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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제프리 재슬로 지음, 심은우 옮김 / 살림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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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어온 책들은 대부분 책 속의 책을 통해 만난 경우가 많다. 간혹 신문이나 타인의 추천으로 만나기도 하지만 이 책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타입의 한 고객으로부터 처음 듣게 되었다. 난 책에 있어서는 뒷북을 치는 경향이 있다. 남들이 한참 베스트셀러라며 읽을 때 난 혼자서 베스트셀러를 비켜가있다. 한 작가의 책만 파는 습관때문일 것이다. 명찰에 적혀있던 '내 취미는 독서입니다'라는 구절을 눈여겨보던 그 고객은 그럼 이 책은 읽어봤냐며 묻는 것이었다. 난 모른다고 했다. 그의 얼굴 만면에 떠오른 비웃음이란. 마치, 이 책을 안 읽어봤으면 말을 마세요.라는(개콘에서 달인 김병만의 말투) 듯한 표정이었다. 꼭 읽어보라며 두 번 세번 강조했었다. 솔직히 무시하고 싶었지만 그가 가고 난 후 바로 인터넷서점에 들어가 검색해 보았다. 칭찬이 자자했다.  그 이 후 몇 개월이 지나 이 책을 손에 넣었지만 그 당시의 모멸감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주인공 랜디포시의 자전적 이야기인 마지막 강의는 그가 췌장암으로 6개월의 시한부판정을 받은 시점에서 자신이 일하던 카네기멜론 대학의 강단에서 한 마지막 강의내용이다.  솔직히 누구나 이 사실을 알고 첫 장을 펼치며 나처럼 약간의 동정심, 혹은 측은함을 가지고 읽었을 것이라 본다. 시한부선고를 받은 남자의 마지막 강의라니. 참담하지 않을까 싶었다. 게다가 그 앞에 마지막이라는 단서까지 붙여놓고 보니 죽음을 목전에 둔 남자는 감정이 격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조금 뜻밖이었다. 책을 덮고나서 곰곰 생각해보니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긍정적이었다. 

 
그는 강의에서 1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데 그 주제가 '당신의 어릴 적 꿈을 이루라'였다. 나는 그 주제를 보자 그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었는가 추측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강의에서 그런 주제를 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어릴 적 꿈과 목표를 이루었기에 그 과정을 통해 조언을 해주는 것이었다.

만약 살아오면서 내가 느꼈던 열정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할 수만 있다면, 내 강의는 그들의 꿈을 이루는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었다.   -p.25


시작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었지만 그의 꿈은 일관적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컴퓨터공학도였지만 그는 자신의 상상을 현실로 이루기위해 노력하는, 그리고 창조하는 예술가였다. 그가 동경하던 디즈니사의 이매지니어가 되는 부분에서는 행운아라고 느꼈으나 그것 또한 아니었다. 그는 성공에 대한 욕심이 아닌 자신의 꿈을 이루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현실적 몽상가였던 것이다.

행운이란 정말로 준비가 기회를 만나는 지점에 있는 것이다.(로마의 철학자 세네카)    -p.163

준비를 생활하하는 다른 방법은 모든 상황을 부정적으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p.219
 

그는 자신의 말처럼 누구보다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아마 성공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그의 말에 100%공감하는 나를 본다.

성실함은 너무나 과소평가되고 있다. 멋은 관심을 끌기 위해 겉으로만 노력하는 것이지만, 성실함은 마음 밑바닥에서 온다.    -p.181

그리고 그의 긍정적인 생각은 저자 자신의 인생 전반을 끊임없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자신이 췌장암 말기의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사람이었지만 늘 완치될 수 있다는 5%의 희망을 놓지 않은 그는 정말 대단한 열정을 지녔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을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것도 타고난 것 같았다. 부모의 교육이 큰 역활을 차지했던건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어릴 적 그가 보였던 엉뚱한 행동들을 전적으로 지지해주었으며 스스로 판단하도록 이끌어주었던 랜디의 부모야말로 그의 가장 큰 스승일 것이다.

