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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는 나쁜 지혜
사이바라 리에코 지음, 장혜영 옮김 / 니들북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삶을 살아가는 나쁜 지혜
저자인 사이바라이에코는 참 재미있는 사람이다. 만화가라서 그런지 위트가 넘치는 것 같다. 살다보면 누구나 피하기 어려운 일도 만나고, 말 못할 고민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것은 '삶은, 죽음은 무엇인가' 하는 다소 심오하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 있는가 하면, 친구가 자꾸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데 어찌해야 하는가, 고양이가 나를 멀리하는데 어찌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혹은 내 집을 사서 이사 왔는데 옆집에 시끄러운 아줌마가 살고 있다는 조금은 치사한 고민거리도 생기는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지, 싫은 사람에게 잘 해줘야 하는지,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데, 혹은 부탁을 자꾸 하는데 거절하지 못하는 그런 고민들을 달고 산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없다. 그런 사소한 것들은 요즘 그리 큰 고민거리가 아닌듯하니 말이다. 옆집이 시끄럽고, 나는 돈을 못 버는 것이 털어 놓기에 조금은 민망한 고민이니까.
이 책은 그런 사소한 고민들을 시원하게 해결해 주는 책이다. 물론 그리 '진지' 하지는 않고 다소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정말 이렇게 해도 될까? 할 정도로 조금 치졸하기도 한 해결책들이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Q.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 같은데 모르는 척 해야 할지, 캐물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보통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럴수가! 하며 화부터 날 것이지만, 저자는 쿨하게 대답한다.
A. 어쨌든 남편 핸드폰을 몰래 본건 잘못이다. 결혼하면 평생 바람피우면 안되나? 아프면 안되나? 회사가 망하면 안되나? 연애감정은 5년이면 끝난다. 부부는 가족이다. 연애시절 바람을 피우면 드러누울 상황이지만 가족은 좀 다르지 않은가? 4~50년 살아가야 하는데 아빠와 남편 역할을 잘 한다면 한번 쯤 눈감아 줘라. 나도 남편에게 애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무렇지 않았다! 저런! 나 또한 결혼한 사람이지만 너무 직설적이라 충격적이었다. 그 긴 시간 함께 하면서 그런 일이 생기지 말기 바라는 것이 비현실적인지도 모른다. 물론 결혼한 사람들이 2~3명 애인을 만드는 것이 일본 사회의 분위기라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면 적어도 내 가슴에 피멍이 들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질문도 있다.
Q. 결혼한 지 5년 아내가 살이 쪄서 고민이예요.
이런 고민하는 남편들 많이 봤다. 특히 출산 후에 그런 불만들을 많이 이야기 한다. 그럼 작가의 대답은?
A. 출산과 육아는 남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아내가 살찌면 남편 망신이다' 아내가 살빼기를 바란다면 남편의 가사와 육아 참여, 수입 증대 그리고 아내가 일을 하도록 밖으로 내보내라! 나는 이 부분에서 너무 시원했다. 자신을 위해 쓸 시간이 조금도 없는 아내에게 도와줄 생각은 못하고, 연예인처럼 날씬해지기를 바라기만 하는 남편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유아적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저자 또한 그런 부분을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약간 충격적이면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되는 답변도 있었다.
Q. 아직도 부모님과 사이좋게 지내기 힘듭니다. 부모님의 말씀에 상처받은 적도 있는데 그런 것이 쌓이다 보니 가까워지기 힘들었고, 이제 연로하셔서 잘해 드려야지 하면서도 만나면 화가 치밀 때가 있습니다.
A. 부모와 자식은 별개의 인간이며, 별개의 인생이다. 안 맞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람들은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 있지만 안 맞는 사람은 안 맞는 것이다.
내가 이 말에 가슴이 후련했던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는 강박처럼 '효도'를 생각하고 그 방법은 딱 정해져 있다. 거부해서도 뜻을 거슬러서도 연로하실 때 모시지 않아도 불효이며 사회적인 지탄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 집도, 시댁도, 동생들의 가족들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 봐도 안 맞는 사람은 안 맞다. 부모자식간도 마찬가지고 형제자매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무엇을 해야 하면 서로가 고통스럽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무슨 큰 문제가 있는 듯 스스로 또 다른 형벌의 짐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내게 부모님은 '사랑' 하는 존재이지 효도라는 강제적인 의무를 행할 상대는 아닌 것이다.
이 말고도 여러 가지 자잘한 질문과 답변들이 제시되어 있다. 저자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때로는 거짓말도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삶이란 그다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며, 또 추해도 괜찮다고 한다. 어쨌든 살아남는 사람이 강한 것이니까. 때로는 자존심을 내려놓으라고 한다. 급한데 이것저것 따질 것이 없다고 말이다. 가족을 건사하고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속에 아름답고 우아하기만 바라는 것은 어쩌면 사치인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물론 저자의 대답이 그리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고양이에게 사랑받기 위해 밥을 굶기라든지 밖에 내 쫓으라고 하는 것 같은 것들이나, 근본적인 치료라기 보다는 임시방편용의 대답이 많았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대답도 꼭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너무나 정해진 규격 속에서 크고 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의무와 관례라는 틀 안에서 살고 있다. 또한 너무나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간다. 그로 인해 우리가 과연 행복한가를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 내가 정도를 걸으면 누군가는 샛길로 새치기를 하고 출발선이 다른 불공정한 삶을 살아내야 하니까 말이다. 그런 징글징글한 삶속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적당한 거짓말, 적당한 잔머리는 우리 삶을 조금은 가볍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전에 읽었던 법륜스님(스님의 주례사)과 목수정(뼈속까지 자유롭고 치마속까지 정치적인), 마광수(멘토를 읽다) 작가의 책들이 떠올랐다. 모두 내 인생에 아주 훌륭한 지침이 되고 있고 아픈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도운 책이다. 이 책은 솔직히 말하면 앞서 말한 책들에 비해 큰 울림을 주지는 못했지만, 머리가 아픈 현대인에게 아주 좋은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 속에 나온 질문들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민이고, 그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과 깨달음을 주는 책도 필요하지만 '나쁜 지혜'처럼 직설적이고 바로 실현 가능한 답이 필요하기도 하고, 일단 가슴이 시원하기라도 하면 세상이 달라 보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아주 유쾌하고 엉뚱하고 재미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