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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가는 남자
최숙미 지음 / 책마루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칼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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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이외수의 소설 '칼' 이 떠올랐다.
이 책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어떤 장인의 고집스러운 열정이 담겨 있을까. 아니면 칼날같은 날카로운 무엇을 품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니 난 학창시절 교과서 이외에는 수필을 읽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얼마전 우연히 수필과 에세이가 다르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현재 국어사전 상으로는 수필- 자신의 경험이나 느낌 따위를 일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기술한 산문 형식의 글. 장산문(長散文)과 단산문(短散文)으로 나눈다. - 과 Essay 가 같은 뜻이다. 수필이 영어로 에세이 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수필을 에세이와 미셀러니 (miscellany, 경수필)로 나누는데, 에세이는 어느 정도 지적, 객관적, 사회적, 논리적 성격을 지니는 소평론 따위를 말하며, 미셀러니는 감성적, 주관적, 개인적, 정서적 특성을 가지는 글로써, 좁은 의미의 수필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분류를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영어의 에세이(essay)는 ‘수필’이 아니라 ‘단산문’이며......에세이는 수필을 포함한 개념이고...... 에세이 가운데서 문학성(예술성)이 구현된 글이 수필......수필은 애초 문학성 구현을 목적으로 쓴 글이어야......수필은 일반 essay가 아니라 a literary essay 이다....이라는 것이다.
<이승훈/수필가> 출처: http://blog.daum.net/qlso28/15957634
그렇다면 '칼 가는 남자' 는 앞선 기준으로 보았을때는 'miscellany, 경수필' 이라 할 수 있겠고, 이승훈 수필가의 기준으로 본다면 '수필' 즉 a literary essay' 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숙미 작가는 아마도 늦게 문학과 사랑에 빠진 것 같다. 2010년 <에세이문예>에서 수필로 등단한 후 '문학적인 열정' 을 불태우고 있는 자신과,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며 고민하고 당황스러워하는 남편의 모습이 '흙속 진주'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책 속에 나타나는 많은 이야기들은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흔히 볼수 있는 이야기와 풍경들이다. 운동을 하다가 시들어 가는 장미를 보며 느낀 단상, 지금은 가까운 이 하나 살지않는 그리운 고향을 방문하는 그녀와 고향 선배들의 모습, 온 몸에 총알이 박힌 채로 살아오신 아버지, 아픈 아내를 위한 기도로 교회에서 칼갈아 주는 봉사를 하는 남자에게서 떠올린 아버지, 요양원에 모신 어머니를 보며 불효를 자책하는 자식들, 관공서에서 느낀 친절의 중요성들, 관조적으로 때로는 열정으로 때로는 눈물로 진지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녀가 써내려간 이야기들은 분명 나이가 들어가며 누구나 느낄수 있는 것들이겠지만, 감정적이고 정서적이긴 하지만, 일기장에 적어내려가듯이 무작적 감정에 치우치거나 자신의 처지에 몰입하지는 않는다.
언제나 현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잔잔하고 관조적이며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의 문학적인 성장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이 각 작품 전체에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진지함과 열정들에 비해 문장들이 입에 착 달라붙지는 않는 다는 것이다. 한번 읽기시작하면 계속 읽고 싶어지는 그런 매력이 조금 부족했다고 할까. 그녀의 생각과 그녀의 삶에 동화되고 그녀의 눈물에 나도 함께 눈물이 흐르는 그런 공감을 얻어내기엔 그녀의 필력이 조금 약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그녀보다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그녀의 아버지에게 더 관심과 애착이 간다. 전쟁통에 땅굴을 파고 형수님이 가져다준 밥으로 목숨을 연명하고, 총알이 온 몸에 박힌 줄도 모르고 살아오신 아버지, 아픈 아내를 위한 간절한 기도의 의미로 교회에서 교우들의 칼을 '무채색의 무지개빛' 을 만들며 신나게 갈아 주던 남자에게서 보게된 아버지...... 그 '칼가는 남자'......
그녀의 작품에서 인상적인 것은 그녀의 '글', '창작'이 아니라 작가의 작품 속 진짜 주인공인 것만 같은, 책을 다 읽은 후 유일하게 떠오르는 이미지인 '아버지' 때문인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