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임순례 감독의 <남쪽으로 튀어>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고, 원작이 오쿠다 히데요 소설이라길래 한번 읽어봐야지 하고 미뤄두었던 것을 이제서야 펼쳐보았다. 대강의 내용도 알고 있는데다가 워낙 리뷰도 많이 읽었고 오쿠다 히데요의 글이라면 재미도 있을거라는 생각이 오히려 독서를 방해하고 있었던 셈인데 만약 나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주저없이 책을 펼치라고 권하고 싶다.

옛날 과격파 운동권 출신이고 지금도 걸핏하면 날뛰는 아버지. 운동권의 권력다툼에 염증을 느끼고 지금은 아나키스트가 되어 홀로 '국민연금 납부 거부' '세금은 못내' 투쟁중. 국가 권력에 써먹기 좋은 인간을 양성하는 곳이 학교라며 학교 따위 안다녀도 그만이라고 하고 아들의 학교에 찾아가 수학여행비 부정에 대해 교장과 담판을 벌이는 등 하는 일이 없어도 매일 바쁘다. 그런 아버지가 못마땅하고 '보통의 아버지, 회사 다니는 아버지'를 부러워하는 아들 지로는 자기를 괴롭히는 중학생 가쓰와 가쓰의 부하 역할을 하는 친구 구로키 때문에 고민이 많다. 지로의 세계는 아버지의 세계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그래서 지로도 서서히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국가나 자본, 학교 이런 당연한 것들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의아해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역사에서 국가나 학교가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더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은 그런 것이 없어도 잘 지내왔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가족이 오키나와 근처의 이리오모테 섬으로 이주하는 건 작가의 탁월한 은유다. 오키나와는 원래 일본 영토가 아니었고 류쿠 왕국이 있던 오키나와를 일본이 점령하면서 일본 땅이 된 곳이다. 이리오모테도 류쿠 왕국에 의해 점령당한 곳이었고 그 곳의 사람들은 류쿠 왕국에 저항해서 자신의 땅을 지키려던 기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이 소설이 마지막에 그 때의 영웅 <아카하치 이야기>를 읽으면서 끝을 맺는 것도 그런 이유다. 소설을 읽는 내내 작가의 탁월한 비유와 여러 사회문제를 광범위하게 꼬집는 능력에 무릎을 치게 된다.

우리에게 국가란 무슨 의미인가? 원래 국가나 자본과는 상관없이 살던 사람들에게 왜 국가를 강조하고, 심지어 국가가 그들의 행복과 안전을 지켜주지 못하는 데도 국가니까 당연히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일까?

이 책에서 또하나의 멋진 방식은 의문을 던져줄 뿐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리조트 개발업자와 지로가족의 싸움이 일어났을때 이리오모테 학교의 교장선생님이 전교생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한다.

"어느 쪽이 옳은 지, 선생님도 섬사람들도 모릅니다. (...) 단지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초등학생인 여러분의 본분은 공부라는 것입니다. (...) 여러분이 거기에 휘둘려서는 안됩니다. 만일 의심을 품었거나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잊지 말고 가슴속에 간직해주세요. 그리고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의 머리로 판단하여 정의의 편에 서는 사람이 되어 주세요....."

우리의 학교는 지금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쩌면  나의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는 많은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할수 있나? 언론은? 권력과 자본을 비호하기 바쁘고 그냥 모른척하고 말 잘 들으며 살아가기를 가르치고 있지는 않나? 우리가 정말 우리의 권리를 지키고 살아가고 싶다면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의심을 품는 일부터 가르쳐야 할 것이다.

지로가족이 이리오모테의 집을 지키고 리조트를 개발하려는 거대자본을 물리쳐 주기를 애타게 바라보았지만 역시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 아빠는 국가의 힘이 미치지 않는 더 먼 남쪽 섬으로 찾아갔다. 국가가 내 발 디딜 땅 하나 허락하지 않아서, 남쪽 땅을 찾아 갈 힘도 없어서 망루에, 굴뚝에 오르는 사람들의 절박한 심정을 생각해 본다. 그들에게 국가는 어떤 의미일까. 지로가족에게는 따뜻한 마음과 필요한 물자를 나누던 이웃들이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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