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에 이르는 스위치는 대체 무엇일까_히가시노게이고 신작소설《살인의 문 1,2》

[세트] 살인의 문 - 전2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8년 8월

《살인의 문 1,2》

살다보면 한번쯤은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혹은 그 만큼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 모두가 이를 실천에 옮기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이런 생각 하는 것 자체를 끔찍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일거다. 그런데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도 누군가는 살인을 한다. 누구나 한번은 생각하지만 섣불리 행동에 옮기지는 않는 그런 행위를 하게 만드는 계기나 한계 즉 ‘살인의 문’은 과연 무엇일까.

주인공인 ‘다즈마 가즈유키’는 치과의사인 아버지와 가정부까지 있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행복한 시절은 할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막을 내리게 된다. 어찌된 영문인지 할머니가 독살 당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하게 되고, 아버지의 치과에도 환자가 거의 들지 않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부모님은 결국 이혼하고 주인공은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지만 아버지가 만나던 여자 때문에 집과 병원건물을 팔게 된 것으로 모자라 세를 받기 위해 지은 맨션도 날리게 된다. 주인공은 그리하여 학창시절을 친척집을 전전하며 지내다가 대학진학을 포기한 체 취업을 하여 직장생활을 하게 된다.

그의 삶은 그 이후로도 계속 내리막길이었다. 그를 이렇게 만든데 아주 중요한 인물이 등장한다. ‘구라모치’는 이상하게도 평생을 그의 주변에서 맴돈다. 초등학교 때 주인공이 유일하게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지만 둘 사이는 묘하게 일그러져 있다. 구라모치는 주인공을 부추겨 돈을 잃게 하거나, 그를 이용해 자신의 욕심을 채우곤 했던 것.

주인공과 그의 악연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다. 주인공이 좋아했던 여자 친구를 유혹해 사귀다 그 여자 친구가 자살을 하거나, 좋아하는 여자가 나타나면 항상 그가 가로채기 일수 이런 일들 때문에 회사에서 불리한 일이 생기거나 할 때면 그가 구세주처럼 나타나 도움을 주는 듯 그에게 뿌리치지 못할 제안을 하는데 그가 권하고 도모하는 일은 언제나 다단계나 노인들을 상대로 한 사기와 주식투자를 미끼로 한 사기들이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그의 결혼에서도 다른 비밀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은 몇 번이나 시도했던 ‘살인’ 그를 죽이고야 말리라 다짐하게 되는데, 그는 과연 번번이 결정적 순간에 실패했던 ‘살인의 문’을 열수 있을까.

주인공은 심성이 고운 캐릭터로 다소 우유부단한 성격을 갖고 있다. 문제에 봉착했을 때나 위기가 왔을 때 적극적으로 해결하거나 부딪히지 않고 늘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결정하거나 행동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고 끌려 다닌다. 물론 그러니 ‘구라모치’에게도 평생 휘둘리게 된 것이지만.

사기꾼은 사람의 심리를 너무나 잘 알고 이를 순간순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임기응변에 강하고 언변도 화려하다. 대부분 이런 사람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리기 마련으로 사기에 관련되지 않으면 그를 너무나 좋은 사람으로 평가하지만 당했던 사람은 악마와 같은 본성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러니 당하는 사람만 바보가 되는 것도 한 순간이고.

나는 솔직히 말하면 작가가 표현하려했던 살인의 문을 열어젖히는 ‘증오’나 ‘살의’ 등의 결정적 계기에 집중되기 보다는 주인공의 행동패턴에 너무나 답답함을 느꼈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일에도 그의 제안을 뿌리치지 못했고 사기라는 걸 알면서도 그를 원망할 뿐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으며, 그의 몇 마디에 바로 조종당하는 모습이 너무나 답답했다. 물론 작가는 한 인간을 이렇게 조종할 수 있는 ‘악의 화신’을 그리고 있는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주인공의 인생은 정말 얼토당토않게 무너지고 망가졌다. 그에겐 언제나 기회가 있었지만 그 기회를 알면서도 놓쳐버린다. 그의 성격은 심지어 그를 죽일 수 있는 순간까지도 너무나 쉽게 살의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이에 반해 주인공 때문에 회사도 결혼도 끝나버린 회사 동료는 그를 죽이려다 사고를 당하기까지 하는데도 말이다.

그 ‘살인의 문’은 결국 ‘성격’에 있는 것일까. 결국 타고 나는 건가. 물론 작가가 이런 의도로 이 작품을 쓴 건 아닌 것 같지만. 한 어리석고 우유부단한 남자의 일생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결말에서 그가 망가진 이유를 드디어 알게 된 주인공은 그 악마가 누워있는 병원으로 달려간다. 과연 주인공은 마지막 순간엔 그를 죽일 수 있을까?

소설은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답게 물 흐르듯 이어지고 가독성도 너무 좋아 2권의 책을 4시간 정도면 다 읽을 수 있고, 주인공의 답답한 모습에도 뒷이야기가 궁금해 책장을 넘기게 된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인공만 빼고 그 비밀을 대충 예상하게 되지만 그 인물들의 연결고리가 궁금하니 긴장감은 끝까지 이어진다. 두 사람의 지독한 인연, 실은 당하는 주인공도 그를 이용하는 사람도 모두 완벽하진 않다. 악의 화신이라 표현하기에 그는 주인공에게만 그런 존재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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