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 3 - 산속에 묻은 뼈 칭기즈칸 3
콘 이굴던 지음, 김옥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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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칭기즈칸3-길고긴 대장정의 끝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거대한 두께에 놀랐다. 1,3권은 거의 700페이지에 달하고 비교적 얇은 2권도 600페이지를 넘겼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책이라면 거의 5~6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그러나 책을 읽기 시작하자 가방에 넣어 다니는 불편함 이외에는 내용에 푹 빠져들 수 있었다.

 

내가 이 소설을 읽으려 한 이유는 칭기즈칸이 대체 어떤 일을 한 인물인가와 몽골민족, 유목문화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가 컸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우리 고려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도 궁금했다. 그 계기는 김운회 작가의 '대쥬신을 찾아서' 를 읽으면서였는데, 이 책에서 몽골은 고려를 같은 뿌리에서 나온 형제의 나라로 생각했기에 다른 나라에서 보인 거대한 대 학살극을 벌이지 않은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 소설 칭기즈칸에 나타난 지도에도 고려는 정복대상에서 빠져있다.- 역사서가 아닌 소설에서 그 답을 얻으려는 것이 좀 웃기긴 하지만 영국의 작가가 그리는 동방의 지도자와 문화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또 한 가지는 칭기즈칸이 정복전쟁을 한 이유와 그가 위대한 지도자라고 칭송 받게끔 성장하게 되는 과정, 부족별로 나뉘어 서로를 향해 칼날을 겨루던 그들을 어떻게 모아 하나의 단결된 민족, 국가로 이끌 수 있었는지에 대한 것이다.

 

1권에서는 그가 부족들을 모아 대 칸으로 선포하기 까지, 2권에서는 무시무시한 정복자로써 이름을 날리게 되는 계기가 된 서하와 금나라를 정복하는 과정, 3권은 이슬람 문화권인 호라즘 제국의 정복의 과정, 후계자 지명과 사망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3권에서 거의 대부분은 전투장면이 주를 이룬다. 1,2 권에도 그랬지만 3권은 거의 전투장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인 <콘 이굴던>이 대단하다고 느낀 부분이 바로 이런 것이다. 정말로 눈에 보이는 듯이, 마치 한편의 전쟁영화를 보는 듯이 생생하고 현장감 있는 전투장면의 묘사는 정말 혀를 내두를 만큼 대단하다.

 

어떤 전체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능력도 중요하겠지만 그 많은 전투장면을 어떻게 눈에 보이는 듯이 생생하게 그릴 수 있는지, 그 상상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상상력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간을 역사적인 자료와 실제 배경이 된 도시들의 사전조사 없이는 불가능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에 나오는 많은 등장인물들은 모두 독특한 개성이 살아있으며 게다가 아주 매력적이다. 그의 큰 아들인 주치와 둘째 차가타이의 대립, 칭기즈칸과 주치의 대립은 이 소설에 끊임없이 긴장감을 불어넣는 흥미로운 소재였다.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아들, 자신의 씨라고 생각하지 않는 아들에게 가혹한 아버지, 아들들의 후계자 대결 등에서 보이는 섬세한 심리묘사는 아주 탁월했다. 결국 아버지의 명령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되는 주치의 최후는 특히 가슴이 아팠는데 그 만큼 캐릭터를 잘 살린 탓이라 생각된다.

 

이 소설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 전사들의 아내를 비롯한 여성 캐릭터도 매력적이다. 칭기즈칸의 어머니인 호엘룬, 그의 아내인 보르테, 두 번째 아내인 서하의 공주 차카하이가 주 등장인물인데 호엘룬과 보르테는 전형적인 몽골인 이어서 강인한데에 반해 서하의 공주인 차카하이는 마르고 부드러운 캐릭터이다. 그 외 여성 캐릭터들은 오로지 정복자나 약탈자에 의해 유린당하고 살해되는 약자일 뿐만 아니라 뺏거나 가지는 전리품일 뿐이다. 여성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자신의 남자들이 전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일 뿐이다.

 

 

칭기즈칸의 리더쉽은 참으로 대단하다. 그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데 본능적인 감각이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물론 초원에서 떠돌며 살아가야 하는 유목민의 전통이나 그들의 독특한 생활방식에 의해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사람을 알아보고, 강한 전사들에게 충성을 받고, 더 나아가 그들을 각 장병들에게 존경받는 리더로 길러내는 것 또한 대단한 능력이다. 그는 세력을 조직화 하고 인재를 찾고, 길러내는데 탁월한 리더였고 멘토였다. 또한 잘못한 것에 처결을 내림에 주저함이 없었고 상벌에 관해서도 차별이 없었다. 그는 늘 차가운 가면 같은 얼굴을 유지했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평정심을 유지한다. 이런 모습은 그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존경과 경외심, 두려움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도 멘토가 있었는데 아무것도 없이 적진에서 겨우 탈출한 그를 먼저 알아보고 처음으로 충성을 맹세한 아슬란이다. 그는 그의 충성스러운 부하로 또한 그의 존경을 받는 멘토로써 많은 영향력을 끼친다. 그가 힘이 빠져있거나 무기력해졌을 때도 아슬란은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탁월한 리더쉽과 인간성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무모한 학살에 다름없는 정복전쟁을 벌였는지 지금도 잘 이해할 수가 없다. 그가 몽골을 하나로 통일하고 그들을 이간질하여 괴롭히던 서하를 비롯한 금나라와 전쟁을 벌여 승리한 것은 충분히 납득이 된다. 그러나 3권에 나오는 지난한 전쟁과 전투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당위성이 부족하다. 그 시대가 꼭 몽골이어서가 아닌 정복과 학살이 난무하던 시절이라서 그랬던 것일까. 위대한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세력을 넓히고 무릎을 꿇려야만 인정받던 시절이라 그랬던 것일까.

