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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 - 남자 없는 출생
앤젤라 채드윅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3월
평점 :
《XX: 남자 없는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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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술이 이 세상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 상상하는 일은 꽤나 즐거운 일이다. 지금 세상에는 없는 기술, 혹은 어떤 정책을 앞에 두고 사회적 협의를 이끌어 내는 것은 상당한 시일을 거쳐 갈등과 반목을 가져온다. 2019년 3월 현재 우리나라만 해도 국회의원 연동형 비례대표, 공수 처 설치 등으로 나라가 들끓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별것 아닌 이슈에도 정치적인 대립으로 난리가 나는 마당에 아예 ‘아이를 낳는데 남자가 필요 없다’는 이슈가 던져지면 어떨까? 이건 동성 간 혼인 합법화보다도 더 엄청난 이슈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여성이나 흑인이 시민으로 인정받기까지도 따지고 보면 몇 십 년 안 된 문명, 게다가 우리나라 호주제가 폐지되고 엄마 성을 따라 쓸 수 있게 된 지도 얼마나 되었는가. 지금은 혼인에 따라오는 불평등한 가족 내 호칭 문제도 합의를 못 이루는 상황인데.
소설《XX: 남자 없는 출생》은 발칙하게도 이런 이슈를 직구로 던지고 있다. 나름 교양이 있다는 사람들도 동 성 연애를 치료를 해야 하는 병으로 본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정서가 팽배해 있는 이 사회에 말이다. 일단 과학적인 부분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나 같은 문과생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중요한 것은 이런 기술이 개발 되었다는 ‘가정’이다. 이런 가정 아래 요동칠 우리 사회의 단면, 안 그래도 사회적 약자일 게 뻔 한 ‘여여’ 커플이 이런 기술을 받아들이겠다, 기꺼이 실험대상이 되겠다 그 결심을 실행하는 순간 이 사회에 몰아칠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다!
두 명의 주인공 ‘줄스’와 ‘로지’ 는 레즈비언 커플이다. ‘줄스’ 는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알코올에 의존하는 무능한 아버지 밑에서 가난하게 자란 어두운 성향의 사람이며 ‘로지’는 중산층 가정에서 비교적 별 어려움 없이 곱게 자라 구김살이 없는 밝은 사람이다.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둘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함께 살기 시작했다. 이 둘이 함께 산지 1년 남짓 되었을 때 ‘동반자 제도’가 시행되었다.
레즈비언 커플이 아이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둘 중 한명이 정자를 기증받아 낳거나 입양을 해야 한다. 이 소설은 ‘난자 대 난자 수정’을 통해 남, 여 커플처럼 둘 만의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기술이 개발되었다고 가정한다. 단 Y염색체가 없어 태어나는 아이는 모두 여자아이다. 가까스로 법안이 통과되어 임상시험에 참여한 둘은 이 기술의 반대파의 극심한 괴롭힘에 맞서 위기를 맞고 흔들리는 가족을 지켜 내려는 주인공들의 고군분투를 담고 있다.
워낙 예민한 일이라 실험에 참가한 이들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려 했지만 주인공의 정보가 유출되고 이 둘은 순식간에 온 사회적 관심의 중심에 서고 만다. 정치인은 보수적인 시각에서 이 이슈를 이용하고 언론은 역시 자극적인 방식으로 이 이슈를 다루기 시작한다. 혐오와 폭력, 주인공들을 따라다니는 파파라치, 개인의 권리는 아랑곳 하지 않는 언론으로 인해 이 둘의 삶은 너무나 피폐해지고 실험을 주도하는 의사는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게 된다.
이런 과격한 대립의 틈바구니에서 둘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는 듯하고 함께 임신한 다른 커플의 아이는 사산되어 주인공들은 극심한 혼란에 빠지며, 심지어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직면하고 만다. 이 둘의 관계는 어떻게 되고 뱃속의 아이는 지켜낼 수 있을까. 이 둘과 아이는 과연 온전한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소설은 주인공들이 겪는 사회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주인공들의 내적 갈등 또한 비중 있게 그려내어 결혼과 가족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각기 다른 사회 경제적 위치, 동성 커플, 결혼제도, 가족의 정의, 언론의 역할, 정치적인 대립 등 다양한 시각으로 우리가 겪고 있고 앞으로 겪게 될 지도 모르는 일들을 긴장감 있게 그리고 있다.
독특한 소재, 매력적인 주인공, 특별할 것 같지만 결국 다르지 않은 인간들의 관계 등 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다. 한국사회에 어떤 반향을 불러올까 벌써부터 궁금하다. 편협한 시각으로 ‘페미’라며 거품 물 사람들이 벌써부터 눈에 그려지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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