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시장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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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상하게 단편 소설이 잘 읽히지 않는다. 한 소설집 안의 여러 단편을 다 읽는 경우도 드물다. 내가 건성건성 독서를 하는 편이라 그런지 여러 사건이 쉴새없이 얽히고 설키는 장편소설은 그나마 쭉 따라가는 편인데 단편소설들은 대부분 찰나를 놓쳐도 재미를 잃어버리기 일쑤라 읽고나도 별 남는게 없는 느낌이다.
그런 이유인지 나는 이 작가를 몰랐다. 한국 소설계에 내가 별 관심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등단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이번이 두번째 소설집이라 하니까.

그런데 이 소설집이 워낙 재밌다는 추천을 듣고 희안하게 별 고민없이 클릭질을 해서 덜컥 이 책을 사버렸다.(잘 알지도 못하는 작가의 단편소설집을 사는 것은 내겐 정말 희안한 일이다.) 이름만 듣고는 남자인줄 알았는데 소설집을 펴보니 작가사진이 야무진 여자 얼굴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일은 첫번째 단편 <국경시장>을 읽고 나서 벌어졌다.
정말 너무 재밌는거다!! 다음 단편도 단숨에.. 또 다음 단편도 단숨에..
실로 오랜만에 단편소설집 한권을 단숨에 읽어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작가는 워낙 상상력도 뛰어나지만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다. 여덟편의 소설이 모두 다 장편소설같은 서사를 가지고 환상과 관념, 욕망과 현실의 세계를 오락가락 한다. 특히나 <국경시장>과 <쿠문> 같은 작품은 정말 소름이 돋을만큼 새로웠고 작가의 자전소설이라는 <한방울의 죄>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고백이었다. 지금 손가락이 아파 다 쓸수는 없지만 여덟편의 단편 모두 소중하다.
책을 읽는 동안 완전히 작가에게 매료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또다시 반하게 되었다. 두번째 책을 묶으면서 소설쓰는 일이 볼리비아 해군과 같지 않은가 생각해본다고. 패전 후 영토를 뺏기고 남미 최빈국으로 전락한 볼리비아는 자신들의 지도에서 바다가 사라진 후에도 해군을 해체하지 않았다. 오늘날 볼리비아 해군은 해발 삼천팔백십 미터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에서 하얀 제복을 입고 열심히 훈련을 한다고 한다.
위대한 작가들이 탄생할 수 있는 바다의 시대는 지나가버리지 않았나 하는 시기에도 항상 스케일이 큰 문학을 동경하는 김성중 작가는 쓰는 일과 사는 일이 다 같이 복잡해지면 볼리비아의 해군을 떠올린단다.
언젠가 하얀 제복을 입고 호수 아닌 바다로 나갈 때가 있으리라. 그때까지 뱃멀미를 참으며 훈련을 거듭하는 수밖에. 그럴 수밖에.
그렇게 훈련하는 작가를 나는 열렬히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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