'행운'이란 단어는 지금 나의 상황과는 좀 어울리지 않겠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버스에 치여 죽지 않았다는 것이 정말 행운처럼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암은 나에게 만약 내 운명이 심장마비나 교통사고였다면 불가능했을, 재이와 중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p.273


그리고 나는 그가 카네기멜론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며 수업하는 방식이나 자신의 제자를 위해 학장과 맞서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얼마나 훌륭한 멘토였는지 알게 되었다. 평생 자신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준 멘토들의 조언을 잊지 않고 간직하며 그 충고를 아낌없이 자신의 제자들에게도 나누어주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꿈을 이루었으나 자만하지 않고 제자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끊임없이 베풀었기에 그는 최악인 자신의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그들의 좋은 면을 보여줄 거에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장점을 가졌지요. 기다려줘요. 그러면 드러날 겁니다.    -p.19


그가 이 책을 국내에 발표하고 1달이 지난지 얼마안되어 사망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마지막 강의를 동영상으로 녹화하고 이 책까지 썼다는 그에게 경외심을 품었다.충분히 공경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의 자식들은 평생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그의 사랑을 이토록 진하게 느낄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지름길을 원한다. 나는 최고의 지름길은 돌아가는 길이라 생각한다.
간단히 말해 묵묵히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p.213


그가 췌장암 말기의 온갖 화학요법과 치료에도 굴하지 않고 열정적인 강의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역시나 최선을 다하라는 자기계발서들의 뻔한 결론일지라도 그의 강의는 특별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최고가 아닌 최선을 다하라는 명언처럼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자신이 어릴 적 꾸었던 꿈에 조금은 가까이 다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릴적 꿈만큼 자주 바뀌는 게 없다.  타인이 인정해주는 직업을 가져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랜디처럼 자신이 어릴적 하고 싶었던 사소한 것들을 잊지 않고 시도하다보면 자신의 삶에 대해 긍정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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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늑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쓰시마 유코 지음, 김훈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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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947년생, 올해로 등단 40년을 맞이한다는 이 작가. 이 분이 다자이 오사무(본명 쓰시마 슈지)의 딸이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나름 다자이 오사무의 팬이라 생각했는데 그에게 딸이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아마 내가 그 사실을 알고 그녀에게 주목했듯이 등단 이후부터가 아니라도 아마 평생을 꼬리표처럼 그림자처럼 그 사실은 그녀를 따라다녔을 것이다. 그녀는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몹시 궁금해졌다. 다자이 오사무의 딸이라는 건 아마도 그녀의 문학 전반에 핸디캡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보긴 했지만 그건 나의 선입견이 만들어 낸 망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꽤 유명한 작가인데 국내에 소개된 책이 불과 몇 권밖에 되지 않았다는데 놀랐다. 이 책 한 권으로 판단할 순 없지만 나름의 확고한 가치관을 가진 작가같았다. 
 

책은 1905년 멸종된 일본늑대에 관한 자료의 보고로 시작된다. 과거 무덤가에서 노숙하던 말없는 아버지와 네살 아들이 있었다. 소년은 그 무덤에서 아버지와 마치 짐승같은 생활을 이어간다. 그리고 1945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함으로 나라 전체가 뒤숭숭하고 불안할 때 17살의 니시다 미쓰오는 12살의 유키코를 찾아온다. 미쓰오는 과거 무덤에서 살던 4살 소년이었다. 그리고 유키오는 미쓰오가 무덤에서 발견한 죽음의 현장에서 살아돌아온 아이였다. 미쓰오는 하교길의 유키오에게 밤기차를 타지 않겠냐고 말하며 무작정 그녀를 데리고 기차에 오른다. 물론 강제는 아니었다. 어느모로 보나 둘의 어린 낯빛으로는 가출로 보일테지만 미쓰오는 그렇게 보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유키오를 남자아이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그리고 열흘간의 긴 기차여행이 시작된다. 그래도 돈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기에 먹을 걱정은 하지 않지만 대책없이 찾아오는 설사와 고열등은 둘의 여행이 순탄치 않음을 의미한다. 
 

