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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워줄게 ㅣ 미드나잇 스릴러
클레어 맥킨토시 지음, 박지선 옮김 / 나무의철학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나를 지워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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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 ‘클레어 맥킨토시’ 《너를 놓아줄게》《나는 너를 본다》이후 3번째 작품이다. 12년 동안 영국 경찰로 재직한 경험을 살려 현실적이고 독특한 소재의 작품을 써온 작가는 이번에도 역시 일을 낸 듯 보인다. ‘불면을 준비하라’는 출판사의 자신감 넘치는 카피는 역시 거짓말이 아니었고 더위와 싸우고, 뒷장을 넘겨보고 싶은 충동과 싸우며 책장을 넘기다 결국 이틀 밤을 새다시피 했다. 결국 피곤은 나의 몫이 되었고.
전작들도 다 읽은 참이라 이번 작품도 기대가 컸고 역시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은 기대이상의 쾌감을 가져다주었지만 마지막의 반전은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총 3부 72장, 565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주인공 ‘애나’, 30년 동안 범죄수사과에서 일하다 퇴직 후 민간인 신분으로 대민 상담을 하고 있는 ‘머리, 그리고 애나의 엄마, 혹은 아빠의 이야기를 교차해서 들려주고 있다.
주인공 애나는 엄마, 아빠 모두 바다 절벽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 충격으로 굉장한 고통에 사로잡혀 있다. 아빠가 자살 한 뒤 6개월 후에 엄마가 똑 같은 방식으로 자살을 해서 애나는 더욱 화가 나고 고통스럽다. 아빠를 잃어 그 고통이 어떤지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엄마의 자살은 애나를 더 큰 고통에 빠지게 한 것이다.
다행히 그녀는 이 고통을 이기려 상담을 받았던 ‘마크’와 사랑에 빠져 딸 ‘엘라’를 얻었고 현재는 그와 함께 살고 있다. 결혼은 하지 않은 채로. 마크는 다행히 그녀를 사랑하며 좋은 아빠이기도 하고 그녀와 결혼하여 가족이 싶어 한다. 그리고 엄마의 대녀이자 그녀에겐 언니 같은 ‘로라’와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 가족 회사를 함께 꾸리던 삼촌이 그녀에게 힘이 되어 주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리고 독특하게도 사건을 해결하는 건 현직 경찰이 아니라 전직 경찰이고 현재는 민간인 신분인 ‘머리’다. 그에게는 ‘경계선성격장애’를 앓고 있는 아내 ‘세라’가 있는데 정말로 헌신적으로 아내를 돌보며 사랑한다. 그리고 언제 자살해서 자신을 떠나려 할지 모르는 그녀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다. 소설은 애나의 가족과 머리의 가족 이야기를 거의 비등한 무게로 다루고 있으며 이미 은퇴한 경찰이지만 그의 녹슬지 않는 수사 능력과 현직 경찰일 때와 다른 ‘넘쳐나는 시간’으로 사건을 해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늘 불안하고 언제 자기 자신을 해하려 할지 모르는 세라는 사건을 보는 독특한 시각으로 머리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하고 함께 수사를 하려 다른 지방에 가기도 하는 등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이야기는 단 한 문장으로 촉발 된다. 익명의 사람에게 서 온 조잡한 카드 속 ‘자살일까? 다시 생각해봐’ 란 단 한 문장. 엄마의 기일 아침에 배달 된 그 카드는 애나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고야 만다. 그렇다. 엄마가 자신에게 그런 고통을 줄 사람이 아니다. 애나는 엄마가 자살한 것이 아니라 ‘살해’당했다고 믿는다. 그녀는 이 카드를 들고 자신의 촉을 믿지 않는 마크와 함께 경찰서에 가 머리를 만나게 된다. 그는 그녀의 말에 어떤 판단도 하지 않고 혹시 미심쩍은 부분이 없는지 천천히 조사를 시작한다.
조사를 시작한 머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두 사람의 자살이 너무나 이상하다. 사람의 죽음이 이렇게 깔끔한 것일 수 없다는 머리의 생각은 과거 수사 파일을 열어보고 두 사람의 행적을 조사하면서 서서히 현실화되는 것 같다. 그리고 애나의 현관 앞에 누군가 칼로 난도질 한 토끼를 두고 2층 딸 엘라의 방에 경찰에 찾아가지 말라는 쪽지를 묶은 벽돌을 던지자 미지근하게 반응하던 마크도 적극적으로 사건에 관심을 보이고 머리 또한 조사에 박차를 가한다.
그러던 그녀 앞에 누군가 나타난다! 머리와 애나는 부모의 자살을 살인이라 생각하지만 2부에서 작가는 독자의 뒤통수를 가격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속력을 내고 엄마의 행적을 좇던 애나는 부모님과 함께 지낸 과거 속에 막연히 흐르던 불안함을 떠올린다. 집안에 많던 술병, 자신이 오면 싸움을 멈추던 부모님!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던 모습과 실제 가족의 모습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부모님의 사망으로 엄청난 부자가 된 애나. 혹시 돈 때문일까? 부모님의 죽음의 진실을 무엇일까?
작가는 사람의 심리를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다. 인간의 내면과 그런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관계의 내밀함까지.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가진 선입견에 한번 놀랐고 이로써 만들어진 ‘반전’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독자들을 놀려먹은 한 작가의 노련함, 그 촘촘한 이야기에 또 한 번 놀랐다. 결말은 어떤가! 결말 몇 페이지는 끔찍한 진실이 드러나 씁쓸함만 남은 이 소설을 달달한 로맨스 소설로 바꾸어 버렸다.
숫기 없는 남자와 경계성 성격장애를 앓고 있는 여자의 만남. 그 아름다운 모습이 이 소설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용기 있고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 커플과 단 한 번의 용기를 내지 못해 인생을 불행에 몰아넣은 한 커플. 그저 흘러가는 대로 자신의 인생을 내버려 두지 않고 자신의 선택으로 자신의 당당히 길을 걸어갈 그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찬사 같았다. 머리와 세라 커플에게 그리고 굳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며 자신의 길을 걸어갈 애나와 마크 커플을 응원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에게 너무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다시 생각하니 더 대단한 소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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