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지옥에 가다
이서규 지음 / 다차원북스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님 지옥에 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시체가 실려나가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그곳에서 주인공은 반공포로로써 3년 동안의 끔찍한 시간을 겪다가 종교행사로 수용소를 방문한 혜장스님을 통해 가족에게 서신을 전한다. 그러다 국군헌병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주인공은 위험한 도시를 피해 혜장스님이 계시는 부산 범어사로 숨어들어 휘문이란 법명을 얻고 혜장 스님의 제자가 된다. 그러던 어느날 혜장스님의 스승이신 홍안스님으로부터 강원도 양구 황태사에서 큰 법회가 열린다는 초대장을 받고 강원도로 떠나게 된다.

 

 

 

황태사에 도착했지만 홍안스님은 전날 이미 입적하신 뒤였고, 그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홍안스님의 미심쩍은 죽음, 혜장스님의 사형인 현정스님의 타박, 잇다른 살인으로 인한 스님들의 죽음, 이제는 주인공처럼 스님이 된 포로수용소에서 그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혔던 언청이라는 사내, 그리고 법회 때문에 참석한 많은 스님들의 대립이었다.

 

 

 

이 소설에는 황태사와 법회에 참석한 많은 스님들을 소재로 일제강점기와 그 직후의 전쟁을 관통하는 한국사의 불운한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자가 포로수용소에서 인민군의 편에서 반공포로들을 괴롭히고, 그런 자가 오히려 반공포로의 자격으로 석방된 후 자유를 얻게 되는 일, 한편 인민군 출신들이 세운 절의 스님들은 현재는 부처님을 받아들여 스님이 되었으나 한때 인민군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늘 불안에 떨며 살아가야 되는 사실, 전쟁이 끝나자 일제의 영향으로 처자식을 거느리게 된 대처승들과 불교를 정리해야 한다는 정부의 방침으로 대책을 논의 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드러나는 대처승들의 모습, 불가의 지옥도를 연상시키는 방법으로 자행된 잔혹한 살인의 모습들.

 

 

 

단지 살인에서만이 아니라, 그런 살인이 일어나게 된 인간들의 나약함과 욕망 모두가 바로 지옥이었던 것이다. 나라를 침략하고 역사와 문화와 인간을 짓 밟고, 이념으로 양쪽이 갈라져 피 터지게 싸우고, 전쟁은 끝났으나 나라는 반 토막이 나고, 종교에서 조차 양쪽으로 나뉘어 싸우고, 두려움과 욕망이 결국 살인을 불렀던 것이다.

 

 

 

사실 이 소설이 다른 추리소설들이 주는 긴장감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구성이 그렇게 잘 짜여졌다는 느낌을 주지도 않았고, 문장력이 좋아서 술술 읽히는 느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주인공의 생각이나 입장이 명확히 정리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시대의 불교상을 좀 명확하게 보여주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 일어났을 일들을 현실감 있게 그렸다는 것, 불가의 지옥도를 자세히 보여주었다는 점, 그리고 불가의 입장에서 본 인간의 어두운 모습 즉 욕망과 탐욕, 애증, 미움 그럼에도 인간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들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이 소설의 읽을만한 점이 아닐까 한다.

 

 

 

예전에 일제의 영향으로 대처승들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 실제를 본 적이 없었고, 그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는 점에 많이 놀랐다. 가족을 거느린 수도승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으나 무척이나 거부감이 드는 것이 어찌 보면 놀랍기도 했는데, 기독교에서는 결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데 가톨릭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것에 새로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인간자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아무리 악행을 저지르고 나쁜 짓을 일삼는 자라 하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부처라는 불가의 말씀,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말과 행동이 죄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 뇌리에 남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생은 북도 남도, 좌도 우도 가를 수 없는 부처 자체이다. 부처를 구하라는 소설 속 홍안 스님의 말씀이 가슴이 남는다.   

 

 

 

흔히 상상하는 추리소설의 긴장감과 짜릿함을 주지는 않지만 우리가 미쳐 보지 못한 현대사의 굴곡과 불가의 깊은 진리와 만나기에 참 좋은 소설인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