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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급은 없다 - 부속인간의 삶을 그린 노동 르포르타주 ㅣ 실천과 사람들 5
레그 테리오 지음, 박광호 옮김 / 실천문학사 / 2013년 8월
평점 :
노동계급은 없다
나와 '노동'과의 첫 대면은 바로 [날아라 노동] 이라는 책에서였다.
[날아라 노동-은수미] http://africarockacademy.com/10154663816
이 전까지 나에게 노동은 그저 고된 일과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만나고 나서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내 인식이 조금은 바뀌었다. 이 책은 어떤 것이 노동인지 노동자의 권리, 우리나라 노동의 역사를 알려주는 책이었다면, 이 책 [노동 계급은 없다]는 르포르타주 우리가 흔히 <르포> 라고 하는 기록문학 형식의 책으로써 자신이 살고 경험한 [미시적인] 관점의, 미국 육체노동자의 역사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속의 배경은 1900년대 초 저자의 부모세대와 현재까지이며, 자신이 더 이상 육체노동을 할 수 없을 때 까지 그들의 가족과 동료들이 노동자로 살아오면서 보고 겪은 것들이 담겨있다. 그들이 하였던 일, 나누었던 대화 등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듯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저자가 경험한 것이라 마치 추억을 회상하듯 조금은 감성적인 느낌으로 전달한다.
우리에게는 참으로 생경한 부두 노동자와 그들이 일하던 광경, 철새처럼 시기에 따라 떠돌면서 면화나 과일의 수확과 포장, 벌목 등을 책임지던 노동자들의 모습이 떠돌이처럼 살면서도 스스로 조합을 만들어 그들 자신과 동료들을 보호했고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온 모습이 조금 우스꽝스럽거나 유쾌하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므로 조금은 채색이 되었을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노동의 역사는 그리 길지가 않다. 해방 후에 바로 전쟁, 전쟁 직후 우리의 사명은 오로지 '먹고 사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아, 아리따운 젊은이들은 공장에서 고된 땀을 흘리며 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하고 각성제 주사를 맞으며, 간호사들은 독일로, 청년들은 다른 나라의 전쟁터로,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우리의 경재는 급격하게 성장했다.
그러는 와중에, 누구나 잘 알듯이 노동자의 권리는 물론 인권조차도 보장받지 못하고, 헌법조문은 쓰레기통으로 직행, 암울한 시기를 거쳐 노동자의 자각이 시작될 때 즈음 IMF를 맞고 회사에서 쫓겨나 거리로, 지금은 노동, 노동자, 권리 등은 비정규직의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이 책에서 그려지는 미국의 육체노동자들은 1900년대 초반부터 강성노조를 만들어 그들의 권리를 스스로 지키고, 산업화로 인해 더 이상 육체노동자의 존재 이유가 모호해지는 현재까지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나에겐 참 생소한 모습이다. 아직도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는 대기업이 있는 곳에서는. 그리고 그렇게 강성한 노조로 똘똘 뭉쳐 어떤 불의에 대항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그러나 과거의 모습은 좀 차이가 나지만 현재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전문 숙련자의 자리를 기계들이 대신하게 되고, 그 이후에는 나이 있는 비싼 숙련자보다 제3국의 저렴한 노동자들의 손을 빌리거나, 아예 그 곳에서 물건을 만들어 자국으로 역 수입하여 들여오는 방법으로 노동자의 설 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노조의 파업으로 비게 된 자리는 비조합원으로 대체하여 더 이상 노조가 힘을 쓰지 못하게 하거나 자본을 가진 사업주들은 정치권을 압박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을 만들도록 한다. 사측과 노동자의 대립을 이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립으로 몰고 가는 교묘한 방법으로 노동자의 적은 노동자로 만들어 버리거나, 하나의 회사에 여러 노동조합을 세우는 방법으로 진짜 노동자의 조합을 해체시키기도 하고 말이다.
이런 상황, 노동과 노동자가 사라지게 되는 상황, 아니 '의도적인 계획으로' 파괴되어온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노동은 어떠한 의미일까? 우리가 자유로이 최첨단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자유를 누릴 때 어는 한쪽에선 극심한 노동 불안정(적은 임금, 높은 노동시간 등)에 시달리는 아이러니한 현실 속에서.
저자는 이 책의 주제라 할 수 있는 이 해답을 마지막 3페이지에 담아 놓았다.
-노동이 하나의 권리로 간주되어야 하며, 노동권도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
-숙련 노동이든 비숙련 노동이든 모든 노동은 보호되어야 하고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하며, 가능한 평등하게 나뉘어야 한다. (P319) 우리가 늘 그렇듯 무엇이든 잃어버리고 나서 추억하고 그리워하기 그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