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다. 아무리 가상이라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어보이는 상황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하긴 이미 초중고에서 학교와 교육의 파행을 겪어왔는데 대학이라고 다를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진격대로 이름붙여진 대한민국 평균의 가상 대학교의 상황은 나는 너무 무섭지만 이 시대의 교육을 받으며 자란 우리 아이들이 과연 그게 무서운 상황임을 눈치 챌수 있을까? 오히려 취업에 특화된 진격대는 학생들에게 너무나도 멋진 유토피아와 같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것이 더욱 무섭다. 이것이 모두 교육의 파행을 뻔히 보면서도 애써 외면해온 결과인 듯 해서 수치스러워진다. 잘못인 줄은 알지만 내 아이만 뒤쳐질 수는 없으니까 나 또한 그 경쟁의 대열에 자발적으로 동참해 온 결과이므로 고개를 들 수 없다. 이렇게 객관화 해서 보여주어야만 잘못을 인식하는 이 무모함이라니.
<우리는 차별을 원합니다>로 내게 신선한 충격을 준 작가는 두번째 저서로 다시 한번 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 대학의 자화상을 고발한다.
대학의 풍경이 이렇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고등학생인 내 아이들이 학원에만 매달릴때 학원에서 주는 것만 받아 먹는 공부는 소용이 없다고, 당장은 입시가 있으니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대학 가서 할 진짜 공부는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렇게 공부해서는 대학가서 할 공부를 따라갈 수 없을 것이라고 잔소리를 자주 하는 편인데 이 책을 읽다보니 대학은 현재 입시위주의 교육보다도 더 파행적으로 취업을 위한 교육이 되어버린 듯 하다. 차라리 취업에 강한 대학이라고 슬로건을 건 대학은 속은 기분이라도 들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대학을 나와서 좋은 곳에 취업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대학이 이렇게 발전(?)한 것인가? 그 민낯은 무서울 따름이다.

P.45 대학은 `영혼 없는 수월성 excellence without a soul`의 민낯을 보여주는 정도가 아니라, 기업이 원한다면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간도 쓸개도 내줄 태세다. 수년 전, 대학거부선언을 한 김예슬이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고 했던 게 빈말이 아니었음을 해준이는 몸소 느끼고 있다.

P.60 대학은 학문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돈이 되면` 키우고 `돈이 되지 않으면` 버릴 뿐이다. 국어국문학? 그게 한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지적 생태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취업이 잘되지 않으니 폐지할 뿐이다.

P. 76 인문학은 `점수 맞춰 지원한 것에 불과`한 수준을 넘어, "지독한 반기업 정서에 물든" "걸핏하면 실체도 없는 인성교육만 떠들어" 대는 문제의 학문이 된다.

P. 116 학문적 영감을 구체화 하는 순간이 `그 시간에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자`는 의무감에 위협을 받는다. 세영이가 `사회학개론` 강사가 꼭 읽어보라고 했던 <총, 균, 쇠>를 인터넷 리뷰를 훑어보는 것으로 대체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게다가 수강료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세영이에게 책 읽기는 시간낭비다. 솔직히, 그런 책을 돈주고 사서 한 장 한 장 읽어봐야 `팔자 좋다`는 식의 눈총만 받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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