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예술의 혼 - 술의 역사를 논하다
장혜영 지음 / 어문학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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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예술의 혼


솔직히 이 책을 읽어가면서 몇 번이나 책장을 덮으려는 충동을 억제해야 했다. 그리고저자가 이 책을 쓴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정말로 궁금했다.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소재 뒤에 진정으로말하고픈 진의를 숨겨두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이제 책을 읽은 후기를 적어가면서 나의 지독한 궁금증이왜 생겼는지 풀어볼까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가장 큰 줄기는 술과 예술의 관계이다. 한 문장으로말하면 ‘술이 없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 이다. 놀랍게도 ‘술이 예술 발전에 기여를 한다’ 는 개념이 아니라 ‘술과 연관 되지 않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 라고 단정을 짓고 있다. 여기에서 예술의 역사와 술의 관계가 나타나는데, 저자의 논리에 따르면 예술의 역사는 바로 술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술이 신을 기쁘게 하고, 인간이 신과 연결될 수 있는 가교역할을 하다가 무속(종교)과 정치가 분리되면서 술이 ‘신을 위한 술’ 에서 ‘인간을위한 술’로 전이하는 과정이 바로 예술의 역사요 예술의 발전이라고 말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1장에서는 신을 위해 바쳐지던 술과, 인간이 신을 만나기 위해 술을 이용하고, 그 과정에서 탄생한 예술, 무속이 점유하던 신을 위한 예술을 설명하고, 2장 에서는 드디어술과 예술이 신과 종교를 탈피하여 인간을 위한 술과 예술이 되는 과정을 설명 한다. 3장에서는 술과교통발달의 관계, 그를 바탕으로 한 술과 행로문학의 발달을 설명한다.마지막 4장에서는 술을 매개로 한 상업의 발달과 예술 발달의 관계를 설명한다.

 

 

저자는 술과 무속, 예술의 관계와 발달을 설명하기 위해 중국과 한국을비교하는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나의 궁금증은 바로 여기에서 생기기 시작했다. 예술은 무속에 그 기원을두고 있는데 예술이 무속에 예속 당한 한국과 무속에서 탈피한 중국을 비교하고 있다.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고대 중국은 춘추전국시대, 위진남북조시대, 송나라 이 3단계에 걸쳐 무속에서 인간으로 전이가 완성되고 무속이점유하던 술과 예술이 인간의 것으로 넘어오면서 문화예술 또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한국의 경우는 미성숙한 농경문화로 인해 국가의 발전이 늦었고, 이로 인해 양조업이 위축, 억압된 음주문화와 무속에 의한 술의 장기예속화로 결국 한국예술은 19세기초반까지도 종교적인 침체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고 하고 있다.

 

 

즉 무속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이루고 농업의 발달로 남는 곡식이 많아지면 술을 많이 빚을수 있고, 술을 마시고 흥에 겨워야 예술이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인 것이다. 3,4장에 나타나는 주장도 이와 일맥 상통한다. 나라가 부강하여야상업이나 무역이 활발해지고, 도로와 교통수단이 발달하면 인구의 이동이 많아 진다. 그 길을 따라 객주나 여각이 발달하고 그곳에서 술을 팔고, 술과함께 그 시대의 예술가들인 기생이 많아지고, 생계가 해결이 되는 예술가들은 연극이나 극장 공연을 발달시키고 주점이 발달하고 상업이 발달할수록 예술도 발달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중국인 바로이 공식에 따라 훌륭한 예술을 발전시킨다.

 

 

이와 반대로 한국의 경우는 어떻게 표현하였나 살펴보면 정말 저자의 의도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 1장에서 중국이 농경문화를 정착한 선진적인 역사를 가진 반면, 단군신화로보여지는 고조선에는 술에 관한 어떠한 이야기도 없으므로(술은 곳 제의를 뜻하고, 그것은 제정일치의 강력한 왕권을 상징) 상고시기에는 강력한 왕권국가가수립된 적이 없으며, 환웅이 열었던 신시는 수목숭배, 성기숭배를하는 원시신앙을 가진 미개한 부족이었으며, 환웅이 한 일이라곤 쑥과 마늘로 불임을 치료하고 성관계를한 것밖에 없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의 인본주의 이념은, 그 시대는 인본이 아닌 신본 시대였기 때문에후대의 학자들이 만들어 낸 것 일수도 있다는 가정을 한다.