책의 말미에 나온 글로 보아 1946년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바탕으로 만든 것 같다. 초반에는 굉장히 지루하다 생각했는데 뒤로 갈수록 흥미로워진다. 안개에 가려있던 저 너머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오는 것처럼 작가가 말하려던 것이 조금씩 드러났다. 어머니를 모르는 소년과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소녀의 성장소설같기도 했지만 패전직후 일본의 시대상을 극명하게 드러냈기 때문에 뻔한 성장소설로 여길 수가 없었다. 어른들의 무관심, 전염병, 잔인한 인간들. 미쓰오는 그 모든 주변상황이 정글같고 사람들이 악랄한 원숭이 같다고 상상하며 자신을 정글북의 아켈라(늑대의 우두머리면서 버려진 모글리를 키운), 유키오를 모글리(정글에 버려진 아이)라고 여긴다. 그렇게 책의 중반까지 넘어가다 그들은 '집없는 아이'의 두 주인공으로 바뀐다. 래미와 카피인데 광대에게 팔려 떠돌다 백조호에 있는 엄마와 동생을 찾아가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미쓰오가 래미가 되고 유키오는 카피(영리한 푸들)가 된다. 여기서부터 그들의 이야기는 새롭게 펼쳐진다. 
 

자신들을 그런 동화 속 주인공이라 생각하며 서로 의지하고 아끼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한데 상황이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다. 전염병에 걸릴 위기에도 처하고, 미친 개에게 물릴 뻔하기도, 익사할 위기에도 처한다. 그러면서 그 둘은 서로의 성장을 바라본다. 또한 그 들이 겪는 일이 실제 당시 일본에서 일어난 일과 교차하며 현실감을 더해가기 때문에 위태롭고 아슬아슬했다. 둘이 마치 외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불안해했듯. 
 

작가는 이런 시대상과 맞물려 성장기 두 주인공의 고통과 불안을 절묘하게 그린 것 같다. 절망이라고 생각한 순간들을 겪은 후 점점 강인해지고 단단해지는 둘의 모습이 슬프지만 꿋꿋했다. 다른 사람처럼 시시해지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미쓰오의 강단은 사춘기 소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 순수하게도 느껴졌다. 또한 슬픔을 간직하고 떠도는 백조호의 음산한 모습을 두려움보다 아름다울거라고 상상하는 유키오에게서 역시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발견했다. 멸종되었지만 작가의 손에 의해 살아난 늑대는 고고한 모습으로 되살아난 듯 했다. 그런 사라지지 않는 열망의 강한 존재를 통해 거짓됨없는 동심을 지켜주고 싶었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켈라'는 분명히 남자지만, 그보다는 인간과 다른 존재가 되고 싶었다.
더 청결하고, 더 자부심 강하고, 더 아름다운 존재. 그러므로 '모글리'도 그런 존재가 되어주길 바란다.
원숭이 같은 시시한 성장은 바라지 않는다.     -p.129
 

그렇지만 '카피'는 백조호가 언제까지나 슬픔을 간직하고 떠도는 운명이었으면 좋겠다.
늘 그런 배일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카피'도 초등학생 시절에는 백조호를 동경했다.
사내아이의 병은 점점 더 나빠지고, 부인의 돈도 떨어져가고, 백조호에는 절망만 남았다.
그런 백조호를 만난다면 얼마나 무섭고 아름다워 보일까.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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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일라잇 - 나의 뱀파이어 연인 트와일라잇 1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변용란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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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그다지 관심없는 소재의 이야기였는데 읽는 내내 호기심과 순정을 동시에 자극하는 심리묘사와 전개때문에 손에서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이야기라니 좀 뻔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두껍게 표지를 할애할정도로 할 얘기가 많은건가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중반이후 책 속으로 들어갈만큼 홀딱 빠져있는 나는 이미 이사벨라 스완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들떠 있었던 것 같다.  고혹적인 에드워드의 눈빛에 벨라처럼 심장이 뛰고 얼굴이 빨개지는 경험을 수차례나 했으니 말이다.
 

