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 죽인다
손선영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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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죽인다》

 


 

손선영 작가는 소설《판》으로 알게 된 작가다. 국정원, CIA, 소진사 등 첩보원들이 등장하여 일본 침몰이라는 소재로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거대한 스케일의 소설. 그의 소설을 이번 여름에 만나게 되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내게 ‘손선영’은 조금 거친 느낌의 작가이다. 문체는 예쁘게 다듬거나 친절하지 않고 소설의 전개 또한 거침없이 내달리는 야생마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역시 이번 소설도 이런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내가 먼저 죽인다》는 은행과 은행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과거 상고나 대학을 나와 입행을 하는 관행을 깨고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일반고를 나와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구걸하다시피 입행을 하게 된 주인공 ‘손창환’, 그는 은행이란 조직 안에서 아무런 연고도 기본적인 지식도 없어 자신에게만 과중하게 주어지는 업무에다 인맥으로 맺어진 관계들 속에 외로이 함몰되어 가며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던 그에겐 대학을 나와 자신보다 진급이 빠르고 중상모략과 이간질을 구사해가며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박상준’이란 상사가 있다. 그는 주인공을 하인처럼 부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각종 중상모략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게 하여 괴롭힌다. 주인공은 그와 관련된 비위와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내부자가 되어 부정과 비리를 밝히지만 오히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까지 가게 된다.

 

그리고 20년 후. 주인공은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이일 저일 전전하다 이제 겨우 택시 운전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데 그 택시에 씹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원수 ‘박상준’ 이 탄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그는 자신과 다르게 너무나 좋아 보인다. 주인공은 그에 대한 증오심에 사로잡혀 일도 하지 않고 주변을 맴돌며 그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하던다 결국 그를 죽이려 마음을 먹는다. 그런 때에 그의 딸 ‘엠제이’가 그의 택시에 올라타며 소설은 또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엠제이는 무슨 이유에선지 자신을 납치한 흉내를 내고 성공하면 받은 돈을 나눠 가지자고 제안한다. 주인공은 엠제이를 믿지 않지만 어쩌다 보니 그녀의 납치범이 되어있다. 한편 나부대대한 얼굴을 남자가 킬러 여러 명을 고용하며 몇 년의 시간이 걸릴지 모를 모종의 일을 꾸민다. 그리고 엠제이를 통해 알게 된 박성준 가족에 대한 비밀. 겹겹의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

 

소설은 하루 동안 주인공의 동선을 좇고 엠제이와 경찰, 어쩌면 엠제이 뒤에 있을 지도 모르는 박상준과 두뇌 게임을 벌이며 쫓고 쫓기는 추격을 시작한다. 20년 전 주인공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일련의 이야기와 현재의 추격전을 교차시켜 서술하며 모호한 이야기는 점점 뚜렷한 형체를 띠기 시작한다. 나부대대한 얼굴의 중연남자의 실체, 그가 고용한 킬러들의 역할, 엠제이의 목적.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을 파악하고, 자신이 하려는 일을 눈치 챈 박상준이 자신을 죽이기 전에 먼저 박상준을 죽이려는 주인공. 과연 주인공은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내가 작가를 거칠다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분명 결말이 이렇지 않아도 됐을 텐데. 더 친절한 결말을 지을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소시민인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무언가 통쾌한 맛을 느낄 수도 있었을 텐데 작가는 역시 자신만의 결말을 짓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던 내게 이는 조금의 안타까움이었다. 그러나 현실이기도 하고.

 

잘 모르는 은행과 행원들의 이야기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고 새로운 형태의 복수와 범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 작가의 아이디어와 필력에 감탄했다. 안타깝지만 이시대의 소시민인 주인공의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었고 좇고 좇기는 추격전과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작가의 매력을 유감없이 나타낸다. 올 여름 꼭 추천하고픈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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