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곡
윤재성 지음 / 새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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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곡》

 


 

강원도를 다 집어삼켜 버릴 것 같았던 화마가 휩쓸고 간지 며칠 지나지 않았다. 불은 순식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켜 버렸다. 그나마 인명피해는 크지 않았다고 불행 중 다행이라고 위로하기엔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급하게 피신하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동물들, 그리고 그보다 더 황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소설 《화곡》은 며칠 간 한국 사회를 불안에 떨게 했던 강원도 산불 화재를 보고 나서인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소설 속 주인공은 가난했지만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형과 오빠를 살뜰히 챙기며 공부하는 여동생을 가족으로 둔 남을 구하려다 아르바이트 장소에 늦게 가서 해고 경찰을 꿈꾸는 오지랖이 넓은 청년이었다. 그 일을 당하기 전까지.

 

눈이 많이 오던 날 밤 늦게 집에 들어가던 주인공은 자신의 집 담벼락 앞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항공점퍼를 입은 수상한 남자가 뭔가 끈끈한 액체를 뿌리고 있다가 주인공 얼굴에다 뿌린 뒤 이상하게도 입으로 불을 내 뿜었고, 그 불에 주인공의 몸에 옮겨 붙어 얼굴과 몸이 녹아내리고 만다. 그리고 그 불은 자신의 집도 집어 삼켰다.

 

며칠 뒤 병실에서 깨어난 주인공은 인생이 망가졌음을 깨닫게 된다. 불 때문에 자신의 몸도 망가졌지만 여동생은 사망,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던 형과도 인연이 끊겨 버린 것이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힘든 상황에서도 경찰에게 자신이 목격한 범인의 인상착의를 얘기했지만 경찰은 그의 말을 믿지 않고 화재로 인한 정신적 장애로 몰아가 버린다.

 

그 후 그는 사라진 범인을 찾기 위해 불만 쫓아 다녔고 일상도 무너진다. 흉측하게 변해버린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그를 괴물 취급하는 와중에도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불을 끄고 동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 소방관이 되고자 하지만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지고 결국 그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사회에서 스스로 격리시킨다. 그는 결국 노숙자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 그 앞에 나타난 사회부기자. 그녀는 그의 삶을 취재해 특종을 잡고자 한다. 그러던 중 다시 시작된 화재사건. 그런데 이 화재사건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닌 것 같다. 모종의 세력에 의해 철저히 계획된 냄새가 진동한다. 냉소적인 주인공과 이 일에 목이 달린 기자는 여러 건의 화재사건을 쫓으면서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둘 사이에 돈독한 팀워크가 형성된다. 경찰은 주인공을 화재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해 시시각각 간격을 좁혀오고 기자는 범인을 은닉해 주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받는다.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주인공의 눈앞에 드디어 과거의 범인이 등장한다. 그는 자신을 쫓는 경찰을 피해 범인은 잡을 수 있을까. 그 과정에서 기자와의 관계는 어떻게 발전될까. 계획된 화재사건의 배후는 누구이며 범인은 왜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 걸까.

 

소설은 독자의 바로 눈앞에 주인공의 고통을 생생하게 펼쳐 놓는다. 그의 밤을 괴롭히는 꿈과 온 몸을 태워버릴 듯 되살아오는 통증과 죄책감은 너무나 생생해서 눈앞에서 살아 일렁이는 것 같고 덩달아 책장은 순식간에 넘어간다. 불을 주제로 한 소설은 오랜만이다. 사회적 약자로써 겪은 주인공의 고통은 그 불처럼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더욱 절절했고 그래서 기자와의 팀워크는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소재와 구조 진행, 캐릭터까지 너무나 매력적인 소설이다.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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