엄마의 재혼으로 아빠 찰리가 있는 어둡고 음침한 포크스로 전학을 오게 된 17살 스완은 전학 첫날 묘한 분위기를 가진 5명의 아이들을 만난다. 그 중 가장 잘생긴(그를 표현하는데 작가도 이 단어에서 한계를 느낀 것 같다) 에드워드 컬렌에게 묘하게 끌리는 벨라. 그 둘은 운명적인 순간을 맞딱뜨리지만 두근거리는 벨라와 달리 에드워드는 그녀를 분노에 가까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멀리하려 한다. 다음 날 벨라는 그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고 자신을 피한다는 걸 분명하게 느낀다. 그의 빈자리때문에 자책하면서도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은 그가 자신을 멀리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에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던 어느 날 학교 주차장에서 벨라에게 대형사고가 날 뻔한다. 분명 자신과 멀리 떨어져있다고 느꼈던 에드워드가 벨라를 위험으로부터 상처하나없이 구해준다. 그 일을 계기로 조금씩 말문을 트며 가까워지는 두 사람. 벨라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에드워드때문에 더욱 초조해지고 어느날 그에 관한 충격적인 얘기를 듣게 된다. 그러나 벨라는 그를 알아갈수록 더욱 그를 사랑하게 되는데...

 

에드워드는 작가의 구구절절한 수식어가 부족할 정도로 조각같은 미남이다. 지상에 없는 미모라고 칭하며 그에 반하게 되는 벨라의 심정을 묘사하는데 이쯤되니 나는 순정만화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인간으로서 사랑하면 안되지만 거역할 수 없는 그의 마력에 이끌려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에 허우적대고 있는 벨라가 여지없는 순정만화의 가련한 여주인공쯤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니 오히려 이야기가 드라마틱하게 다가오며 나를 순정만화의 판타지로 이끌었던 것 같다. 남자들이 나쁜 여자(팜므파탈)에게 빠지 듯 순정만화에서도 빠질 수 없는 나쁜 남자들이 등장하니, 그는 모든 여자들이 한번씩 꿈꾸는 로망의 주체가 되었다. 소녀취향을 이토록 제대로 간파하는 작가이니 에드워드의 존재는 가히 매혹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그가 뱀파이어라하더라도. 그 사랑이 가능하게 하는 것 역시 사춘기의 감수성 풍부하고 예민한 소녀였다. 책을 덮고 보니 벨라가 17살이 아닌 30대의 나였다면 전혀 불가능했을 거라며 웃음이 나왔다. 그만큼 사춘기 소녀의 감성이란 것이 현실적인 두려움(에드워드가 언제 목덜미를 물지 모른다는)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무모하니 말이다.

 

순정만화 다음으로 생각난 것이 몇 년 전에 종영한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였다. 매우 즐겨봤던 프로이니 당연히 떠올랐는데 특히 정려원(뱀파이어)이 다니엘 헤니(인간)를 만나며 사랑에 빠지는 에피소드가 자꾸 맴돌았다.그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처지때문에 간곡히 만류하는 가족들, 친구들로 인해 갈등하다 끝내 헤어지는데 그 때 그녀의 눈물이 생각났다. 그 에피소드를 보며 그녀가 내뱉았던 대사들이 당시에는 뜬구름잡는 것처럼 뜨악했는데 이 책을 읽는동안 그 둘이 얼마나 진지했는지 새삼 감탄하게 됐다. 에드워드와 벨라 둘에겐 첫사랑이었으니 열망의 감정들은 분출구를 찾지 못하는 화산을 연상케했다. 그리고 뱀파이어기때문에 사랑과 욕망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뇌하는 에드워드의 모습은 무엇보다 소설에 활력을 불어넣고 수많은 여성독자들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를 통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뱀파이어의 선입견을 수정하며 선한 뱀파이어상을 제시한 작가의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이야기이다.

