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스푼 - 차 한 잔 한숨 한 스푼, 술 한 잔 눈물 한 스푼
고충녕 지음 / 어문학사 / 2012년 6월
평점 :
한스푼 (자연 수상록)
-수상록: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적은 글-
저자의 이력이 참으로 독특하다.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산업화의 시대를 지나온 그는 40대 후반에 등단, 일상으로부터의 파격을 감행, 강원도 산골짝에서 은둔하며 출가승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다. 이 책은 자연 속에서 철저하게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일상과 깨달음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자 고충녕은 겨울이면 많은 눈을 못 이겨 나뭇가지가 부러지기도 하고, 한동안은 바깥 출입조차 용이하지 않으며, 때론 식수걱정까지 해야 하는 깊은 산 골짜기에 홀로 기거하고 있다. 그의 글들을 읽노라면 그가 살고 있는 깊은 산골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지는 듯 하다. 나도 산골에서 살아본 과거가 있었던 이유 때문일 테지만. 아마 태어나 쭉 도시에서 살았다면 저자가 그리는 풍경이 상상하기가 힘들거나 생각만큼 그리 정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그저 고즈넉한 산골 생활이 좋아서 문명의 이기들을 이용하여 편하게 산골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그는 출가하진 않았지만 출가승에 비견 될 만큼의 절제된 구도의 길을 가고 있다. 1년에 홀로 먹는 쌀의 양이 36kg이 되지 않을 만큼의 소식과 철저하게 자연과 신체의 싸이클에 순응하는 섭생, 대자연의 흐름에 맡길 뿐 주변식생에 미치는 생사여탈이란 인위적인 질서 조절을 가급적 하지 않는 다는 도가의 무위사상과, 누군가를 살려냄으로써 모두에게 공덕이 된다는 판단이 서면 조금씩 구하고 살리기도 한다는 서양적 실용주의의 극과 극의 상이점을 절충하여 상호보완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p252)
그런 모습은 불개미들의 공격을 받고 있는 호랑나비의 대형 애벌레도 살리고, 타 들어가는 듯 더운 날 무논에서 익어가는 올챙이들과 개구리를 살리기 위해 주인 몰래 물꼬를 터 주고, 욕조에 들어와 버둥대는 곤충들을 살리기 위해 빨래판을 기대어 주는 등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이는 이제껏 인간이 자연에게 가졌던 우월함과 이기심을 내려놓는 행위이며 철저히 자연의 일부로써 살아가려는 의지 혹은 깨달음이 아닐까 한다.
그의 글 속에서 내가 고민하고 있던 많은 것들의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생매장 당하는 동물들을 보고 시작한 엄격한 채식에서 오는 고민들이 해결되었고 –무작정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아닌 나 또한 먹이 사슬의 상위에 있는 동물로써의 지위를 인정하는 등의- 이제껏 나를 지배해 왔던 탐욕 ‘식탐’ 에 대한 고민 해결의 실마리도 찾는 등의 소득이 그것이다.
어린 시절 시골 생활이 주었던 정서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리움으로 바뀌는 것 같다. 저자의 글들로 나의 그리움은 더 배가 된다. 새들도 서식하는 지역마다 사투리를 쓴다는 놀라운 사실, 다람쥐와 친구가 되고, 멀리 회오리 바람을 타고 날아온 플라타너스의 넓은 잎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사는 삶이 내겐 너무나 경이롭게 느껴진다.
다소 포인트가 없는 듯한 밋밋한 문장, 읽을 때 리듬이 느껴지는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맛이 나는 그런 문장이 아니어서 아쉬움은 조금 느껴지지만 –마치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처럼- 글이 담고 있는 풍광과 깨달음이 그 아쉬움을 채워주기에 넉넉하다. 거기에 직접 찍은 아름다운 사진들은 삶에 지치고 답답한 우리들은 평온함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