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엄마 때문이다 - 개천마리 기자 박상규의 쿨하고도 핫한 세상 이야기
박상규 지음 / 들녘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이게 다 엄마 때문이다 

 

 

 

 

문득 어떤 노래를 듣거나 어떤 냄새를 맡으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이어린 시절 추억이든, 아픈 사랑의 상처이든, 부끄러운 과거이든, 내겐 고 김광석의 노래가 그렇고 봄날 찔레꽃 진한 향기가 그렇다.

 

 

고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 대학교 때 자취하던 2층 가건물이 떠오르고, 그 방에서 함께 라면을 끓여 소주를 먹거나, 김광석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이별의 슬픔에 못 이겨 괴로워하던 그 시절이 떠오르고, 봄 날 찔레꽃 향기가 코 끝을 찌르면 내가 살던 복사꽃 흐드러지게 피던 고향이 떠오른다. 물 오른 찔레를 꺾어 먹으며 10리를 걸어 학교에 다니던 고단한 시절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제 그 반사적 행동의 조건에 이 책 이게 다 엄마 때문이다가 추가될 것 같다는 묘한 기분이 들고 말았다.’ 고 이 책을 읽은 소감을 한 줄로 표현할까 한다.

 

 

책의 전반에는 작가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나온다. 그는 유난히 술과 담배와 여자와 도박을 좋아하던 아버지와 헤어진 어머니 사이를 오가던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어쩌면 이런 상황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불완전한 가족의 모습에 어린 아이를 동정하거나 그런 선택을 한 부모를 힐책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처럼 저자 또한 그런 시선에 반기를 든다. 그래야 완전한 가족의 모습 밖에 있는 사람들도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봄이면 지천으로 꽃이 피고, 집 앞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10리를 걸어 학교에 다니고, 산에 올라가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땔 감을 해 나르는 그런 생활 나의 어린 생활도 그러했다. 10리를 걸으면 꼬박 1시간이 걸린다. 난 그 길을 걸으며 봄에는 진달래와 찔레를 따 먹었고, 가을이면 떨어진 알밤을 주워 먹으며, 가을엔 과수원에 몰래 들어가 사과를 따 먹거나 밭에 무를 캐 먹기도 했던 추억이 있다. 5학년 때 중소 도시로 이사를 나오며 정지해 버린 기억이지만 저자의 말대로 그때의 경험은 성인이 된 후에도 정서적, 심리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지금 노래를 부르고 글을 쓰게하는 촉촉촉한 감성이 있다면 다 그 시절에 연유한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저자의 어머니는 평생을 비정규직 노동자로 사셨다. 목욕탕에서, 양파 까는 공장에서, 식당에서 이제 자식들이 주는 용돈을 받아쓰기만 해도 될 할머니가 되어서 까지도 청소를 하는 노동자의 삶을 사시는 것이다. 전쟁 고아에서 결혼, 4명 아이들의 엄마로, 다시 혼자가 되어서 한 평생을 사셨을 어머니, 여자의 몸으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드셨을지 상상이 된다. 그녀는 늘 낮은 곳에서 소외 당하고 외롭고 힘든 인생들과 벗 하면서 사셨고, 저자는 그런 어머니의 삶에서 지금의 자신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수능성적 14등급으로 대입에 낙방, 제수로 대학 입학, 데모 판에서 대학시절을 다 보내고 겨우 졸업, 그러나 오마이뉴스 기자로 단박에 합격, 그러나 지금은 40을 바라보는 노총각. 그의 삶을 단어 몇 개로 표현하면 이렇다. 단편적인 스토리로만 보기에도 그의 삶은 참으로 다채로운 경험들의 연속이다. 그가 살아온 삶, 그리고 추구하는 삶은 내가 원하는 삶과 참으로 많이 닮아 있단 생각을 했다. 또한 나와 너무도 비슷한 경험을 했길래 그의 나이가 궁금했는데 나보다 2살이 많다. 그를 내 인생 속에 가져다 놓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듯한 모습에 난 참 동질감을 많이 느꼈다.

 

 

책의 후반에 묘사된 그가 기자로써 추구하는 삶은 음악을 하는 나의 삶,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려 하는 나의 삶과도 너무나 닮아있다. 그가 몇 년간 땀과 냄새에 절은 한켤레 등산화를 신고 취재를 하며 느꼈던 삶의 교훈들 또한 마찬가지다. 비 주류로서 살아가는 삶의 고통, 인간이면 누구나가 누려야 할 자유나, 노동의 신성함, 혹은 휴식할 권리, 꿈을 실현할 자유, 보호받을 권리 등이 가진 자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되고만 현실을 묵묵히 개척하며 살아가려 하는 그의 마음가짐은 그러한 나의 결심을 더욱 공고히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보신탕을 팔아 자신을 키운 아버지, 지금은 그런 수십 마리 개들과 가족이 된 저자. 나 또한 저자처럼 마당이 있는 집에서 이제 내 새끼가 된 고양이 4놈과 1마리 골든리트리버와 함께 살 꿈을 꾼다. 마당에는 저자와 그의 어머니처럼 살구, 앵두, 복숭아, 자두, 목련 등을 심어 그 그늘에서 쉬고 싶기도 하고, 마당 한 켠 텃밭에는 넘치지 않을 만큼의 채소들을 키우며 그렇게 살고 싶다. 저자가 뻔질나게 드나 들었던 곰배령에 찾아가 꽃님이네 집에서 꼭 미숫가루를 사 먹어 보리라. 지리산에도 꼭 가보리라. 거기서 나 자신과 만나는 그런 걷기를 꼭 해보리라.

 

 

이 책을 읽으며 난 마치 나의 과거의 모습과 미래의 모습을 읽고 있는 듯 했다. 나와 비슷한 나이, 비슷한 추억, 추구하는 것의 동질성, 읽었던 책, 좋아하는 노래, 다른 곳에서 함께 보았을 TV드라마. 참으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경험이었다. 나와 다른 것이 있다면 아마도 결혼 유무의 차이와 개와 고양이의 차이 정도? 내가 그리는 그림에는 나의 남편이 있고, 개 대신 고양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다행히 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신다는 것.

 

 

이 책은 내게 눈을 들어 세상을 보면 늘 눈물 겹지만 않다는 것, 이 세상 어딘가엔 나와 비슷한 생각과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런 우리가 이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 따스함과 용기를 주는 멀리 서로 얼굴도 모르는 친구가 생긴 뿌듯한 느낌, 아주 행복하고 따스한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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