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황소
션 케니프 지음, 최재천.이선아 옮김 / 살림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꿈꾸는 황소

 

 


이 책을 읽으면서 난 끊임없이 생각 했다. 이 책에서 정말로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일까. 꿈을 꾼다는 것, 그것의 의미? 비록 결과를 알 수없는 꿈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가 소중하다는 것? 아니면, 생명의 고귀함? 우리에게는 '고기' 에 불과한 그들도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라는 것? 혹은 마켓에서 손 쉽게 사먹는 고기에 관한 불편한 진실? 대량 사육과 도축에 관한 비 인도적인 진실 같은 것? 안타깝게도 이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난 아직도 이 책이 의도한 진정한 의미를 모르겠다. 그래서 찬찬히 그 의미를 찾아볼까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황소 에트르' 는 함께 사는 소들의 무리중에서 유일하게 사고를 하고 유일하게 '자각'을 한 존재이다. 그는 물 속에 비친 못난 자신의 모습을 볼 줄도 알고, 유일하게 그들의 '마지막' 을 아는 존재이다. 같은 무리들 속에서 그들의 미래를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만일 인간의 무리들 중에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 이라는 그 마지막을 안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겠는가.

 

 

황소 에트르는 본능에 따라 자신의 암소를 만나 자신의 아들인 숫 송아지를 얻는다. 그러다 우연히 컨베이어 벨트를 휩쓸려 들어 갔다가 거대한 살육을 맞닥들이게 된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암소를 비롯한 동족이 사살되어 전기 톱으로 온 몸이 갈갈이 찢어지고, 간혹 살아있는 그들이 뒷다리가 매달린 채 발버둥 치는 모습을, 그들이 다시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런 피비린내 나는 지옥에서 정말로 요행히 살아나온 그는 밖으로 나와 다른 소들에게 이 진실을 전하려 했으나 그의 말을 알아듣는 소는 단 하나도 없다. 그러다 그는 결국 농장 주인의 어린 아들을 죽이고 자신의 아들을 찾아 탈출을 감행한다.

 

 

그의 목적지는 단 한 곳이었다. 우연히 인간에게 들었던 소들의 천국 '인도' 그 곳은 소들이 신성시되는 곳이었다. 그는 다친 그의 아들을 데리고 인도를 향해 떠나지만 하이에나의 공격을 받는등 고생을 하다 결국 그의 아들이 죽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당도한 곳은  이상향인 인도가 아니라 그가 도망쳐 나온 바로 그 '농장' 이었다. 그는 결국 농장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유일하게 각성한 존재. 과거부터 많은 선지자들이 나타나 죽음 후에 닥칠 위험을 경고했다. 지금도 많은 정신적인 지도자들은 인류에게 경고하고 있다. 자연을 파괴하고, 자원을 고갈시키고, 유전자를 조작하고, 생명을 우습게 여기는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각성할 것을 외치고 있으나 그 말에 귀기울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황소 에트르의 외침을 들을 수 있는 소들은 안타깝게도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단지 따뜻한 울타리와 배불리 먹을 풀들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컨베이어 벨트 뒤에 펼쳐질 잔혹한 현실은 꿈에도 알지 못한 채 농장 주인이 주는 사료를 먹으며 살만 찌우면 그만인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 황소 에트르의 모습에 내 모습을 비쳐본 것 같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지금 난 그 농장의 수많은 소들 중 하나일 뿐임을 깨닷는다. 나의 삶, 나의 꿈,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나는 돈이나 명예, 많은 사람들의 인정등의 '우상' 들이 지배하는 곳에 그것들이 제공하는 삶의 목적, 그것들을 충실히 따라갈 때 받을 수있는 달콤한 보상만을 바라보며 의미없이 살아간다. 그 길이 바로 죽음으로 가는 '컨베이어벨트' 인지도 모른 채. 나에게 진실을 말했던 그는 어디로 갔을까.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어디에서 죽음을 맞았을까. 결국 변함없이 굴러가는 이 세상을 아타깝게 바라보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의 노력 끝에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소와 돼지 닭의 공장식 사육에 관한 불편한 진실과 육식이 주는 폐해에 관해 많이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 또한 몇 달 전부터 완전채식을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더 많은 사람들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나는 어렸을 때 농사를 위해 소를 키우는 부모님 밑에서 개와 고양이, 닭과 염소들과 어울려 살았고, 도시에 사는 지금은 길고양이 4마리와 리트리버 1마리와 살고 있다. 그들과 어울려 살아보면 멀리서 동물들을 바라보는 것과는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들 또한 좋고, 싫고의 감정을 느끼며 우리의 말을 다 알아 듣는 것은 물론, 우리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알고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 고양이들은 거울에 비친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안다. 어린 시절 소들이 팔려갈 때 죽음이 자신을 기다리는것을 알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어쩔 수없이 그들을 보내는 우리도 함께 눈물을 흘렸음은 물론이다.

 

 

황소 에트르와 그들 무리의 모습에서 나는 우리가 처한 다양한 모습들을 만날 수 있었다. 조금 지루하고 심심한 내용과 음메가 아닌 '엉프' 로 표현되는 다소 어색한 소 울음소리를 상상하며 책장을 넘겼다. 마지막 옮긴이의 말에서 조금 위험한 생각들이 살짝 엿보이긴 하지만 좋은 취지의 글이라 여기고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다른 동물들의 말을 빗대어 소들이 인간에게 기대어 번영을 했고, 명석하지 못해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한다면, 황소 에트르가 그런 시각으로 그들 동족을 보았다면 이 책은 '사람'이 아니 '소' 들을 위한 책이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소 에트르는 결국 농장으로 돌아왔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큰 꿈을 이룰 수있는 방법이 그 자신에게는 없었다. 결국 우리의 몫이다. 그들이 어리석은 존재이건, 다시 야생성을 찾을 수 있건 없건, 그들이 우리의 말을 알아 듣던 말던 우리는 그들을 놓아 주어야 한다. 유전자 복제에 의해 대량 사육되고, 부산물을 처리하기 위해 그들 동족을 다시 사료로 만들어 그들에게 먹이는 일도 그만두어야 한다. 인간의 이기심과 모든 생명체 위에 군림하려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의식도 바꾸어야 한다. 오직 우리만이 할 수있다.

 

 

이제 황소 에트르를 놓아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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