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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명랑하거나 우울하거나 - 서른 살을 위한 힐링 포엠
장석주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4월
평점 :
-서른 살을 위한 힐링 포엠-
오늘, 명랑하거나 우울하거나
요즘 들어 힐링 Healing 이란 말을 참 많이 쓰고 듣는다. 어느 TV방송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은 이유가 되기도 하고 또 그러면서 더욱 ‘치유’ 에 대해 관심이 많아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만큼 이 사회가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한 것이다.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가족이나 반려동물, 친구, 연인 혹은 책이나 음악, 사회적 멘토로 이름난 명사(名士) 들에게서 받는 위로는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어 주고 아직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걸 일깨워 준다.
저자 장석주는 시에서 치유를 찾았다. 저자가 월간 <탑 클래스> 에 지난 5년 동안 연재했던 원고들을 모아낸 이 책은, 크게 4개의 주제로 나눈 챕터마다 10편에서 14편 정도의 시를 소개하고 그 시를 읽은 자신의 해설 혹은 자신의 생각을 담고 있다.
나 또한 시를 즐겨 읽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괴롭거나 삶이 팍팍하다고 느낄 때 꼭 꺼내 읽는 책들이 있다. 이를테면 이외수의 책들이 그렇다. 그의 유머러스한 글들과 힘들게 살아온 삶을 특유의 재치로 풀어낸 글은 나를 우울함에서 건져내 주고 다시 삶의 에너지로 충만하게 한다.
그러나 ‘오늘, 명랑하거나 우울하거나’ 는 저자의 의도대로 나를 위로하고 치유해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좀더 엄밀히 말하면 이 책 속에 들어있는 ‘시’ 들이 아니라 그 시에 대해 적어놓은 ‘저자의 글’ 들이 오히려 시와 그 시를 적어낸 작가들과 교감을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힐링’ 이라는 말속에 들어있는 따뜻함, 위로, 따뜻한 포옹, 쉼 등의 이미지는 현란하고 현학적인 저자의 표현들로 여지없이 부서진다. 답답하고 힘들 때 꺼내 읽기 위한 책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여렵다’ 는 것이다. 만일 그런 때에 이 책을 꺼내 든다면 첫 페이지에서부터 이 어려운 표현들을 이해를 위해 뇌를 가동시키면서 슬슬 열이 오르기 시작할 지 모르고, 답답한 차에 페이지들을 뭉텅이로 뛰어넘게 되고, 다시 목차로 돌아가 어떤 시를 읽을까 고민하게 되고, 어쩌다 반가운 시들을 만나도 여지없이 이어지는 저자의 휘황찬란한 글 놀림에 지쳐버릴 지도 모르겠다.
만일 ‘힐링’ 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시를 막연히 좋아하면서도 도대체 어떻게 읽어야 할지, 그 뒷이야기는 어떤 것이 있는지, 이 시를 쓴 시인은 어떤 사람인지, 이 시집 외에 어떤 시집을 냈다거나, 그이의 인생관은 어떤지 여러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저자는 시를 소개하고, 그 시를 쓴 시인을 직접 만났던 이야기와 그 시인의 인생사를 이야기 해주기도 하고, 설명을 위해 공자, 노자, 카프카, 밥딜런, 임방울 등의 다양한 예술가들과 철학자들을 만나게도 해준다. 다양한 방면으로 공부를 많이 하고 깊은 사색을 통한 깨달음들을 말해주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한 편의 시마다 2페이지를 가득 채운 흑백사진은 좀더 사색의 깊이를 더해준다.
이 책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하다.
‘힐링’ 이라는 말을 빼버리면 아주 훌륭하게 시와 우리를 조우하게 해 주는 것이다. 치유에 의미를 두지 않고 시를 좀더 깊이 있게 접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아주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가 모르던 많은 시인들과 그들의 삶을 만날 수 있고, 좀더 나아가 시인들의 수도승 같은 삶과 고뇌들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며, 서점에 가 좋았던 시인의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은’ 시집도 한 권 사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 한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