 

이미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까지 되었지만 미스캐스팅때문에 말이 많아서 시각적 호기심은 억눌러야했다. 소설의 상상을  뛰어넘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는 평같다. 또한 후속편까지 이미 두 편이나 나와있다니 다 찾아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트와일라잇의 결말이 뻔하게 끝나지 않아 여운을 남기고 있으니 후속은 예정되어 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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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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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때문에 잘 읽혀지지 않은 책이었다. 베스트셀러라고 불리는 책은 일단 제쳐두고 보지 않기 때문에 늘 남들 다 읽고 난 후에 읽게 되는데 이 책은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인 덕에 사람들의 공감에 한 발을 들이밀 수 있게 되었다. 책 속의 엄마는 분명 우리 엄마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직,간접적 경험을 통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어머니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감내해야했던, 그렇지만 누구보다 자식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우리가 기억하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자화상같았다.
 

맏아들 형철과 맏딸 지헌이 서울역에서 잃어버린 어머니를 찾기 위해 전단지를 뿌린다. 전단지를 보고 연락을 해 온 제보자들의 말을 들으면서 어머니가 맞는가 싶었지만 앞이 뚫린 파란 슬리퍼를 기억해내는 자식들의 심정은 덜컥 내려앉는다. 나 역시도 그랬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란 책의 첫 구절을 보며 나는 읽는 내내 희망의 반전이 있기를 누구보다 바라게 되었다. 큰 딸과 맏아들의 회상이 이어지며 어머니에게 좀 더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함을 후회하고 회한의 눈물을 흘릴 때 그들의 고통이 마치 내 것인양 슬픔이 차올랐다. 자식들이 알지 못한 엄마 자신의 인생을 고백하듯 얘기할 때는 미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내가 엄마를 얼마만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제목만으로도 나는 눈물이 맺히고 가슴이 옥죄어드는 갑갑함을 느꼈다. 그래서 선뜻 읽혀지지 않았었다. 왠지 내키지 않는다, 너도 나도 다 읽는 책에는 별로 흥미가 없다하면서도 실은 책을 읽으며 엄마에 대해 생각할 것 같은 자신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어떤 엄마라는 제목에서도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었는데 신경숙이라는 작가가 쓰는 엄마의 이야기는 분명 내 가슴을 할퀴고 갈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책 속의 엄마와는 확연히 다른 우리 엄마의 인생이 왜 자꾸 불행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맏딸에게 '너는 나처럼 살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하며 가르치고 굳건히 딸을 믿어주었던 책 속 엄마의 모습 위로 내 엄마의 작고 무기력한 모습이 내내 겹쳐졌다. 30년 가까이 살가운 말한마디 한 적 없고 무심해서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엄마를 나는 내 인생에서 멀찌감치 뒷전에 밀어놓아버렸다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엄마에게 언성을 높이며 전화를 끊어버리고 다시 전화하겠다고 해놓고 하지 못해 미안해하는 맏딸 지헌의 속내를 들여다보며 뜨끔할 수 밖에 없었다.