 

 

또한 고구려는 700년 동안 지속된 것이 오히려 예술의 발전을 막았다고말한다. 고대 중국은 잦은 전란으로 인해 예술이 발달하였지만 고구려는 사직이 망하지 않고 국민들을 지켜주어국민들은 오로지 먹는 데만 집착하고 육체적 삶을 소비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전쟁이 없었고, 농업발전이 더뎌 오로지 약탈만으로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전쟁은교통의 발달과 인구의 이동, 망한 왕조나 귀족들이 잃어버린 권력에 대한 향수를 술을 빌어 훌륭한 예술이탄생하게 해주기 때문인데 고구려에는 그것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다.

 

 

저자는 고조선에는 겨우 공무도하가 한편만이 유일한 문학이요, 신라시대의향가는 시문학이 아니라 무가나 불가, 표교가 인데 그것은 그 작가가 스님과 화랑(무당) 이기 때문이라 한다. (그는화랑을 무당으로 본다). 그나마 유일하게 인정하는 최치원도 당나라에17년이나 살았으니 당나라 문인이며, 그 마저도 실패한 문인으로 그린다. 그것은 시구는 아름다우나 당나라 시인에 비해 상상력이나 자유분방한 정신세계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오로지 그의 시에 ‘술’이 없고 오히려 술과 여자에 대한거부감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3, 4 장에서는 길 문화의 후진성이 5000년 동안 한국 문학 예술발전을 저해한 이유의 하나로 제시되고 있으며, 술과상업의 만남은 경제부흥, 도시화 촉진. 예술의 진흥을 이룩하는데한국은 삼국시대, 고려, 조선조 말까지도 술과 상업과의 연대에실패하고 무속과 종교와의 타협을 고집함으로써 예술의 부흥을 이끌어 낼 수 없었다는 요지의 주장을 펼친다.

 

 

결국 책의 후반부에는 일제 강점기에 대한 내용이 잠깐 언급된다. 그의주장은 바로 이 부분에서 정점을 찍는다. 술과 상업의 만남은 경제 부흥과 도시화를 촉진하고 예술의 진흥을이끄는데, 일제 강점기 경성에서 대륙 병참기지와 중화학 공업 건설 등으로 수많은 인구가 흡수 되고 도시에정착한 이들이 두터운 상업성 소비 계층을 형성하여 도시화를 촉진하였다고 주장한다. 또한 한국 공연예술이유흥가에서 상업화 된 것도 일제강점기이며, 한국에서 주점이 고급요정,문화오락, 예술을 즐기는 음주공간으로 바뀐 것도, 주점, 음식점, 다방, 커피숍, 극장, 백화점등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시장과 유흥공간이 되고 그로인해 문학, 공연, 공연예술 등 대한민국 역사에 유례없는눈부신 발전을 이룩하게 된 것도 유일하게 일제 강점기였다고 말한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그 유구한 역사 중에 어느 한 부분에도 훌륭한 예술을 가진 적이 없고, 긴 왕조의 존속 또한 예술발전을 가로막는 벽이었으며, 그나마 유일하게예술이 발전한 시기가 딱 한 순간, 일제 강점기였다는 것이다.

 

 

나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 할 수 없다. 만일 저자가 한국의 역사를‘깔’ 목적이 없었다면 이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술’의 역사를 밝히고 예술과의 연관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술을 이용해 한국의 역사를 ‘까’기 위해 중국을 술에 취해 흥청망청한 우스꽝스러운 역사로 만들고, 술이 없는 예술은 예술이아닌 것으로 만들고, 깨끗하고 정갈하고 깊은 예술의 세계를 짓밟으며,온갖 전란에 휩싸인 환난의 역사까지도 억지로 높이면서 까지 억지 논리를 전개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 결론은 일제강점기가 우리의 상업과 예술을 높여준 아이러니 한 상황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건 우리 민족을 우회적으로 욕보이려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 책에서 한국에 관한 부분을 모조리 빼 버리면 오히려 훌륭한 ‘중국의술과 예술의 역사’ 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자신이 가진전제와 주장을 위해 많은 증거들이 있는 역사적 사실을 거침없이 후대가 조작했다고 말하는 저자, 누가봐도 어설플 수 밖에 없는 단군신화, 공무도하가, 처용가의해석, 처음에는 화가 나가다 마지막엔 오히려 웃음이 났다. 저자로하여금 이런 책을 연달아 쓰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중국을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한국을폄훼하기 위한 것인가. 중국을 높이려면 굳이 한국을 갖다 붙일 일도 없었겠지. 이 책 속에 아주 가끔 나타나는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는 저자가 의도하는 바를 미루어 짐작하게 해준다. 또한 여성을 남권 중심의 동양사회에서 남자를 흥분시키고황홀경에 빠뜨리는 정신작용을 한 술과 같은 존재로 본 저자의 여성폄하의 시각은 말할 가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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