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구 할매
송은일 지음 / 문이당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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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구 할매

 

 

소설을 읽는 동안 참으로 즐거웠는데 다 읽고 나니 섭섭하다. 책을 읽을 때 읽은 부분이 늘어가면서 앞으로 읽을 부분이 줄어드는 것이 참 싫은 책이 있다. 그런 책을 만나기는 참 힘든데 이 소설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즐거운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 몰래 곶감 같은 걸 숨겨놓고 동생들 몰래 쏙쏙 빼 먹는 느낌이랄까.

 

이 소설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그런 그림들이 떠올랐다. 옆집 살던 오촌 당숙의 안방에 늘 있는 듯 없는 듯 앉아계시던. 특히 설이나 추석 때 구석에 조용히 앉아 밤도 까고 전도 자르고 하던 할매. 머리에 쪽을 지고 늘 그 자리에 배경처럼 계시던 할매. 당숙의 어머니셨으니 우리 아부지한테 큰 어머니 되실 그 할매는 때론 밖으로 나와 소일거리를 찾아 조용히 움직이시다 또 어느 날은 잡아온 토끼 가죽을 벗기는 무시무시한 일도 하셨던 아리송한 존재였다.

 

시골에 살아보지 않으면 그 늙은 나무처럼 바싹 마른 상 할매의 느낌을 알지 못할 것이다. 머리맡에서 옛날이약을 해주고, 아픈 손자 머리도 짚어주고, 겨울이면 뜨끈한 아랫목에서 화로 숯불에 밤이며 고구마를 구워주시던 그 할매들의 냄새, 그 느리게 가던 시간, 그 따뜻한 갈색 빛 추억 같은 것들 말이다.

 

이 책 제목을 보는 순간 바로 그 할매가 떠올랐다. 대청마루 위에 하얀 소복을 입고 서 계시다던가 때로는 며느리가 맘에 안 들어 호통을 치셨던가, 당숙모가 늘 어려워 하셨던가 하던 그 할매, 그 배경, 그 추억 같은 것들.

 

이 소설의 주인공인 극중 화자 '류은현'은 나와 같은 78년생 여자다. 글을 쓰는 작가이고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지만 불미스러운 일로 고향에 내려와 살고 있는 여자. 이 소설 속 매구할매는 이미 100살은 훌쩍 넘게 살아오셔 아무도 정확한 나이를 모르는 분이다. 가슴팍에 빳빳하게 새 돈을 넣은 오방색 복주머니를 매고 계시다 뱃속에 잉태한 여인을 만나면 '아나 복돈이다' 하며 주시는 할매, 또 누가 이 세상과 인연이 다해 저 세상 갈 것 같으면 먼저 알고 차비를 하는 할매, 동네 아낙이 애를 낳을 때가 되면 산파가 되는 할매, 주위에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으면 먼저 알려주는 할매. 그 할매는 도깨비를 모시는 사당을 만들고 기도를 하며 사는, 만신이 아니면서도 만신 같은, 생명을 점지해 주는 삼신이 아니면서도 삼신 같은 할매다.

 

소설은 매구 할매가 할매가 아니라 20대 후반 '녹두' 이던 시절 시집갔다가 서방에 아이까지 다 잃고 친정인 '계성재'로 다시 돌아오는 시점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류은현이 작가로써 매구 할매와 계성재의 여인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 현재와 그 먼 과거 100여년전 조선이 일제에 강제병합 될 때 즈음 계성재의 안주인이던 수항당까지 거슬러 올라가 안순당, 여례당, 미령당, 홍림당을 거쳐오며 한국사의 거친 질곡 속에 400년 이상 내려오는 계성재의 식솔들이 겪었던 일들이 교차하면서 그려진다.

 

현재의 시점에서는 매구 할매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작, 류은현의 소설집필, 류은현의 연애와 결혼, 류은현의 형제들의 이야기 그리고 류은현의 출생의 비밀이 교차되어 서술되고 있다. 100여년 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계성재 며느리들이자 계성재의 주인인 여인들의 이야기는 류은현이 소설 집필을 위해 매구 할매를 비롯해 여기저기 다니며 듣는 이야기들이 마치 액자식 구성처럼 이어진다.

 

역시 송은일 작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예전에 이 작가의 작품 '반야' 라는 장편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도 술술 읽어가는 재미와 여인들과 만신, 사랑 등의 토속적인 이야기들, 그리고 입에 착착 감기는 사투리가 얼마나 맛깔났는지 모른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설명보다 주인공들의 이야기들이 그대로 적혀있는 부분이 많은데 눈으로 따라 읽어도 그 운율이나 억양이 얼마나 감칠맛 나는지 모른다. 또한 1권 분량의 짧은 소설이지만 극중 많은 주인공들의 성격이나 모습을 정말 실감나게 표현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00여년의 세월. 요즘 세상에 몇 대 종손, 종부라는 이름은 어떠할까. 400년 넘는 고택은 그 자손들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나조차도 제사가 없는 집에 시집와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집의 내 또래의 며느리들에게 계성재는 어떤 의미가 있으려나. 현시점에 나타난 계성재의 안주인 류은현의 엄마 홍림당과 교회다니는 큰 며느리, 자식들 데리고 유학가 있는 작은 며느리의 갈등은 너무나 현실적이다.

 

그렇게 한 세월 홍림당으로 살며 집안의 대소사를 살피며 그 큰살림을 씩씩하게 살아온 은현의 엄마 홍림씨가 우울증으로 인한 치매에 걸릴 만큼 그렇게 떠나고 싶고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을 그곳이 이후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죽어버리면, 그 위로 매구 할매까지 저 세상으로 가버리면 과연 어찌되려나. 그래서 인지 저자는 그들을 엄마 아빠로 하지 않고 홍림씨과 동국씨라고 칭했는지도 모르겠다. 평생 자신의 이름으로 살지 못하고 당호로 종손으로써 살아온 그들에 대한 연민일지도 모르겠다.

 

한 평생 계성재의 일원으로 살았지만 그 곳을 누구보다 떠나고 싶어 했을 여인들. 어찌 보면 흔히 생각하듯 남자들만의 세계인 듯한 그곳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인들이 만들어가는 세계였는지도 모르겠다. 시집와 자신의 이름을 당호로 자신과 똑 닮은 며느리들을 만들어 내고, 그 며느리들에게 재산에서부터 정신까지 모든 걸 물려주고, 중요한 시제나 차례를 그녀들의 손으로 준비하며 그녀들의 몸에서 자손들이 번창했다. 모든 문중의 사람들은 그 여인들을 종부로써 우러러보며 경외시한다. 주인공의 집안은 대대로 부자였는데 그 마을의 큰일 들은 모두 그 종부들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나라에 전쟁이나 난리가 났을 때도 잔치가 있을 때도 학교를 짓고, 전기를 들여오는 것까지 그 종부들의 손이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태산같이 큰 여인들. 그 이름 없는 여인들이 꾸려왔을 우리들의 역사, 그리고 우리들의 삶이여. 작은 할매, 큰 할매, 상 할매들이 만들어 온 우리네 삶. 할매 하면 떠오르는 그 푸근함. 이 소설에서 나 자신도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 했던 여인으로써의 삶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 할매들같이 넉넉한 품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자손들에게 매구 할매같이 생명의 불씨를 남겨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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