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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강남
주원규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2월
평점 :
《메이드 인 강남》
정말 이토록 시의 적절한 작품이 있을까. 이 작품을 읽고 얼마 되지 않아 소설의 현실판 ‘버닝 썬’ 사건이 언론에 도배되었다. 이 사실 하나 만으로도 이 작품은 읽을 만하다. 아니, 이 작품은 그저 그런 추악한 현실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일 것이다. ‘버닝 썬’을 시작으로 고구마 줄기를 캐듯이 하나하나 수면위로 드러나는 사건은 소설의 끔찍함은 사뿐히 넘어서고 있으니까.
2019년 3월 현재, 김학의 로 대변되는 현실은 이 소설이 그저 상상력이 아님을, 고 장자연 씨의 사건도 모두가 《메이드 인 강남》의 현실 판이다. 그리고 수많은 죽음, 자살로 위장된 것으로 많은 이들이 추측하는 수많은 죽음들도 아마도 그럴 것이다.
186페이지의 짧은 분량이라 소설은 1~2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다. 낭자한 피와 분명 어디엔가 있을 법한 등장인물, 미스터리, 긴장감 그리고 차마 입으로 형언하기 어려운 엽기적인 행각들. 이 소설의 전부이자 더 큰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다.
사건이 터지자 주인공에게 연락이 온다. 그 누구보다도 빨리 주인공은 사건 현장에 도착한다. 남녀가 얽혀 선혈이 낭자한 벌거벗은 시체들. 그는 이 사건을 어떤 식으로 처리할지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범인이 누군지.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의뢰인의 의지와 이에 따른 ‘각본’이 중요할 뿐.
“다섯이 여자고 나머지 다섯은 고객이야. 여자애들을 술집 애들이니까 던지기 하고, 남자들만 개별처리 하면 돼.”
문제는 시체들 사이에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힙합 뮤지션 ‘몽키’가 끼어 있었다는 것. 이 인물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중요한 요소다. 이를 이행하는 주인공인 설계자 ‘민규’는 강남구 중심가에 위치한 로펌의 수석 변호사 이지만 그가 하는 일은 물론 여느 변호사의 일과는 다르다.
한편, 도박 빚에 목숨이 위태로워진 경찰 ‘재명’은 정보원에게 은밀히 이 사건에 대해 전해 듣고 본능적으로 돌파구가 되리라는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재명이 이 사건에 불쑥 끼어들면서 쉽게 끝날 것 같았던 사건은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여러 인물들의 욕망과 기괴한 탐욕과 형용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법칙이 지배하는, ‘강남’으로 대변되는 세상은 소시민이 살아가는 대한민국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그들의 치부를 알고 그들이 욕구를 충족하는데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실들을 알고도 눈감아 주는 고위층 인사들까지 모두가 ‘강남’이라는 연극 무대를 연기하는 등장인물들이다.
이제 개, 돼지라 불리는 사람들도 안다. 많이 알면 다치고 아는 것을 밖으로 발설하면 ‘자살 당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용기 있는 이가 있는 것 같다, 아직은. 앞서 언급한 현실판 《메이드 인 강남》 사건들은 해결이 될까. 아님 어떻게 될까. 그것이 너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