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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 금지구역 - 2012 앙굴렘 국제만화축제 해바라기상 수상
프란시스코 산체스 지음, 나타차 부스토스 그림, 김희진 옮김 / 현암사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체르노빌
'체르노빌' 이라고 쓰고 한참동안이나 컴퓨터 앞에 그냥 앉아있었다.
이 책에 대해 무슨 말을 쓰려고 한다는 자체가, 뭔가 나름의 평을 내린다는 것 자체가
죄스러웠기 때문이다.
1942년 12월2일 이탈리아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의 최초 인공핵반응
1986년 4월26일 구소련(지금의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
2011년 3월12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2012년 3월 26일 2012 서울 핵안보 정상회의
솔직히 말하면 난 1년전 가까운 일본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되었다는 소식에도,
그 때문에 우리나라에 오염된 생선들이 수입된다는 소식에도, 해류때문에 우리나라도
오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소식에도 난 내 일이 아니라서 특별한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먼 나라 일따위에 관심을 기울이기에 난 나자신의 일도 감당해내기
힘겨웠으니까.
그리고 지난달 26일 서울에선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렸다.
이미 핵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 다른 나라에게 핵을 가지지 못하게 하려고,
바로 그런것이 국력이 되는 현실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분명 위험하단 것을
알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핵을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언제 우리도
체르노빌 대참사 같은 일을 겪을지 모르는 데도 우리는 그런 진실은
애써 외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
저자는 이런 사람들을 '망각의 늪에서 구해내기 위해' 이책을 썼다고 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망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불편한 진실은 의도적으로
망각의 힘을 빌리려 하니까...
"...삶에서 최악의 재난은 침묵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조야 다닐로브나
이런 엄청난 일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자국민의 기억에서 조차 잊혀져버린
사람들, 그 곳 -누구에게는 꿈에서라도 다시 보고 싶은 고향- 을 잃어버린 사람들
이름 없이 죽어간 사람들, 병을 얻어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 '그 곳'이 망각이라는 늪으로 서서히 빠져들어가는 것을 본 당사자들
그 사람들은 그런 사고를 겪었던 것 보다, 어쩜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서서히
잊혀지는 것을 더 힘들어 하지 않았을까.
작가 또한 나처럼 체르노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나 큰 관심이 없다가
그의 형으로 인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프리피야트' 라는 마을의 광경에 충격을 받아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정말로 알고 싶어졌다고 했다.
원전폭발, 사고 후 처음으로 달려온 소방관, 참사의 처리를 위해 급파된 인간적인
이름도 얻지 못한 살아있는 로봇-생체로봇-에 불과했던 처리반, 하루 아침에
정든 고향을 떠나 타지를 떠돌게 된 시민들, 가족의 죽음, 위험한 줄 알면서도
결국 고향으로 돌아 올 수밖에 없었던 귀환자들.
결국 작가는 오랫동안 이들의 자료를 찾고, 실존하는 최대 규모의 유령도시라
일컬어지는 '프리피야트' 를 직접 방문하면서 등장인물들과 그들이 겪었던
비극의 서사를 구상해냈다.
작품에는 레오니드와 갈리아 부부, 그들의 딸 안나와 블라디미르 부부 그리고
안나 부부의 자녀 유리, 타티아나가 등장하는데 작가의 의도대로 작품은
시간 순으로 배열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단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그들이 겪었던 비극은 선정적이고 세세한 설명이 아닌 짧은 대사와 의도적으로
말끔하게 처리되지 않은 그림체로 나타난다.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에 그려진 황량한 땅에 벌거벗은 채 서있는 나무 한그루가
그런 작품전체의 분위기를 잘 말해준다.
대사가 없이 그림으로만 처리된 페이지는 묘한 긴장감과 우울하고 불안한
분위기를 아주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프리피야트를 묘사한 장면들은
인터넷으로 찾아본 현재 그곳의 정경사진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지만 굉장히
절제했다는 느낌이 든다.
작품 처음과 끝에는 글쓴이와 그린이의 후기가 들어있고, 이 작품을 만들게된
동기와 의도 이 사건이 일어났던 경위와 설명이 도시사진들과 함께 설명되어있어,
실제 참사의 실상을 좀더 자세히 알수 있다.
프리피야트는 원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거주할 목적으로
만들어낸 계획도시였고,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기 전까지 그 도시는 그 어디 보다도
행복한 도시였다.
폭발 사고가 있은 후 그 도시에는 소개 명령이 내려지고 시민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게 된다. 3~4일만 떠나 있으면 된다던 정부관계자의 말은 거짓이었고,
그 곳에 투입된 처리반은 땅을 파고 건물을 무너뜨리고 남아있는동물들을 죽여
그 구덩이에 함께 묻었다.
그 근처의 도시들도 결국 차례대로 같은 일을 겪게된다.
자신에게 닥친 일이 어떤것인지도 모른체 달려온 소방관들과, 생체로봇이라 불린
처리반은 나중에 위대한 순교자의 명예를 얻었지만, 결국 그들은 고통속에
생을 마감해야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그들의 이름은 서서히 잊혀졌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넘어 너무 많은 것을 탐하고, 생존이 아닌
단지 편리함을 위해 많은 것들을 파괴하며 살고있다. 당장 내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고 하여 전혀 일어나지 않은 일인것처럼, 우리의 이런 이기심때문에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이런 현상을 모른 척하고 눈을 감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알아서 불편한 일련의 이야기들과 진실을, 굳이 알리려고하는
정부도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
현존하는 최대의 유령도시 프리피야트는 인간이 사라진 후 비로소
자연의 차지가 되었다.
지구상에서 우리 인간이 사라지면 바로 그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자연은 곧 자신의 힘으로 모든것을 돌려 놓을 것이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책이 주는 의미는 다른 책들이 그런것처럼, 등장인물이나 그들이 만들어내는
서사는 아닐 것이다.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의도가 그러하다면 작가는 아주 훌륭하게 원하는 바를 이루어냈다.
이미 나는 이 비극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인터넷을 뒤져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을 검색하고,주변 사람들에게 '통제를 벗어난 핵 에너지'의 위험성에 대해
말하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내가 죽어가는 이 자연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나의 이기심이
어떻게 우리를 병들게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많은 사람에게 읽혀지고 더 많은 고민거리들이 넘쳐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