 피할 처마' 일는지도 모른다. 그저 작은 집에 된장찌개 냄새 풍기며 밥상에 둘러앉을 사람만, 그 짧은 시간만 허락된다면 우리 삶이 그리 쓸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하나 같이 안쓰럽고 아팠다. 그들과 함께 둘러앉아 된장찌개에 소주한잔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현실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윤순례 작가의 필력이며, 바로 이 소설이 가지는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