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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죽이기
아멜리 노통브 지음, 최정수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아버지 죽이기
자극적인 제목 때문에 궁금했던 소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접했던 오디디푸스 컴플렉스에 대한 소설이라 더욱 기대를 하고 읽은 소설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와 닿았던 말은 '15살 때는 다 미쳐돌아간다' 는 것이었다. 나의 질풍노도와도 같았던 청소년기와 나의 온 마음과 정신을 지배했던 방항심도 생생히 떠올랐다. 그러나 10대 때의 방항심은 20대가 되어 조금씩 독립적인 생활을 하게 되면서 수그러 들기 시작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나이들어가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반항심보다는 안쓰러움이 커져서인가 날카로운 관계 또한 많이 부드러워 지게 되었다. 내가 30대가 된 지금은 부모자식과의 관계가 아니라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 혹은 나이든 부모님이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 할수 있는 관계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딸인 나와는 다르게 아들인 동생과 아버지의 관계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나에겐 한없이 부드러워 지는 아버지는 아들에게만은 아직까지 꼿꼿한 모습 그대로 이다. 아직은 내가 너에 못지 않다는 꼬장꼬장한 느낌이랄까. 아들인 동생 또한 구부러지기 보단 아직도 날을 세우며 '당신이 생각하는 것 만큼 바보가 아니다' 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속의 주인공인 조와 의붓아버지인 노먼과의 관계는 나와 부모님의 관계보다는 동생과 아버지와서 관계와 비슷하다. 그러나 소설속의 아버지인 노먼은 동생을 대하는 아버지보다는 나를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닮은 것 같다. 이미 20대인 아들이지만 10대의 반항심은 그대로 남아있는 아들과 그 아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아버지말이다.
조는 15살때 친엄마와 그의 새 남자친구에게 버림을 받고 집을 나와 마술사인 노먼과 그의 여자인 크리스티나를 만나 가족의 따뜻함을 느낀다. 카드 마술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던 조는 유명한 마술사인 노먼의 제자가 되어 마술을 배운다. 그러나 조는 어머니 같은 크리스티나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고 18살이 될때까지 그 사랑을 간직하며 동정을 지킨다. 실제 인생과는 다르게 조는 실제로 크리스티나와 섹스까지 하게된다. 물론 그녀는 환각제를 복용한 상태였고 노먼 또한 그런 둘을 이해했지만 말이다.
그 후 성인이 된 조는 집을 떠나 라스베거스에서 딜러로 일을 하게 되지만 불미스러운 일로 법정에 서게되고 그런 그를 보며 노먼을 고통스러워 한다. 노먼과 크리스티나는 진정한 부모처럼, 집을 떠난 조를 그리워하고 애틋해 하지만 둥지를 떠난 자식인 조는 더이상 그 둘에게 과거와 같은 맹목적인 사랑을 갈구하지는 않는다. 20대의 조는 오히려 더 반항적이고 아버지를 부정하는 15살 사춘기 소년으로 돌아간 듯하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소설은 이렇게 끝이난다. 사춘기소년이 된 조가 철이들거나 아버지를 인정하거나 그 둘의 관계가 회복되거나 하는 친절함이란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것이 바로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부모를 부정하고 그 산을 넘어야만 성인이 될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지 않던가. 20대가 다 가도록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지도 못하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반항심에 부모와 끝까지 대립을 세우는 자식도 있다. 결국은 자식은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고 그 산을 넘어야만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가 있지만 그 과정은 자식에게도 부모에게도 참 힘든 일이 아닐수가 없다.
어찌보면 참으로 충격적이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한 소설이지만 이 소설의 내용보다는 그 후가 더 궁금한 소설이다. 우리말로 번역이 되면서 원어가 갖는 운율이나 분위기등이 많이 달라졌을 테고 조와 크리스티나의 사건이 일어난 '버닝 맨 축제' 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우리정서와 많이 달라 이질적인 느낌이 많았지만 다른 문화와 느낌을 경험해 볼 수있는 소설임에는 확실한 듯하다.
또 하나 확실한 것은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누구나 미쳐돌아가는 15살을 겪고 어른이 되지만 늘 자식임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을 때쯤 그들은 우리곁을 떠나고, 우리는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고아가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