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이 아마도 고등학생때가 아닐까. 그때의 어렸던 나는 이 책에서 가장 강렬한 이미지가 한하운의 절절한 시에서 느껴지는 나병 환자들의 안타까운 처지였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떠오르지 않고 소록도의 이야기라는 것만 기억이 났다. 그런 이유로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책이다. 이 두꺼운 소설에서 작가 이청준이 진짜 하고싶은 말이 무엇이었나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인생의 중반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읽어본 이 책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단지 소록도에서 살아가는 한센인들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는 가르침이었다. 당신들의 천국 소록도가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사회로 확장되어 지배 받는 자와 지배 하는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소설같다.
아무생각없이 읽다가는 오독할 수 있다. 처음의 서사들이 관념으로 버무려지면서 살짝 이야기의 흐름이 지루해질 때 쯤 정신을 바짝 차리고 행간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이해가 가능한 것 같다. 글을 읽는 동안 내가 얼마나 권력이 주는 시혜나 편안함에 길들여져 가고 있는지, 얼마나 자주 영웅이나 멘토의 카리스마에감동하여 그를 찬양하는 순간 자발적으로 나를 그의 밑에 내려 놓았는지, 여기 나오는 이상욱처럼 이상할정도로 권력을 의심하고 안주하지 않아야 나의 자유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며 자주 뒷골이 시려오는 경험을 했다.

내일의 꿈을 오늘 미리 가불해주고, 그 가상의 현실을 당장 오늘의 그것으로 착각하고 즐기게 하여 진짜 현실의 갈등을 잠재워버리는 말의 요술은 이 섬을 다스려온 사람들의 해묵은 수법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오늘의 삶이라는 것이 늘 힘겹고 짜증나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지극히 손쉽고 효과적인 지배술의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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