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역사여야 하는가?
어쩌면 저자는 이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역사는 지나온 것들의 기록이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승자의 자서전이기도권력자들에게는 정통성를 찾기위한도구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일본과의독도 문제, 중국과의 동북공정 문제처럼 현실의 이익과 존재의 첨예한 대립의 빌미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드라마로 소설로 만들어져 즐거움과 재미를주고, 비유적으로 현실을 비판하기 위한 좋은 소재가 되어주기도 한다.
결국 역사는 같은 사실과 사료를 놓고도 보는 자의 시각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 지기도 하고, 여러 사료들 중에서도 강조하거나 부각시키는 것이 있는 가 하면, 의도적으로 은폐하는 것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늘 살아있다고 하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되고, 과거를 살펴 다시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위해 살펴야 하는 당위성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질문이나 답은 너무나 진부하다.
이미 그런 역사책은 많이 나와 있고, 현대에 들어서도 정권이 바뀔때마다 우리의 역사속에서 정통성을 찾는 시점이 다르다는 것,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과감히 학생들의 교과서를 자신들의 정치색에 맞게 수정하려는 시도, 혹은 일제강점기의 축소 되고 왜곡된 역사관을 비판하고 뒤집어 보려는 노력들이행해지고 있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역사의 목격자가 되어 생생하게 보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저자는 어쩌면 다른 의도에서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실제로 '왜 우리가 역사에 빠지는지' 의 질문의 답은 1장 책의 맨 처음에 나타나 몇 페이지안에 끝이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책의 서두에 명확하게 밝혀져 있다.
그 한가지는 이 책은 역사를 학문적으로 살핀 것이 아니며, 역사 소설을 많이 쓰고 비교적 역사서적을 많이 읽저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서술한 것이라는 것, 그리고 또 한가지는 저자는 소셜네트워크가 진실을 전하지 않고 거짓을 전해 우리 사회에 꼼수와 모리배가 넘치는 사실을 경계하며, 젊은 이들이 이러한 꼼수와 모리배들에게 현혹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이 책을 썼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그런 거짓과 선동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역사를 살피고 해석하는 자기만의 시각과 통찰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라고 볼 수있다.
그런 의도와 주제로 1장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과거를 반복 하지 않기위해 역사를 읽고 논한다는 것2장 역사는 진실인가에서 왜곡되고, 편향된 기술자의 시각에 따라 달리 그려질수 있는 위선의 역사 왜곡된 역사를 살펴본다. 3장 역사는 진보하는 가에서는 봉건시대에서 민주주의 시대로 발전한 경우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독재자의 출현과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을 볼수 있으며 마지막 4장 개인의 일상도 역사인가에서 저자 개인의 경험과 일기, 서간, 풍속화등의 예를 통해 평범한 사람도 역사로 기록될 수있다는 것을 서술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꼈던 점은 이 책은 역사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형식은 역사를 말하고 있지만역사를 소재로 저자의 생각과 주장을 자유롭게 펴고있고,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 객관성을 놓친 부분도 많다는 것이다.
저자는 독특하게도 우주의 시작부터, 지구의 탄생, 생명체의 진화등에서 역사의 진화를 설명하고 있는데, 과학책에서나 볼 수있을 어찌보면 무의미 할 수있는 소재를 통해 인류는 '빵'을 위해 발전을 했으며, 그것이 역사 발전의 동력임을 말하고자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주제는 책 전체의 주제로 흐르고 있다.
한국의 현대정권, 조선, 고려, 신라, 중국 삼황오제, 맹자,공자, 미국, 프랑스, 독일등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보여주는 많은 예들과 자신의 젊은 시절의 경험과 과거 개개인들의 편지, 풍속화, 일화등의 소재는 아주 흥미로웠지만 일관적이고 아주 교묘하게 하나의 주제로 귀결되는데,
그것은 바로 반공과 친미 친자본이었다.
저자는 1장에서 3장까지 많은 챕터들 속에서 아주 기술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숨겨놓았는데, 저자가 말하는 절대 오지 않을 이상향이 바로 공산주의를 뜻하고 저자가 말한 '빵'은 자본을 말한다는 것을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수 있었다.
