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진 들녘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노을 진 들녘

 

 

뭐랄까, 조금 당황스러웠다고 해야 할까? 책 소개나 출판사 서평을 읽으며 어느 정도 예상했고 궁금증도 있었던 터였지만 다 읽고 난 후엔 이 책이 1963년도 작품이라고? 역시 박경리다웠다고 해야 하나?

 

송 노인에겐 아들과 딸이 있었고 아들 내외와 딸을 대동아전쟁 때 다 잃어버렸다. 그 후 아들에게서 얻은 손녀 주실과 함께 시골 송화리에서 과수원을 하며 살고 있다. 주인공인 영재는 송노인의 외손주이고, 주실과는 외사촌간이다. 영재의 아버지는 재혼을 해서 영재와 사이가 좋지 않은 계모와 이복동생이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그리 많지 않은데, 송영감네 일을 도와주는 김성방 댁과 그의 아들 성삼, 영천댁, 박서방이 송화리의 인물이다.

 

영재는 서울에서 집을 나와 살고 있고, 건축과를 졸업했다. 소설의 또 다른 배경인 서울에서의 등장인물은 친구인 가난한 룸펜 상호, 의대생 병섭이 있고, 영재를 사랑하는 일혜, 영재가 사랑하는 수명, 일혜의 언니 신혜, 영재 아버지의 친구인 임 변호사, 그의 내연녀이며 상호의 연애 상대이기도한 경희, 영재의 직장상사 박상무 정도가 전부이다.

 

이야기는 이 등장인물들 사이에서만 폐쇄적으로 얽히며 진행된다. 또한 특별한 개연성 없이 우연적으로 전개가 되는 것도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어둡고 우울하다. 해방 이후에 송노인은 자식을 공부시키려 하다 다 잃어버렸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주실을 학교도 보내지 않고 철저하게 '원시적'으로 키운다. 그래서 주실은 마치 야생의 무엇처럼, 에덴동산의 이브처럼 원초적이며 백지처럼 순진하고, 본능을 자극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소설 후반에 4.19 혁명에 대한 내용도 나오지만 극의 전개와는 큰 관계가 없이 그려지는데, 이 사건은 혁명 때 상호가 죽고, 신혜가 요정을 그만두고 다방으로 전업하게 되는 계기 이외에 특별한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큰 줄기는 2가지이다. '절손'으로 인한 재산분배, 각종 '불륜' 과 성애. 송노인에게는 유일한 피붙이가 주실과 영재이다. 성삼이는 송노인의 재산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주실을 겁탈한다. 또 한편 충격적이게도 영재도 주실을 겁탈하게 되는데 저자는 성삼의 경우와는 달리 영재의 경우는 원초적이고 순수한 아름다움에 반한 젊은 욕정으로 인해 우발적인 것으로 설정한다. 그 결과 주실은 임신을 하게 된다. 결국 이 모든 것을 안 성삼은 송노인을 겁박해 강제로 주실과 결혼하고 울분과 자격지심으로 주실을 정신적 신체적으로 학대한다.

 

영재는 이 일이 있은 후 자신을 학대하며 고뇌한다. 사랑하지 않는 일혜와 육체적 관계를 계속하고 수명이란 여인을 운명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앞서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폐쇄적이라 했는데 요정 일을 하던 일예의 언니는 영재의 아버지를 만나고, 영재 아버지의 친구 변호사의 내연녀는 영재 친구 상호와 만나고, 나중에 성삼을 피해 서울로 도망친 주실을 구하는 것도 신혜요, 그 주실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병섭이며, 영재가 사랑하는 수명에게 구애를 하는 것은 영재의 직장상사이다. 그들은 우연으로 얽히고 설마 하는 사이 그렇고 그런 관계인 것이 드러난다.

 

어찌 보면 현대의 막장 드라마 같기도 한 파격이다. 이 소설이 60년대에 발표 되었다니 그 시대 분위기상 얼마나 많은 충격을 주었을지 참으로 대담하다. 읽어가면서 역시 박경리는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 것을 느낀다. 작위적이고 다소 억지스러운 그들의 관계와 그로인한 고뇌는 스스로 자학하는 행위들에서 절정을 이루며, 책장을 넘기는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이게 한다.

 

억지를 부리는 그들의 고뇌를 과연 어떤 식으로 끝을 낼지 궁금했는데 역시 결론은 그럴 수밖에 없다 싶었다. 결국 자살로 마감하는 송노인의 결말도 답답하고 그들의 행위와 그로인한 결과들도 모두 답답하고 작위적이고 어리석다. 박경리는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인간의 본성? 어리석음? 욕망? 원죄?

 

책은 읽는 사람 나름이다. 이 안에서 어떠한 것을 발견하게 될지, 그 시대 젊은이들의 고뇌, 우울한 시대, 폭풍 같았던 젊음의 터널, 이 모든 것들이 이 소설 속에 집약되어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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