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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소설 읽는 시간 - 세계 문학 주인공들과의 특별한 만남
정여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정여울의 소설 읽는 시간
우리가 어떤 소설을 읽을 때 주인공이 꼭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거나 나와 처한 상황이 비슷하다고 느껴질 때 그 소설에 더욱 푹 빠지게 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소설은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되고 주인공들과 함께 부대끼고 그들이 엮어가는 대서사에 나도 스며들게 되어 때로는 상처 받은 마음을 치유하거나 열정적인 사랑을 하거나 안타까운 이별을 해보는 그런 경험들 말이다.
저자는 거기에 한발 짝 더 나아가 ‘책 속의 주인공들을 만나게 해보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한다. 나를 중심으로 왼쪽, 오른쪽으로 선 주인공들과 느긋하게 산책을 하며 그들이 처하고 경험한 일들을 함께 얘기하다 보면 너무나 닮은 꼴인 그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기자신을 더 깊이 이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재미난 상상을.
그런 상상은 참으로 흥미롭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변태하기 위한 미칠듯한 시간을 각자 다른 힘으로 버텨낸 [데미안]의 싱클레어와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을 만나게 하고, 끔찍한 스캔들을 일으키는 인간의 억압된 욕망을 다른 식으로 추구한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지킬박사와 [도리언그레이의 초상]에서서 바질을 연결시켜 이야기 하는 식의 전개는 이제껏 상상해 보지 못한 재미와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런 식으로 11챕터 22권의 고전들을 만남의 광장으로 불러내고 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저자 정여울이 읽은 고전들의 서평이나 독후감이다. 그래서 그 책들을 읽은 작가의 생각과 해석을 볼 수 있으며, 여기에 소개된 책들은 모두 청소년기 학창시절 필독도서로, 혹은 시험지에서 많이 듣고 보았던 책들이다. 그러나 어렸을 때 이후로는 거의 떠올려 보지 못한 책들이기도 한 것이다.
다시 고전을 접할 기회는 토익, 토플등의 테스트를 보기 위한 실용서적들, 자기계발서나 취업에 관련된 경제, 경영에 관련된 책들을 공부하기 위해 후 순위로 자꾸만 밀려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건 어린 시절 보았던 이 책들의 줄거리나 내용뿐만 아니라 그 시절 내가 느꼈던 느낌들도 함께였다. 이해가 잘 되지 않아도 고전이기에 읽어 내렸던 기억, 혹은 그 깊이를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던 시큼한 풋살구 같았던 그 느낌들까지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이 두 가지 점에서 참으로 만족할 만한 책이다.
여기에 소개된 책들은 이름은 누구나 한번쯤은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어떤 책이냐고’ 물으면 막상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그런 책이기도 하고, 영화나 뮤지컬 등의 다른 장르의 예술로도 재 탄생한 작품들로 대충의 줄거리는 알고 있는 그런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어떤 시각으로 읽어야 하는지 그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으면 자칫 방대한 서술만 읽어버리는 의미 없는 책 읽기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위험을 안고 있기도 하기에 저자의 해석과 시각은 고전읽기의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작품들의 주인공을 만나게 한 것은 참신한 생각이기도 하지만, 각각의 작품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먼지가 쌓인 채 책장 속에 쌓여 있는 고전들을 다시 꺼내 읽어 보아야겠다 는 욕망이 솟아 오른다. 다시 읽는다면 아마 예전의 그 풋 살구 같은 시큼한 느낌은 사라졌겠지만 좀더 다른 느낌으로 다가 올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