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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 내 기억이 찾아가는 시간
하창수 지음 / 연금술사 / 2019년 1월
평점 :
《미로: 내 기억이 찾아가는 시간》
우리가 궁금해 하는 것 중 가장 궁금한 것, 절대 알 수 없는 것 하나는 바로 ‘죽음’이다. 그리고 또 하나 ‘시간’. 이 둘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먼 미래에서는 알 게 될 지도 모른다. 《미로: 내 기억이 찾아가는 시간》는 바로 이 둘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의 배경은 현재와 가까운 미래다. 시점은 2041년, 강국 중국이 급격한 사막화 때문에 그 힘이 약해지고 세계는 미국과 EU가 중심이 되어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었다. 한국과 북한도 상호 경제개방이 시행되면서 실질적인 통일을 이루었다. 그리고 소설 속 주 무대인 강원 원산에는 첨단통신업체와 우주 산업체를 거느린 다국적 기업 ‘슈퍼퓨처’사가 들어서고 서울은 무엇이든 가능한 ‘자유특별시’가 되어있다.
주인공 ‘미로’는 슈퍼퓨처 산하의 ‘스피릿 필드’에서 일하는 25살 엔지니어다. 그가 4살 때는 어머니가 11살 때는 아버지 20살 때는 여자 친구가 차례로 죽음을 맞았다. 그는 아버지와 여자 친구를 특히 그리워하고 외로움에 빠져 고독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과학자로 엄마를 잃은 아들을 위해 잠자리에서 직접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는데 이 이야기를 필명 ‘닥터 클린워스’란 이름으로 출판까지 하게 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후 그의 소설 속 소재 ‘스피릿 필드’ ‘모픽 필드’, ‘사이킥 필드’에 감명 받은 대학교수와 함께 실제 연구를 하게 되고 슈퍼퓨처 사의 회장에 의해 이와 관련된 우주산업에 거액의 투자까지 이끌어내게 된다. 그러던 차 아버지는 그가 11살이 되던 해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소설은 미래의 모습을 매우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지구는 통합 연합 정부 즉 새로운 질서의 영향 하에 놓이고 정보도 통제 된다. 과거의 정보들은 아카이브 DB위성에 보관되어 특수한 경로를 통해서만 열람이 가능하다. ‘혼성모방’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기존의 소설을 모방한 새로운 소설이 만들어져 인기를 얻기도 하고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예스터데이 샵’이나 소설 속 가장 강력한 소재로 ADM(After Death Machine) 즉 죽은 사람의 영혼과 만날 수 있는 기술도 개발된다. 단 부작용이 너무 커서 상용화되기는 힘들지만.
주인공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또 다시 아카이브DB에 접속했다가 14년 전에 아버지로부터 자신에게 온 메일을 받게 된다. 그 메일은 바로 아버지의 유작 소설인 ‘Space Without Space 우주 없는 우주'였다. 때마침 ’모픽 필드‘에 막대한 예산을 소비하던 슈퍼퓨쳐 사에서 부작용 때문에 상용화가 금지 되었던 ADM으로 투자 방향을 선회하려는 움직임을 보며 그 소설 속 이야기가 현실로 벌어지는 놀라움을 목격한 주인공은 ADM을 통해 아버지의 영혼과 조우하려 서울로 향한다.
소설은 이런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스릴러’ 보다는 앞 서 언급한 이야기의 기저를 이루는 철학 즉 시간과 죽음, 신 등의 요소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실은 소설 속 소재들이 너무나 흥미로웠고 내심 그가 위험한 기기를 통해 아버지와의 영혼과 조우해 모종의 음모를 파헤치고 아버지 죽음의 비밀을 풀게 되는 긴박감 넘치는 스릴러를 기대했지만 소설은 기대와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디언의 시간관은 서양의 것과는 다르다. 일직선을 달리는 서양의 시간은 죽음이 끝이지만 원으로 생각하는 인디언의 시간은 시작도 끝도 없다. 이 소설은 이런 시간과 죽음, 기억에 대한 철학적 인식이 담겨있다. 실은 내가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작품명인 ‘미로’에 빠진 것처럼 모든 의문은 머릿속에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과학과 철학적 소재가 어려웠음이 분명한데도 가독성은 너무 좋았고 끝까지 흥미롭게 책장을 넘겼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못해 고뇌하는 주인공, 모든 걸 ‘기억’ 하게 되어 괴로워하는 주인공, 모호한 엔딩장면, 14년을 지나온 메일과 죽은 여자 친구에게서 걸려온 전화가 모두 계획된 음모일지도 모른다는 암시 그러나 명확하지 않은 결말 등 이 소설은 너무나 모호해서 진짜 미로에 빠진 것 같았다. 그러나 재미있다. 확실한 것은.
굳이 따지면 이 소설은 동양적인 혹은 인디언의 시간관 혹은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에 대한 다소 발칙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하고, 발달인 것 같지만 실은 ‘변화’뿐일지 모르는 과학의 발전, 자유롭고 편해진 것 같지만 모든 걸 통제당하는 미래사회, 발견과 발명, 개발이 인류를 위한 것임에도 자본을 위한 것이 아닐 때는 결국 파기 되고야 마는 불의. 뉴 사이언스 혹은 디스토피아 그 어느 쯤에 위치한 ‘미로’ 같은 작품일 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