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눈
어니스트 헤밍웨이. 어렸을 때 의무적으로 읽었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무기여 잘 있거라>, 그리고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인이 된 후에 단편집을 읽었던 것 같다. 솔직히 어렸을 때 이 책들을 읽었던 이유는 어떤 끌림보다는 의무감과 허세였던 것 같다. 그러나 <누구를 위해 조종을 울리느냐고 묻지 마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린다> 는 내용의 구절은 가슴에 깊이 남아 있다. 이 소설을 읽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 구절 때문인지 모른다.
다시 읽은 헤밍웨이는 어땠을까? 표지의 멋진 표범 그리고 눈 덮인 산. 이 표지 디자인이 가슴을 끌어 당겼고, 영문판도 함께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을 꼭 소장하고 싶다는 욕망을 일으키게 했다.
소설을 읽을 때 어떤 점을 중요시 하는 가에 따라 읽는 느낌은 많이 달라진다. 나는 속도감과 스토리 자체의 재미를 중요시하는 편이다. 호흡이 길거나 일본 소설에서 자주 보았던 극도의 심리묘사, 한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가지를 치는 등 자세한 설명이 많은 작품은 크게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단편집 <킬리만자로의 눈>은 모든 작품이 간결한 문체, 잡다한 기교가 없는 이야기 전개를 보여준다. 그러나 단편이라 스토리보다는 심리묘사나<킬리만자로의 눈> 상황 묘사 등 을 주로 하고 있는데 <두 심장을 지닌 큰 강1,2>,<살인 청부업자들>등, 헤밍웨이의 특징이라는 허무주의적 감성을 접할 수 있다.
솔직히 나는 개인적으로 어떤 주제의식이나 큰 재미는 얻을 수 없었다. 아마 내게 지식이 좀 있어서 이 소설이 나온 시대적 배경이나 문학사적 흐름을 알고 있었다면, 그 큰 흐름 속에 이 작품들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소설은 읽는 사람 나름이니까.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은 번역본과 영문판을 비교 하며 원어가 주는 느낌을 접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짧은 작품들이 엮여있어서 읽기도 쉬울 것이고 헤밍웨이의 작품을 접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읽기에 아주 좋을 것 같다. 장편을 읽기 전에 읽어도 좋을 것이고. 그리고 영문판과 함께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장점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