 

이해가 안 되는 큰 이유는 칭기즈칸의 몽골이 정복한 도시들은 몇 백년이 지나도 다시 일어설 수 없을 만큼 잔인하게 파괴해 버린 때문이다. 단지 그 도시를 소유하려는 이유가 아니었던 것이다. 사절단을 보내 교역과 조공을 요구하고 이를 어길 시는 아예 도시를 파괴하고 그 곳의 주민은 모조리 살해해버린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오로지 죽음뿐이었다. 만약 그 악명을 이용해 다른 도시들을 싸우지 않고 세력권 안에 넣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이유에는 합당하겠지만 말이다.

 

2권에서부터 조금씩, 3권 끝 무렵에 그런 고민들이 담긴 대화가 오간다. 바로 칭기즈칸과 아슬란, 칭기즈칸과 그의 동생 카치운과의 대화들이다. 그들은 왜 그렇게 끊임없이 나아가 자신들조차도 힘들게 하는 전쟁을 계속해야 하는 것인지 칭기즈칸에게 묻는다. 이 소설에서 칭기즈칸은 그저 그것이 자신의 운명이며 늑대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들은 그렇게 많은 나라와 도시들을 정복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유목생활을 그대로 유지한다.

 

 

"내가 바라는 건 '저 사람이 정말로 죽었는지 확인하라. 저 사람은 잔인한 칼을 휘두르며 세상의 절반을 정복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p120

 

 

"우리가 온 세상과 싸워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카치운이 조용한 어투로 말했다.

"너도 나이를 먹고 있다는 걸 아느냐, 카치운? 너는 미래를, 너의 미래를, 너의 부인과 아이들을 생각하고 있다...이곳 사람들이 우리보다 훨씬 편하고 안전하게 오랫동안 산 다고 내 입으로 아슬란 한테 말했다...물론 우리도 잠시는 그런 삶을 선택할 수 있다...하지만 결국엔 늑대들이 우리한테 달려들 것이다. 우리는 유목민이다, 카치운. 우리는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안다. 나머지는 환상에 불과하다." -p547

 

 

우리가 자주 보는 사극에서 유목민이나 그 부족들은 늘 정착해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진 것으로 등장하고, 늘 어느 나라 어느 정권에 용병으로 '사용' 되다가 배신을 당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 전투에서, 저 전쟁에서 이기면 어디 땅을 주어 살게 하겠다는 거짓 약속에 속아 때로는 자신의 부족을 배신하기도 하고 동족을 죽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 소설속의 그들은 어디에 정착하고자 하는 욕망이 없다. 어쩌면 그들은 어떤 목적이나 당위성을 가지고 전쟁을 하고 정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유목생활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어렴풋이 들었다. 힘이 없을 땐 조그만 부족민들이 모여 늘 춥고 배고프고 위험한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지만, 그들이 힘을 가진 후엔 거리낌 없이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에 가도 위험이 없었던 것을 보면 그 이유가 가장 합당하지 않을까 추측해 보는 것이다.

 

자, 그럼 고려는 어떻게 그려질까? 소설 속에 고려에 대한 언급은 몇 페이지에 짧게 언급된다. 고려는 힘이 없어 거란족을 몰아낼 수 없었는데 몽골이 그들을 몰아내 주고 조공을 받았다는 내용, 그리고 그들이 조공으로 바친 호랑이와 칭기즈칸의 큰 아들 조치가 결투하는 장면이 의미 있게 그려진다. 앞서 말한 <대쥬신을 찾아서> 에서처럼 다른 도시와는 다르다.고려에는 학살도 없었고 거란족을 내 보내 주는 친절한 일을 대신 해 주었으니까.

 

3권을 다 읽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그저 방대한 양 때문이다. 재미가 있어서 잘 읽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의 재미를 좋아하는 내가, 정밀하게 묘사된 전투장면을 읽기는 참으로 힘들었기 때문이다. 근 3주간 이 책을 가까이하다보니 이들의 생활에 조금씩 동화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번 본적도 없는 검은 아이락과 소금차를 맛보고 싶기도 하고 사진으로만 보았던 아늑한 게르의 느낌도 한번 느껴보고 싶다. 몇 박 며칠 말을 달리는 그들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척박한 땅에서 강한 삶을 영위했던 그들이 위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빼앗고 약탈하고 승리자가 모든 것을 갖는 그들의 삶을 지금 현실에서 우리의 잣대로 재단하려하면 안되겠지만 이해하기도 참 어렵다. 살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뿌리와 같을지 모르는 그들,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그들. 우리 핏 속에도 유목민의 피가 흐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떠돌아다니면서도 그들의 가슴속에는 고향의 놓은 산과 하늘이 간직되어 있었고, 미래가 아닌 늘 뜨거운 '현재' 를 살았던 그들의 삶은 현재의 삶에 뛰어들지 못하고 오지 않은 미래만 걱정하는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언젠가 한번은 꼭 몽골의 초원에 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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