저자는 김대중 참여정부와 노무현 국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기존의 역사를 부정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역사가 기술 되기 시작했다고 하면서 역사 편향과 왜곡의 문제를 시사하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정치를 무능하고 부패한 독재라고 비난하면서도 생존을 위해 어쩔수 없었으며, 경제발전을 술주정뱅이 아버지로, 민주주의를 어머니로 그 자녀를 국민으로 비유하며, 상처투성이고 절대 용서못할 과거를 지나왔지만 자녀가 어른이 되어 부모를 이해하고 인정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과거를 인정해야만이 미래를 향해 갈 수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그 험난한 세월을 겪고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룬 그들을 젊은 이들은 수구꼴통이라고 부른다고, 생존을 위한, 안보를 위한 선택이 잘 못된 것인가란 말을 할땐 차라리 저자가 측은해 지기까지 했다.
과거를 인정해야 한는 것은 개인의 경우와 국가의 경우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생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그 것을 이용하여 국민을탄압하고, 분열시키고 억압한 정부와 독재자를 인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 독재자들 중 한명은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용서를 구하기 는 커녕 버젓이 TV에 나와 자신이 한번더 대통령을 해먹으려 했다고 인터뷰를 하는 나라라면, 아직도 친일의 잔재가 남아 삐그덕거리는 나라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남북전쟁으로 인해 경제가 발전하고 수준높은 민주주의를 이룩해 냈다고하는 저자의 논리라면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뺏기기는 했지만 문호가 개방되고 경제가 발전했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또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를 두고 처음에는 농민을 도와주기위해 시작한 시위지만 뒷편에서는 높은 한우값때문에 1년에 한번도 고기먹기 힘든 사람들이 있다는 빈곤을 이야기 하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발상이 아닌가?
쇠고기 문제는 국민의 건강에 관한 문제이고 식량주권에 관한문제이고,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미국의 눈치만 살피는 정부에 대한 시위인데, '빵'의 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고 생각하며,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쓴 것은저자가 우려하는 '괴담'을 오히려 저자 자신이 퍼트리는 우를 범한 것이며 객관성을 놓친 아쉬운 부분이었다.
또 객관성에 아쉬운 점 하나는 '위서'에 대한 저자의 단정적 의견이었다.
이글을 읽고 위서의 논쟁에 대한 글을 처음으로 접한 독자라면 위서의 논란이 있는 한단고기나 화랑세기가위서의 '논쟁' 에 있지 않은 이미 '위서' 라는 판단을 하게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돌이켜보면 자칫 결정론으로 빠질 위험성이 있다. 특히 혁명의 경우에 그렇다. 성난 민중들이 일어나 혁명에 성공하여 민주주의를 이룩했다면 그 혁명에 흘린 피는 의미있는 것이고, 결국 잘못되어독재가가 집권해 버렸다면 그 혁명은 의미가 없는 것인가? 현재는 이러니그때 그 일은 결국 의미가 없다는 것은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 보는 편협한 시각이 아닌가?
저자는 지금의 좌우 논쟁과 진보 보수 논쟁도 결국 미래의 시각에서 보면 쓸데없는 낭비라고 하고 있지만 그런 논쟁과 토론없이 더 나은 미래가 저절로 올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물론 저자는 그 논쟁을 기득권을 지키고 뺏기위한 '소모적인 논쟁'이라고 하고 있지만, 그런 겉으로 보이는 자극적인 현상뒤에 정말 건전한 토론과 논의를 형성해 가고 있는 건전한 기류는 보지 못한 것인지 궁금하다.
결국 저자가 말 하려는 것은 '진보와 이상은 지금 당장 이루어 지지 않은 말 뿐인 것이니 논쟁은 불필요하다. 결국 빵이 중요할 뿐이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객과성을 유지해 가다가 순간 저자의 의견이 나타날땐 다소 급하고 과하다는 생각이 들때면 내가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지 의문이 들곤했다.
어느 책이건 저자의 의견이 들어가는 건 당연하다. 좀더 참신하고 새로운 시각을 기대했던 나의 바람은 산산히 부서져버렸지만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의 논리를 이해 하려고 노력하고 좀더 이해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창을 두드렸던 시간은 의미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책의 서두에 역사와 현실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쓴다고 명시는 해 놓았지만 자신의 생각이 아닌 단정적이고 객관성을 잃은 정보들을 대하는 독자들을 생각 해야 했다.'젊은이들이 모리배나 괴담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역사를 해석하는 눈이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이 책을 쓴다' 는 저자의 의도와는 참으로 모순이 되는 행위가 아닌가.
저자는 확실히 보수의 시각에서 이 책을 쓴 듯하다. 그래서 진정한 보수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좀더 냉철하고 좀더 중립적으로 자신의 논지를 펼쳤다면, 저자의 방대하고 훌륭한 역사의 지식들이 빛을 발하는 더 무게감 있는 글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