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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흔적을 찾아서
바바라 해거티 지음, 홍지수 옮김 / 김영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신의 흔적을 찾아서
얼마 전 '죽음을 다시 쓴다' 라는 책을 읽으며,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었다. 그 전에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에 대한 여러 책들과 빙의에 대한 책을 읽으며 죽음 너머의 삶과 이 세상 이상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다. 그 책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우리가 단지 미신이나 종교적 관점, 혹은 신비주의 관점에서 바라보던 것들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분석했다는 것이고 거기에 공통적으로 양자물리학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먼저 밝히겠다. 나는 특정 종교나 신을 믿지는 않지만 어떤 영적인 존재, 혹은 초월적인 존재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죽음 다음의 존재, 윤회도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죽음을 다시 쓴다' 에서는 우리가 흔히 임상체험이라고 말하는 사망체험을 연구하며 과연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알아본다. 의사 즉 과학자인 저자가 그런 연구를 하는 것이 과학자로써 자격을 잃어버리는 것이 될 수도 있지만 그는 과감하게 '죽음'을 과학의 영역으로 가져 온 것이다.
이 책 '신의 흔적을 찾아서'는 저널리스트이자 크리스천 사이언스의 신도였던 저자가 그 종교를 떠나게 된 계기, 그 후 인터뷰를 하다가 어떤 신비한 영적인 경험을 하게 되면서 과연 <우리가 사는 세상을 뚫고 들어와 자연 법칙을 무너뜨리는 또 다른 실재가 존재하는지, 생명이 있는 우주를 관장하는 존재나 지성이 존재하는지, 그 존재는 자신이 보고 들어온 존재의 모습과 부합하는지, 이 세상 이상의 무엇인가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고 싶어 10여년에 걸쳐 조사하고 연구한 여정이자 자료, 그리고 자신이 얻게 된 답이다.
과학과 종교는 몇 세기에 걸쳐 논쟁을 해 오고 있다. 때로는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고, 다윈의 자연선택설이 인간이 신의 모습대로 창조되었다는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리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기도 하면서. 그러나 아직 과학자들은 자신의 믿음과 일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고 그 많은 종교들 안에서도 자신의 신과 교리를 내세우며 전쟁을 해오고 있다.
이런 시기에 이 책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걸까? 종교인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떠한 느낌을 받을까? 자신의 신앙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될까? 아니면 그 의문이 일어나기 전에 이 책을 오류라고 치부해 버릴까? 아마 저자도 그런 고민을 한 듯하다. 자신이 품은 의문의 답을 향해 가면서 저자 또한 자신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을지 자신의 신념을 수정해야만 하는 지점에 서게 되지 않을지 수없이 고민한다.
이 책은 그런 저자가 다양한 시각에서 과연 '신' 이란 존재가 있는지 살펴보는 긴 여정을 담았다. 무엇이 영적체험을 촉발시키는지 이는 성격, 상황, 특별한 상태가 있는지 알아보거나, 명상과 수도를 통해 신을 만나온 종교의 영성 지도자, 영적인 신비한 체험을 한 사람들, 이를 연구하는 의사들, 환각제의 가능성, 영성과 영적인 경험을 추구하도록 하는 유전자는 있는지, 임사체험과 유체이탈 경험자, 뇌의 화학적 물질과 전기적 특징을 연구하는 학자들 등을 만나 과연 그 모든 체험은 유물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오로지 뇌의 기능일 뿐인지 왜 어떤 사람은 가능하고 어느 사람은 아닌지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함께 연구를 해나간다.
이 책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의 열정에 고개가 숙여진다. 다방면의 연구와 사례들을 살펴보고 종합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어떻게 보면 구도자의 모습을 보는 듯도 했다.
자, 그럼 결론은 어떨까? 과연 저자는 신을 만났을까? 저자도 나도 이런 결론을 얻었다. 과학은 신이 있다고 증명하지도 없다고 증명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고 있으며, 하루에 몇 시간씩 수년 동안 지속되는 기도와 명상, 임상체험, 신의 목소리를 듣는 등의 정신적인 사건들, 영적인 것들과의 조우는 우리 뇌를 변화시키고 뇌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 준다.
저자는 자신의 종교를 버리지 않았지만 신앙(종교)과 영적체험을 구분할 필요를 느낀다. 신앙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가 없다. 누구라도 예수가 신의 아들인 것을 증명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신에게로 가는 길은 단 하나 뿐이라는 사상에도 회의적이다. 종교는 사람들이 세상을 헤쳐 가도록 도와줄 뿐, 어떤 종교도 신이나 진리에 대하여 배타적인 독점권을 주장 할 수 없다고 믿게 되었다고 말한다. 불교 승려와 기독교 명상가들은 똑같은 경로를 통해 유사한 영적 상태에 도달하고 믿음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그 기저에 놓인 영성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내 생각과 인생을 변화시킨 것은 그리 극적이지는 않다. 어쩌면 내가 늘 생각해 오던 것을 한번 더 확인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종교가 있는 사람은 어쩌면 더 혼란스러울 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무신론자와 싸우면 되었지만 이젠 신이 있다는 사람과 싸워야 할지도 모르겠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이 유신론자는 무신론자든 생각의 폭을 넓혀 준다는 것에서 나와는 다른 환경, 나라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과학에서도 이런 많은 논의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많은 일들이 있을 수 있다는 가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다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