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 추적자들 -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인들의 발칙한 에덴 탐험기
브룩 윌렌스키 랜포드 지음, 김소정 옮김 / 푸른지식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에덴 추적자들

 

 

 

 

 

 

 

난 한 번도 에덴이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굳이 따지면 진화론자이며, 신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도 믿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인류가 일으킨 문명전에 먼 고대에 우리보다 더 번성한 문명이 있었을 지도 모르며, 혹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우리가 누리는 이 문명은 외계인이 전해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하물며 에덴이야.

 

 

종교인이 시각은 어떨까. 그들에게 에덴이란 존재는 어떠한 곳일까. 신이 만든 동산에 직접 빚어 만든 남자와 그의 갈빗대를 뽑아 만든 여자란 존재. 그들이 살아가던 이상향, 그 너머 어떠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무엇인가가 있을까.

 

 

이 책에 나오는 많은 등장인물들에게 에덴은 어찌 보면 그들이 찾고자 한 이상향만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은 에덴이 목적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위해 '에덴'을 이용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신의 지식, 명성, 지위를 이용하여 더욱 유명해 지거나, 스스로 돋보이기 위하여, 때로는 뻔뻔한 거짓말을 늘어놓고, 부풀리고 논쟁하고 싸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때로는 싸움, 정쟁의 도구로 쓰기도 하고, 자신이 믿는 바를 억지로 주장하기 위한 근거로 쓰기도 하였다. 도저히 과학자로 보기 힘들만큼 비과학적인 근거를 대고, 때로는 그 근거를 진심으로 믿어버리기도 하는 등 정말 이해하기 어려울 듯 한 행동을 보였던 사람도 있었다.

 

 

책을 읽어가면서 에덴보다는 그 에덴을 추적한 사람자체에 집중이 되기도 하고, 그가 활동했던 시대상, 에덴 논쟁으로 그들이 얻고자 했던 것에 더 주목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도 그 비슷한 상황 속에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바로 논쟁의 '주제' 보다 그런 논쟁을 벌이는 사람이 더 주목을 받게 되는 현상. 변희재, 진중권, 낸시랭의 트위터 설전 말이다. 어느 순간 논점은 사라져 버리고, 논쟁하는 사람들만이 남아 그 사건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데도 그 사건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순식간에 이슈의 중심이 되어 버리는.

 

 

에덴의 느낌이 바로 그러했다. 처음에는 그들에게 '에덴'이 중요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에덴을 찾는 가족 때문에, 외세의 위협에 빠진 자신의 조국을 구하기 위해, 새로이 대두되는 과학에게 신학의 힘을 내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이기 위해, 처음에는 어떤 간절함에서 시작한 에덴 찾기는 어느 순간 그 가치를 잃어버리고, 그들의 가슴에서 떠나가고, 그 색이 변질 되었다.

 

 

책을 읽은 후 나의 느낌은 근대사의 한 귀퉁이를 둘러본 느낌이다. 그리고 그 느낌은 그리 상쾌하지 만은 않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류, 눈부신 업적을 쌓아 올렸다는 인류,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지구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권리를 지닌, 늘 과학적이고 진취적이며 합리적이었다는 그 인류가 걸어온 길은 어쩌면 모순과 실수, 아집과 이기심의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과거에 국한된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큰 의미가 없는 것을 두고, 자신이 조금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자신이 가진 부족함을 인정하기 싫어서, 변화하는 세상에 뒷방 늙은이로 밀리지 않기 위해 늘 싸우고 악을 쓰며 살아가지 않는지.

 

 

이 책은 '에덴' 이라 표현되는 자신만의 '이상향'을 찾아 어리석은 모험을 하는 인간의 바보 같은 역사이며, 현재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 내가 찾아 가는 이길, 내가 살아가는 이유, 내가 꾸는 꿈이 과연 무엇을, 어디를 향해 있는 것인지를 늘 살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느 순간 그 목표는 잃어버리고 그저 어느 곳을 찾아 방황하는 '나' 만이 주인공이 되어, 눈과 귀를 닫고 아집과 이기심에 똘똘 뭉친 사람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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