아빠와 언성을 높여 싸우는 밤이면 늘 엄마편에 서서 아빠에게 큰소리를 내질렀던 나였는데 다음날이면 아무렇지 않게 아빠와 대화하는 걸 보면서 엄마가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이혼하라고, 우리 걱정은 하지 말라고 엄마에게 말하기도 수차례였지만 엄마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어느 날인가 밥을 먹다 젓가락을 쥐고 있는 내 손을 보며 젓가락을 잡을 때 끝 쪽으로 쥘수록 집에서 멀리 떨어져 산다고 은연 중에 엄마가 내뱉았던 말이 슬프게 떠오른다. 나는 그랬다. 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멀어졌다. 하지만 명절이나 집에 한 번씩 다녀오게 되면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나는 내내 엄마생각을 하다 잠들었다. 집을 나올 때도 엄마에게 가장 미안한 마음이 들어 뒤도 돌아보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는데 나는 대책없이 미루기만 한다. 엄마가 하지 못하면 내가 엄마에게 살갑게 굴면 되는 건데 무뚝뚝한 엄마의 대답에 실망해버려 머쓱해지고 만다.


초반부터 맏딸을 너'라고 칭하며 얘기를 풀어갈 때는 적응이 안됐다. 그리고 이어지는 당신'이라는 남편의 호칭.  마치 전혀 다른 제 삼자가 작가의 입을 빌어 얘기하는 것 같았다. 보기 드문 서술방식이기에 난감했다. 하지만 그 방식으로 나는 그들의 엄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듯 했다. 주관적이고 감정적이 될 수 밖에 없는 엄마의 해석을 남에게 떠맡긴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엄마와 그들의 일상을 좀 더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엄마가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큰아들 형철의 부분에서는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내가 큰동생에게 갖는 엄마의 마음에 배반을 느꼈듯이.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 가족 모두가 엄마를 너무도 사랑한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엄마의 실종으로 가족들이 해체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닌가 줄거리만으로 지레짐작했었기 때문이다. 엄마를 슬프게 기억하는 건 우리 죄의식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형철의 말에는 엄마에 대한 내 생각이 와르르 무너졌다. 나는 그 죄의식 때문에 엄마가 미련하게 인내하며 살았다고 바보취급했다. 이제라도 엄마의 존재를, 엄마의 자리를 되새겨본다. 외로운 엄마를 품어야겠다.


오빠는 엄마의 일생을 고통과 희생으로만 기억하는 건 우리 생각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엄마를 슬프게만 기억하는 건 우리 죄의식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그것이 오히려 엄마의 일생을 보잘 것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일일 수도 있다고
오빠는 용케도 엄마가 항상 입에 달고 지내던 말을 생각해냈다. 엄마는 조금만 기쁜 일이 생겨도 감사허구나! 감사헌 일이야!라고 말했다. 엄마는 누구나 누리는 사소한 기쁨들을 모두 감사함으로 대신 표현했다. 오빠는 엄마의 감사함들은 진심이었다고 했다. 엄마는 모든 것에 감사해했다고.
감사함을 아는 분의 일생이 불행하기만 했을 리 없다고.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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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출근길
법륜스님 지음 / 김영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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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출근길, 제목만으로도 직장인들을 설레게 하는 말 같다. 혹은 아주 먼나라 사람의 일처럼 무심하거나.
매일 아침 힘겹게 눈을 뜨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어떤 즐거움도 나를 위한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직장인들에게 출근시간은 고된 노동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하물며 행복하기 위해 출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법륜스님은 번뇌에 빠진 모든 중생(직장인)들을 구제하고자 이런 책을 쓴 듯 하다. 스님은 회사를 다니며 겪는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고민을 통해 자기 수행의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실업청년자들이 늘어나고 경제가 어려워지니 직장인들에게 직장생활은 예전보다 더 숨통을 조이는 곳이 되가고 있다.  몇해 전 IMF위기때 수많은 사람들이 명예퇴직을 강요당하고 감원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쓰디쓴 과거가 있다보니 현재 직장인들의 심정 또한 그때처럼 줄타기를 하고 있는 듯 위태위태할 것이다.  몇 십년만에 물가가 폭등하다보니 먹고 살기가 예전보다 빠듯해진 직장인들에게 회사 역시 그들을 보채고 닥달한다. 회사생활이 피곤해질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그런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그 지옥같은 곳을 뛰쳐나온 사람중에 하나이고보니 밥벌이를 위해 다시 회사에 들어가야하는건 당연한데 마음을 다잡기가 쉽지않다. 그런데 어디를 들어가도 나와 다른 사람들이 아웅다웅하고 회사는 이익을 위해 직원들을 쥐락펴락하는 곳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 결국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면 나의 마음가짐을 바꾸라고 스님은 말씀하신다. 부처가 절에만 있는 것이냐 부처는 바로 내 마음안에 있는 것이라는 유명한 이야기처럼 지극히 불교적 방법이라고 여겼지만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은 한결 편안해지고 있었다.  
 

