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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독스 1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2년 10월
평점 :
패러독스13
JAXA 우주항공 연구개발기구에서 미국과 공동으로 진행하던 연구 중에 발견한 엄청난 정보를 오쓰키 총리에게 보고한다. 블랙홀의 영향으로 지구에 엄청난 위기가 닥친다는 것인데 블랙홀의 거대한 에너지파로 인해 지구의 시공간의 뒤틀림 현상이 일어나고 13초간의 시간공백 즉 P-13으로 명명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뭔가 변화가 일어나겠지만, 논리 수학적으로 파악할 수 없고, 어떤 종류의 일이 일어나는지도 알 수 없는, 그러니 대비하거나 방지하는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성질의 것’ 이라는 것이다. 일본 시각으로 3월 13일 오후 1시 13분 13초, 13초부터 26초까지 그 13초가 지구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나라의 중앙 관리들은 온 국민들이 동요할 것을 예상해 이 현상을 공표하지 않고 그저 위험에 대비하는 방식으로 비밀 유지를 한다. 경찰이나 정부 관리처에 그 시간 동안 위험한 일을 하지 않도록 하며 그 시간이 그저 별 문제 없이 지나가기만을 기도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이 소설의 주인공인 경찰 후유키는 역시 경찰인 형 세이야의 범인 검거 작전에 몰래 잠입하여 p-13 현상이 일어나는 바로 그 시간에 범죄자들의 총격으로 형이 죽는 것을 보며 정신을 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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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려보니 폐허가 된 도쿄거리에 홀로 남아 있음을 깨닫게 된 후유키. 자신 이외에 그 어떤 사람도 볼 수 없게 되어버린 곳에서 그는 혹시나 모를 생존자를 찾으러 나서게 되는데, 형 세이야를 비롯한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생존자 12명을 차례대로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어찌하여 온 세상에 자신들 밖에 남지 않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 채 오로지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인다. 세상은 마치 일시에 모든 사람이 사라져 버린 듯 달리던 자동차들은 그대로 주행되다 추돌사고로 망가지고, 기름이 흘러 폭파되고, 화재가 번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목숨을 위협할 만큼의 홍수와 지진 등으로 그들을 점점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들은 살아남기 위한 실존의 문제들에 부딪치게 된다. 생존자가 한 명씩 발견될 때 마다 그들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인간뿐만 아닌 모든 살아있는 동물들마저 사라진 마당에 먹을 것은 어찌 찾고 관리해야 하는지, 그들 무리들은 과연 어떤 식으로 유지되어야 할지, 즉 극한의 상황 속에 어떤 리더와 또 어떤 리더쉽을 필요로 하는지, 거주, 이동, 방범, 규칙의 제정, 선과 악의 개념, 죽음의 개념, 권리, 자유, 구속 등의 모든 삶의 질문들 속에 논쟁하고 부딪치며 두려움과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다.
마치 온 세상이 이물질을 제거하듯 그들을 없애 버리려는 듯한 뒤틀린 세계에서 그들은 더 이상 그 전 세상의 법칙이 그들의 현실에서 통용되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고민은 특히 병이나 사고로 사람들이 죽어갈 때 극한으로 치닫는다. 이미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이는 구성원을 버리고 가는 것은 과연 선인가 악인가, 안락사의 의미는 어떤가, 어떤 때 행해야 하는가, 식량과 의료품은 어떻게 관리되어야 하는가, 구성원을 돕기 위한 행동이 그 조직의 존재에 해를 입히게 되는 때는 어찌해야 하는가 등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모든 부분에서 그들은 그 현실에 맞는 답을 찾아야 했다.
자연재해는 점점 심해지고, 그들은 끝없는 홍수로 인해 어디로 가야 할 지 알 수 없게 된다. 땅은 뒤틀리고, 건물들은 무너지고, 시시각각 물은 차오르고 해를 볼 수 없는 날이 지속될수록 그들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더욱 강한 물음을 가진다. 이런 일이 일어난 원인을 알면 원상태, 그들이 살던 ‘세상’으로 돌아 갈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구성원은 줄어들고, 식량이 줄어들고,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자살을 생각하는 구성원들이 늘어간다. 이런 모습에서 삶의 목적은 과연 무엇인지, 희망과 행복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존재할 수 없다면, 그 극한의 고통과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갖게 될 것인가? 그저 생존하는 것이 죽는 것에 비해 어떤 ‘의미 있는 일’ 이 될 것인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에 다다른다.
그들은 이런 현상이 일어난 원인에 다가가기 위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재해에 맞서며 그 답에 서서히 접근한다. 결국 그 비밀을 알게 된 구성원들은 선택해야만 한다. 지금 현실에 남아 생존의 투쟁을 할 것인지, 원 세상에 돌아가기 위해 무모한 시도를 해야 할 것인지.
한번 책을 펼치면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몰입하게 해주는 충격적인 스토리와 철학적인 질문들은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만큼 시각적이고 예리했다. 역시 이야기꾼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다웠다고 할까. 그의 작품은 늘 그랬던 것 같다. 그저 재미나고 자극적인 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철학적인 주제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랄까.
이 책에서 저자는 과학적인 상상력과 인간 본연의 본능, 한 사회를 구성하게 된 초기 인류들의 고민들을 현실에 끄집어 내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 놓았다. 생존자들의 행동과 생각들, 토론하는 장면은 참으로 현실적이고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재미난 스토리와 시각적 전개, 섬세한 묘사, 충격적 반전 등이 적절하게 조화된 걸작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