여러분이 정신을 차리고 잘 살펴보면 직장은 즐거운 곳도 아니고 괴로운 곳도 아니고 그냥 그곳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거기 가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그곳이 즐거운 곳이고, 거기서 나오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그곳이 지옥입니다. .....(중략) 그런데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나서 그곳은 즐거운 곳이 되기도 하고 괴로운 곳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것은 나로부터 일어나는 것이지 직장으로부터 오는 것은 아닙니다.     -p.44
 

내 생각이 바뀌어야 직장생활이 즐거워질 것이고 그 직장으로 들어가기 위한 출근길의 발걸음이 즐거워질 것이라는 뻔히 알고 있음에도 행해지지 않는 이치를 스님은 수도 없이 강조하신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스님께서 직장인들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고쳐먹는 것에 성공했으나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면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그 곳을 과감히 떠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물론 그 말씀만 깊이 새겨 "안녕히 계십시오"를 남발해서는 안 되겠으나 난 그 한마디에서 큰 용기를 얻었다. 그 말을 꺼내기 전에 몇십 번, 몇백 번 고민하고 떳떳하게 자기수행을 해야겠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종종 회사생활을 하면서 자신이라는 존재를 잃어버리곤 한다. 돈에 얽매이다 보니 회사생활이 즐겁지 않고 즐겁지 않은 일을 매일 하다 보니 '사는 게 무엇인가'라는 원초적이지만 절박한 심정의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게 된다. 스님은 그에 대해 가장 중요한 해답을 주신다. "자신을 돈에 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똑같은 일을 해도 돈 내고 하면 놀이고, 돈 받고 하면 노동입니다. 우리는 노동 따로 하고 놀이 따로 합니다. 그런데 노동은 돈 때문에 할 수 없이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돈의 노예라고 하지요. 인간은 돈도 필요하지만 자기 행위의 주체가 되면 즐거움이 생기고 보람을 느낍니다. 그런데 행위가 속박을 받으면 거기서 괴로움이 생기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은 돈에 매여 있는 겁니다.   -p.84


책의 서문에서 스님은 직장에서의 삶과 자신의 행복한 삶이 별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괴리감을 맛보는 것이라고 하신다. 어차피 해야할 일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바꿔 즐겁게 함으로서 주변사람들에게까지 그런 행복바이러스를 전파해주면 회사생활이 편안해질 것이다. 그리고 하루 하루가 자신의 인생이라는 구절이 인상깊었다. 무의미하게 직장에 출근했던 오늘도 결국은 내 삶의 일부라는 걸 깨닫는다면 결코 헛되이 보내지는 않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 행복하게 출근하고 싶다면 가장 중요한 이 사실을 먼저 깨우쳐야 할 것이다.


하루하루의 직장생활이 여러분 자신의 인생입니다. 지금 내 삶의 하나하나가 그대로 내 인생이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지금의 생활을 내 삶의 소중한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업무도 좀 편안해집니다.  그리고 절대 자신을 과대 선전하지 마십시오. 과대 선전하면 여러분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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